[리뷰] '헤어질 결심' 관음의 사랑

전형화 기자  |  2022.06.22 09:32
남편이 죽었다. 산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건을 맡은 형사 해준은, 사망자의 아내 서래와 마주 한다. 해준은 습관대로 서래의 모든 것을 기록한다. 기억한다. 저녁은 뭘 먹는지, 중국 교포라 어눌한 한국어를 어떻게 배우고 있는지. 담배는 어떻게 피는지. 어색할 땐 어떻게 웃는지.


남편을 죽였다. 산 위에서 떨어져 죽었다. 서래는 사건을 맡은 형사 해준과 마주 한다. 해준의 습관을 기억한다. 얼마나 우아한지, 어떨 때 강한지, 어떻게 웃는지, 잠은 잘 자는지, 그의 말이 어떤 뜻인지. 추억한다.

한국에서는 사랑하는 상대가 다른 사람과 결혼하면 더 이상 사랑하지 않냐고 슬쩍 묻는다. 그래도 서로의 결혼 반지가 신경 쓰인다. 호흡을 맞추면 비로소 잠을 잘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깨닫게 한다. 사랑이란, 호흡을 맞추는 것이란 걸.

그래도 파국은 피할 수 없다. 파도가 밀려와서 모래성을 붕괴시키는 것처럼. 해준과 서래의 호흡은 형사와 피의자일 때 비로소 맞춰질 수 있기에.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이 '아가씨' 이후 6년만에 내놓은 한국영화다. 그의 첫 멜로영화라고 할 수는 없지만, 멜로가 서스펜스보다 전면에 있는 첫 영화인 건 분명하다.

영화는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해준의 사랑이 시작됐다가 붕괴된 이야기라면, 후반부는 서래의 사랑이 완성되는 이야기다. 전반부가 서스펜스가 두드러진다면, 후반부는 더 멜로에 가깝다. 전반부가 관음에 가까운 훔쳐보기로 긴장감을 자아낸다면, 후반부는 둘의 거리가 호흡이 닿을 만큼 가깝다. 전반부의 음악이 날카롭다면, 후반부 음악은 흐느낀다.

'헤어질 결심'의 전반부는 히치콕 영화 같다. 유리와 거울, 망원경과 CCTV로 훔쳐본다. 위 아래로 나선 같이 돌고 도는 구도로 현기증을 자아낸다. 서로의 곁에 있어도 훔쳐본다. 이 전반부의 훔쳐보기가 해준의 것이었다면, 후반부의 훔쳐보기는 서래의 것이다. 보는 시선으로 상대를 탐닉한다. 그리하여 '헤어질 결심'은 관음의 영화다.

오롯이 상대를 지켜보고 그 사람만을 생각하며 그 사람을 지키는. '헤어질 결심'의 사랑은 그렇다.

해준을 연기한 박해일은 우아하다. 후반부 이정현 옆에서 석류를 깔 때 슬쩍 보이는 M자 탈모마저 처량하고 우아하다. 단단했다가 처량하면서도 우아하다. 서래 역을 맡은 탕웨이는 '헤어질 결심'의 8할이다. 그녀가 얼굴을 떨구며 웃을 때, 그녀가 코 끝을 찡그릴 때, 그녀가 담배를 무섭게 필 때, 그녀가 숨을 뱉고 들이마실 때, 그녀가 어눌한 한국어를 하고 유창한 중국어를 할 때, 그녀가 평범한 옷을 입었다가 화려한 옷을 입었을 때, 그 모든 순간을 엿보고 싶게 하고 사랑에 빠지게 만든다.

'헤어질 결심'은 '복수는 나의 것' 이래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위에서 내려보는 듯한 느낌이 덜하다. 연출 방식이 달라졌다기 보다는 이야기의 결이 달라졌기 때문인 듯 하다. 그래서 '헤어질 결심'은 박찬욱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대중이 편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다.

6월2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추신. 김신영 캐스팅은 미스다. 매우 연기를 잘했지만, 김신영을 잘 아는 한국 관객은 자칫 몰입이 깨지기 쉽다. 김신영을 모르는 해외 관객이라면 상관 없겠지만.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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