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이 된 벤투의 '고집'... 사라진 경쟁, '고인 물'만 남았다

김명석 기자  |  2022.07.29 05:45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아직은 이른 시점이다. 기틀은 가지고 있지만, 최종 엔트리 문은 누구에나 열려 있다."


지난 4월이었다. 파울루 벤투(53·포르투갈) 감독은 파주 NFC(축구대표팀 트레이닝센터)에서 열린 미디어 간담회에서 월드컵 본선 최종 엔트리 '무한 경쟁'을 예고했다. 월드컵 최종예선을 거치면서 어느 정도 기틀은 갖춰진 상태지만, 최종 엔트리를 제출하는 시점까지는 최대한 많은 선수들을 관찰하겠다는 구상이었다.

꾸준히 부름을 받았던 선수들의 자만심을 경계하고, 동시에 그동안 대표팀과는 인연이 없던 선수들에겐 월드컵 출전의 꿈을 키울 동기부여가 됐다. 그동안 '쓰는 선수만 쓴다'는 비판 속에서도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성과를 올린 가운데 이제는 벤투호에도 본격적인 경쟁이 이어질 것이란 기대도 있었다.

7월 EAFF(동아시아축구연맹) E-1 챔피언십(동아시안컵)은 그래서 더 중요했다. 6월과 9월 A매치는 유럽파들의 대거 차출로 대표팀 문이 좁을 수밖에 없던 반면, 동아시안컵은 유럽파 차출이 불가능해 많은 K리거들을 시험대에 올릴 기회였기 때문이다. 일본이 최종예선 등을 거치면서 검증이 끝난 J리거들을 대부분 제외하고 사실상 3진에 가까운 파격적인 선수들로 대표팀을 꾸린 것 역시 같은 맥락이었다.

그러나 정작 벤투 감독이 직접 뽑은 동아시안컵 명단엔 사실상 '경쟁'이 사라졌다. 기자회견도 없이 공개됐던 대표팀 명단은 대부분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았던 선수들, 월드컵 최종 엔트리 입성이 유력한 선수들이 주축을 이뤘다. 일부 어린 선수들이 포함되긴 했지만 현실적으로 단번에 '월드컵 엔트리 경쟁 구도'를 흔들 선수들은 아니었다. 경쟁이 아니라 기존에 늘 뽑히던 선수들을 중심으로, 몇몇 어린 선수들에게 A매치 경험을 주는 정도의 대표팀 구성에 그친 셈이다.

훈련 중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훈련 중인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선수들. /사진=대한축구협회
예컨대 K리그에서 꾸준히 활약을 펼치고도 줄곧 벤투의 외면을 받았던 주민규(제주유나이티드)나 홍정호(전북현대)는 어김없이 제외됐다. 이번 시즌 좋은 활약을 펼친 이청용(울산현대)이나 김대원(강원FC), 이승우(수원FC) 등도 모두 빠졌다. 앞서 꾸준히 벤투 감독의 부름을 받았던 선수들과 '경쟁 구도'에 오를 만한 선수들, K리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스스로 대표팀 승선 자격을 갖춘 이들은 정작 시험대조차 오르지 못했다.

사라진 경쟁 탓에 벤투호엔 사실상 '고인 물'만 남았다. 지난 27일 한일전 선발 라인업 가운데 무려 10명은 이미 월드컵 최종예선을 뛰었던 선수들이자, 큰 이변이 없는 한 최종 엔트리 승선 가능성이 큰 선수들로 꾸려졌다. 반면 일본은 단 2명만이 최종예선을 뛰어본 선수들이었다. 벤투 감독과 모리야스 하지메 일본축구대표팀 감독의 엇갈린 결정이었다.

모리야스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한다는 동기부여가 명확했던 일본 선수들은 경기력과 투지로 한국을 압도했다. 반면 한국은 그동안 꾸준히 A대표팀에 승선했던 선수들인데도 일본에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벤투호를 향한 팬들의 분노가 큰 건 비단 0-3이라는 스코어뿐만 아니라 시종일관 무기력했던 선수들의 모습에 대한 실망감도 컸기 때문이다.

대회를 마친 뒤 결실도 크게 달랐다. 모리야스 감독은 "9월 A매치 평가전에 부를 만한 선수들을 발견한 대회"라고 평했다. 현지에선 MVP(최우수선수상) 소마 유키(나고야 그램퍼스)를 비롯해 후지타 조엘 치마(요코하마 F.마리노스), 마치노 슈토(쇼난 벨마레) 등을 주목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경쟁 구도에 뛰어들 만한 새 얼굴을 발견하지 못했다. 애초부터 벤투 감독 구상에 포함된 선수들이 대부분 뛰었던 탓이다.

더 큰 문제는 일본의 사실상 '3진급' 전력에도 0-3 완패를 당했던 선수들 대부분은 여전히 월드컵 출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심지어 동아시안컵조차 기존 선수들을 중용한 벤투 감독의 고집 탓에, 기존 경쟁 구도에도 사실상 변화가 없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유럽파 중심의 이른바 '플랜 A' 의존도는 더욱 심화됐고, 이는 월드컵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팀들이 더없이 쉽게 대비할 수 있도록 만드는 치명적인 약점이 됐다. 4년 동안 준비했던 팀이자, 월드컵까지 4개월도 채 남지 않은 벤투호의 현주소다.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파울루 벤투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 /사진=대한축구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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