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가 더 위대한 이유... 매리스 같은 '별표'가 붙지 않는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2.09.21 15:02
애런 저지(오른쪽)가 21일(한국시간) 피츠버그전 9회 시즌 60호 홈런을 때려내는 순간.  /AFPBBNews=뉴스1 애런 저지(오른쪽)가 21일(한국시간) 피츠버그전 9회 시즌 60호 홈런을 때려내는 순간. /AFPBBNews=뉴스1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한 시즌 최다 홈런 기록은 배리 본즈(58)가 보유하고 있다. 그는 2001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소속으로 73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하지만 본즈의 스테로이드 약물 복용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기록은 빛이 바랬다. 한 시즌 70개의 홈런을 기록한 마크 맥과이어(59)와 66개를 때려낸 새미 소사(54)도 약물 때문에 논란이 됐다. 그럼에도 MLB 사무국은 이 기록들을 모두 무효화하지 않았다.

문제는 적지 않은 MLB 팬들은 본즈가 스테로이드 시대에 이룩한 한 시즌 홈런 기록을 '진짜'라고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들이 생각하는 진짜 기록은 1961년 로저 매리스(1934~1985)가 뉴욕 양키스에서 세운 61홈런이다.

그래서 올 시즌 애런 저지(30·양키스)에게 쏠리는 시선은 뜨겁다. 저지는 21일(한국시간) 피츠버그전에서 시즌 60호 아치를 그렸다. 팀의 147경기 중 143경기에 출장한 저지가 남은 15경기에서 2개 이상의 홈런을 때려 매리스의 기록을 넘어설 가능성은 매우 높다.

그런데 저지가 진정한 홈런왕이 되기 위해서는 매리스 말고도 넘어야 할 산이 하나 더 있다. MLB 전설인 베이브 루스(1895~1948)다. 루스는 양키스 소속이던 1927년 시즌에 60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그해 팀당 경기수는 154경기였다. 반면 매리스가 기록을 세운 1961년의 팀당 경기수는 현재와 같은 162경기였다.

이런 점에서 저지는 팀의 시즌 154번째 경기, 즉 앞으로 7경기 내에 61홈런에 도달한다면 루스를 넘어 '별표'가 없는 진정한 한 시즌 최다 기록으로 인정받게 될 전망이다.

베이브 루스의 사진이 한 전시회장에 걸려 있다.   /AFPBBNews=뉴스1 베이브 루스의 사진이 한 전시회장에 걸려 있다. /AFPBBNews=뉴스1
매리스는 1961년 154경기가 펼쳐진 시점에 59개의 홈런을 기록했다. 매리스는 당시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1호 홈런을 때렸다. 수치상으로는 매리스가 한 시즌 홈런 기록을 세운 셈이 됐지만 MLB 사무국은 그의 기록에 흠집을 냈다. 기존의 기록 보유자 루스보다 더 많은 경기에서 세운 홈런 기록이라는 점을 들어 매리스의 기록에 '별표'를 붙였다.

MLB 사무국이 이런 결정을 한 배경은 당시 MLB 커미셔너였던 포드 프릭 때문이었다. 프릭 커미셔너는 154경기에서 루스의 홈런을 넘지 못하면 그의 기록에는 별표를 붙이겠다고 이미 시즌 중반에 선언했다. 그는 양키스 소속의 매리스와 미키 맨틀이 전반기부터 앞다퉈 기록적인 홈런 수를 양산하자 이 선언을 했다.

공교롭게도 이 해의 아메리칸리그는 두 팀이 새롭게 창단돼 경기 수가 162경기로 늘어난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물론 프릭 커미셔너의 이 한 마디는 공정한 기록 관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미국에서 '야구의 신'이나 다름없는 루스의 기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맨틀이 부상으로 경기 출장을 하지 못하는 사이 매리스는 루스의 대기록에 한 걸음씩 다가섰다. 매리스는 "MLB에서 한 시즌은 똑같은 시즌일 뿐이다"라며 프릭 커미셔너의 결정에 불만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프릭 커미셔너의 결정은 바뀌지 않았다. 매리스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61호 홈런을 때려냈다.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그는 크게 환영받지 못했다. 5만여 명을 수용하는 양키스타디움에 예상보다 적은 2만 3000여 명의 관중만 그의 61호 홈런을 축하해줬을 뿐이다.

매리스는 그해 아메리칸리그 정규시즌 MVP(최우수선수)에 올랐으며 팀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하지만 그의 한 시즌 홈런 기록에 붙은 별표는 평생 짐이 됐다. 매리스는 1985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장례식은 뉴욕 맨해튼의 유서 깊은 세인트 패트릭스 성당에서 치러졌다. 이 성당에서 장례식을 치른 야구 선수는 루스 이래 매리스가 처음이었다. 그는 이렇게 세상을 떠나서야 루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다.

애런 저지가 21일(한국시간) 피츠버그전에서 시즌 60호 홈런을 때린 뒤 홈인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애런 저지가 21일(한국시간) 피츠버그전에서 시즌 60호 홈런을 때린 뒤 홈인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저지가 진짜 한 시즌 홈런 기록의 주인공이 되려면 양키스의 레전드인 매리스와 루스를 넘어서야 한다. 비록 스테로이드 시대에 나온 본즈의 기록에는 못 미친다고 해도 저지의 기록이 야구 팬들의 가슴 속에 더욱 깊게 남을 것 같다.

저지의 성(姓)인 저지(Judge)는 '판사'를 의미한다. 판사가 법정에 들어설 때 모든 사람들은 기립한다. 여기에 힌트를 얻어 저지의 팬들은 그가 타석에 등장할 때마다 모두 일어선다. 저지가 미국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해 세운 재단의 이름도 '애런 저지 올 라이즈(All Rise) 재단'이다. 왠지 저지가 진짜 기록을 세우는 날 모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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