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잔디 "김호중·송가인 덕에 트로트 부활..저도 음악적 고민하죠"[한복인터뷰]

한해선 기자  |  2022.09.09 06:00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데뷔하고 20년 동안은 고속도로에서 명절을 보냈어요. 트로트 가수에게 추석, 설 명절 무대는 의미가 특별해요. 적어도 세 마을은 가게 되는데 어르신들의 마음을 명절 때 훈훈하게 채워주고 오잔 생각이죠. 저는 노래를 하면서 고령자분들의 눈을 다 마주치려 해요. 앵콜도 더 하려 하는데 그게 저만의 룰이에요. 한가위 때는 보름달이 훤해서 밤에더 관객이 다 보여요. 이런 잔치에서 하나의 무대만 하더라도 관객의 눈을 다 마주치고 싶어요."

트로트 가수 금잔디(43)가 '고속도로의 여왕', '휴게소의 BTS'란 별명답게 팬들을 위한 20여년의 명절 풍경을 설명했다. 보다 많은 관객을 힐링시키기 위해 전국의 무대에 오른 금잔디의 열정이 느껴진다. 말 한 마디에서도 진정성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금잔디는 지금껏 관성으로 노래를 한 적이 없다. 그는 2022년 역시 매순간 최선을 다하는 프로페셔널함으로 대중을 만나고 있다.

"관객분들의 얘길 들으면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대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그분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는 거예요. 그게 저의 숙제이고 저의 임무라 생각해요. 데뷔 때부터의 마음이고요. 제 노래가 자식이라 생각하고 계속 이 모습으로 여러분과 함께하고 싶어요."

스타뉴스가 금잔디와 만나 추석 계획과 근황, 트로트에 대한 생각 등 여러 얘기를 나눴다.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명절 한복 인터뷰는 오랜만이지 않나.

▶명절에 한복인터뷰를 하는 게 특유의 느낌이 있다. 이번에 소속사를 옮기면서 새로운 모습도 보여주고 싶었다.

-강원도 홍천이 고향이라고. 올해 추석은 어떻게 보낼 계획인지?

▶지금까지 나에게는 명절이 따로 없었고, 명절이 나에게 제일 바빴다. 명절마다 나는 행사를 다니느라 도로에서 시간을 보냈고 집에 간 적이 없었다. 2년간은 코로나 때문에 더 모이기 힘들었는데, 이번 추석에 오랜만에 집에 가게 됐다. 부모님이 지금은 춘천에 사셔서 부모님 집에는 자주 갔지만, 명절에 따로 가는 건 올해가 20년 만이다.

-보통 명절에 본가에 가면 어떤 역할을 했나.

▶근 20년간 명절에 집에 못 갔기 때문에 오히려 엄마가 나를 챙겨주려 하실 거다. 내가 장녀이고 남동생이 있는데, 내가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엄마는 왜 부엌에서만 살아?'라며 '난 노래하고 돈 벌어서 살거야'라고 했다더라. 나는 엄마가 부엌에서 요리만 하는 게 좋지 않아 보였나 보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음식을 잘 할 줄 모르고 명절이 아닐 때도 집에 가면 엄마가 금잔디 왔냐며 생선을 발라주신다.

-금잔디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

▶내가 남동생을 고생시키지 않으려고 옥수수 한 개로 3일을 버틴 적도 있고 라면 하나를 3번에 거쳐 먹은 적도 있었다. 20살 어린 나이에 행사 무대를 할 수 있는 곳에 찾아다니면서 '저 일 좀 시켜주세요'라고도 했다. 그때는 하루에 8군데까지 다니면서 일했고 강단이 있었고, 어릴 때부터 생존본능이 강했다. 나는 엄마가 못 이룬 한을 이뤄주고 싶어서 돈을 버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가 아무데다 하지 못한 얘기를 나에게 하는데 나는 그걸 다 들어주고 싶다. 나에게 가족은 분신이다. 아빠도, 남동생도 그렇다. 추석, 설이라 하면 가족이 제일 먼저 생각난다.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명절에 어느 정도까지 행사를 하길래 고속도로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지.

▶고향에서 축제가 많이 열리는데 그곳에서 보고 싶어하는 가수가 뽑힌다. 트로트란 음악은 연령대를 구분짓지 않고 사람들의 애환을 담아서 즐거움을 드리는 음악이다. 힐링이 된다는 한 마디를 듣는 게 나에게 위로가 된다. 한 마을당 50명씩 세 마을을 150명 정도는 보고와야 내 마음이 좋더라. 명절 때 훈훈하게 마음을 채워주고 오잔 생각으로 그렇게 한다. 세 마을만 가도 새벽에 출발해서 꼬박 24시간이 걸린다. 돌아올 때의 마음은 못해도 200~300여분의 마음을 다 웃겨드리고 오는 거다.

-2012년 '오라버니'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대박을 친 후 앨범 300만 장을 팔고 '고속도로의 여왕', '휴게소의 BTS'로 불리기도 했다. 이 같은 수식어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세계적인 BTS 분들에게 부끄럽고 죄송하고 민망하다. 휴게소 화장실 앞에 늘 내가 있으니 화장실 갈 때 민망하긴 하지만 정말 감사하다. 모든 가수분들이 최선을 다할 텐데 그런 수식어를 가질 수 있는 것도 천운이라 생각한다.

-지난 2월 데뷔 20주년 정규앨범 'Remember'를 발표했다. 이후의 근황은?

▶내가 코로나를 겪으면서 느낀 게, 늘 주변에서 '쉬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하더라. 하지만 나는 쉬면 도태된다 생각했다. 20년 동안 달려오면서 한 번도 쉼에 도전하지 못했다. 불안감에 단 한시도 집에서 쉴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2015년에 공황장애가 왔다. 일을 하는데 노래를 안 하는 순간엔 안 좋은 생각이 자꾸 나더라. 그렇게 아프면서도 '쉬는 게 뭐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오면서 남도 쉬니까 나는 도태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데뷔 20주년 기념 앨범으로 웨딩화보처럼 사진을 찍으러 돌아다녔다. 책도 읽고 쉼에 대한 생각도 해보고 수중 웨딩촬영 등 다양한 걸 하면서 코로나 2년을 보냈다.

17, 18년 동안 함께한 매니저 오빠들이 나 때문에 일을 못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도 들어서 내가 소속사를 옮기는 것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게 됐다. 동갑인 생각엔터 대표와 친해서 소속사를 옮겼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오지랖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하더라. 내려놓을 줄도 알고 주변을 돌아볼 줄도 알고 내가 비로소 놓았을 때 채워지는 게 삶이란 걸 알았다. 최근 44년 만에 여행을 한 건데, 베트남, 미국에서 한 달 동안 여행을 하며 살이 쪘지만 행복했다. 한국에선 수면 장애가 있었는데 미국에 가니 잠이 잘 오더라. 마음이 편해진 거다. 44살에 쉼이란 것에 대해 너무 늦게 깨달은 게 아닌가 싶었다. 나를 돌아보지 못하고 산 것을 이제 알았는데, 그런 깨달음을 얻은 게 너무 감사했다.

-MBC 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에 김호중, 진성, 신동, 채령과 게스트로 출연했다.

▶예전엔 그런 프로에 나가면 너무 힘들게 잡은 프로라 생각해서 신경이 아주 곤두서있었다. 이번엔 아주 편안하게 녹화했다. 어느덧 'K-트롯'이 생겼고 동남아에서 그걸 따라하려 한다. 나도 자부심이 생겨서 '라스'에 여유롭게 나갔고 같이 나온 분들을 배려할 수 있게 됐다. 무슨 말을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은 나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었다. 채령씨는 말도 차분하게하면서 춤도 잘 추더라. 요즘 아이돌의 감성도 배울 수 있었다. '라스'는 지금도 트로트 가수에게 로망인 프로그램이다.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같은 소속사 생각엔터 식구인 김호중은 평소 어떤 후배인가.

▶원래 호중이가 울산에서 처음에 무대장치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내가 '일편단심'을 발표하고 초대가수로 갔고, 그 친구가 사전에 애국가를 불렀다. 이후에 호중이가 유명해지고서 나랑 통화를 했는데, 나는 '백일섭 선생님, 이태곤 같은 상남자 스타일을 좋아한다'고 하니 호중이가 나보다 12살 아래인데 '예전에 누나가 내 이상형이었다'고 하더라. 호중이가 의리도 있고 말을 되게 예쁘게 한다. 이 친구랑 대화를 하면 내가 남자같고 호중이가 여자같은 대화를 하는데 호중이가 포근하게 말을 한다. 호중이를 보면 너무나 바르게 잘 자른 느낌이 들고 내가 배울 점이 많게 느껴진다. 호중이는 나보다 12살 어리지만 배울 점이 많은 친구다. 같은 소속사에 있게 된 것에 대해 참 기분이 좋은 건, 내가 소속사에 들어가고 호중이가 가장 먼저 전화를 해 '누나가 우리 사무실에 와줘서 큰 힘이 돼요. 누나 진짜 큰 기둥을 쌓은 것 같아요. 감사해요'라고 하더라.

호중이는 클래식과 트로트를 접목시키는 음악을 시도하고 있다. 트로트란 장르가 4박자에 축소돼서 범위가 굉장히 큰 음악이다. 그동안 트로트 가수들이 너무 쉽게 관객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려고 트로트를 간결화 시킨 게 있었다. 조영남 선배님, 패티김 선배님의 노래는 어렵다. 그 분들의 노래는 성인가요라 부르는데 곧 트로트다. 나는 그런 음악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미스트롯', '미스터트롯'이 나오면서 김호중, 임영웅이란 친구가 성인 발라드를 갖고 나오고 그들의 특화된 보이스를 갖고 음악에 접목시키고 또 다른 트로트를 만들었다. 거기서 나는 찬사를 보낸다.

-트로트 후배들에 대한 애정이 커보인다.

▶이번에 김호중, 송가인, 임영웅 후배들이 콘서트를 방송으로 보여주는 것에 대해 극찬한다. 나훈아, 이미자, 패티김 이후로 트로트가 죽었다가 후배들로 인해 부활한 거다. 그래서 호중이에게 '트로트가 또 다시 업그레이드 됐어. 조영남 선배님 이후에 네가 또 이런 걸 만든 거야'라고 했다. 송가인이란 친구도 고마운 건, 국악하는 친구들도 트로트를 많이 한다는 것이다. 진정성 있게 노래를 한 친구들이 우승을 했고 그 친구들이 너무나 이 길을 제대로 닦고 있다. 송가인에게도 '비 내리는 금강산'을 듣고 내가 직접 '정통 트로트를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김호중, 송가인, 임영웅 후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크다. 그들의 음악을듣고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게 됐다.

-그밖에 요즘 관심 있게 보는 후배가 있다면?

▶어제 장민호씨와 다른 방송 녹화를 했는데 장민호씨가 내 생일을 또 챙겨주더라. 내게는 민호 오빠 같은 그런 찐친이 유일하다. 민호 오빠도 지금보다 더 잘 같이 잘 됐으면 좋겠다. 홍지윤씨도 인형 같은데 굉장히 잘 하는 것 같다. 양지은씨는 진이 됐는데도 불구하고 한없이 고개를 숙일 줄 아는 겸손한 친구여서 잘 됐으면 좋겠다. 송가인씨는 무명 때 뒤에서 노래를 듣다가 내가 '노래 겁나 잘하네'라고 말할 정도였고, 위기의식을 느낄 정도였다. 호중이도 워낙 아끼는 후배다.

-데뷔 전에는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해 2등을 한 적이 있다. 고(故) 송해 선생님이 별세했을 때 SNS에 남다른 그리움을 전하기도 했는데.

▶송해 선생님은 내가 1997년도 고3 때 만났다. 문희옥 선생님의 노래를 불러서 처음 우수상을 탔고, 연말 결산에서도 김혜연씨의 노래를 불러서 또 우수상을 탔다. 2000년도에는 내 데뷔 앨범이 나와서 전국노래자랑 초대 가수로 갔다. 송해 선생님이 처음엔 나를 못 알아보셨고 나도 소심해서 말씀을 못 드렸다가 송해 선생님의 전국투어 빅쇼를 한 적이 있는데 내가 여자주인공을 맡아 남자주인공 송해 선생님과 악극을 같이 했다. 그때 선생님에게 내가 홍천군 편에 나갔다고 얘기하니, 선생님이 과거 영상을 보시고 나를 알아보시더라. 선생님이 나를 많이 예뻐하셨다.

송해 선생님과는 '도전 1000곡'에 커플로도 나갔는데 선생님이 가사를 많이 아셨고, 나도 승부욕이 좋아서 우리 팀이 1등을 했다. 금 열쇠를 3연속 우승으로 받았다. 선생님이 '우리 잔디는 너무 똑똑해서 가사도, 대사도 잘 외운다'고 해주셨다. 선생님과 나의 케미가 너무 좋았고 칭찬을 아끼지 않으셨다. '우리 잔디는 탐욕이 없고 무대에 대한 태도도 좋다'고도 해주셨다. 송해 선생님의 한 작품에 함께해서 너무 감사하다. 세기를 넘나드셨던 분과 만난 과정이 나에게 인생의 큰 추억이다. 송해 선생님은 나에게 가장 크게 잊지 못할 선생님이다. 후배들, 동료들에게 나도 선생님이 해주신대로 하고 싶다.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가수 금잔디 /사진=김창현 기자 chmt@


-데뷔 23년 차다.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활동하려 하는지?

▶데뷔 때와 마음이 똑같다. 무대 위에서 살고 웃고 울고 쓰러지고 아프고 다 하고 싶다. 내 노래를 듣고 암 말기를 치료하신 분도 뵀고, 정년퇴임 후 극도로 우울증에 걸리셨던 분이 컴퓨터로 편집을 하시는 것도 봤다. 치킨 배달을 매일 하시면서 주말에 내 공연마다 전국에 오신 분도 있다. 활짝 웃으면서 공연을 보시던데, 그 이틀을 기다리고 사신다 하더라. 그런 분들의 얘길 들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대에서 가장 예쁜 모습으로, 아프지 않은 모습으로, 변하지 않은 모습으로 그분들에게 좋은 노래를 들려드리는 것이다. 그게 나의 숙제이고 나의 임무다. 데뷔 때부터의 마음이다. 내 노래가 자식이라 생각하고 계속 이 모습으로 여러분과 함께 하겠다.

-비혼을 선언했는데, 특별히 비혼을 다짐한 이유가 있을까.

▶일단 시간이 없고 이별하고 상처 받는 게 두렵다. 예전에 최진희의 '꼬마인형'을 듣고 펑펑 울었다. 다른 가정의 남자와 사랑해 아이를 가졌는데, 남자는 떠나지만 그 아이를 안고 살겠다는 굉장히 슬픈 가사다. 노래를 통해 이런저런 슬픈 사랑을 다 해봐서 현실에선 그렇게 하고 싶지 않더라.

-마지막으로 팬들에게 추석 인사 한 말씀.

▶힘든 시기가 지나간 만큼 모든 분들께서 아팠던 만큼 행복이 더 크게 느껴지실 거다. 지나간 고된 시간의 보상을 받는 넉넉한 한가위가 되셨음 좋겠다. 모든 분들이 지금까지의 한가위보다는 가족들과 더 돈독함을 느끼고 먹거리도, 웃음도, 화목함도 풍성한 한가위 되셨으면 좋겠다. 금잔디도 넉넉함을 드리게끔 보름달에 소원을 빌겠다.

한해선 기자 hhs422@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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