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준호 "작품상 받는 자리에서 뒤에 서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21.12.16 08:00
2021년 한국영화계는 코로나19 팬데믹이 2년째 이어지면서 고난이 쌓이는 한편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는 시기였습니다. 한해를 마무리하면서 스타뉴스가 그 속에서 빛났던 올해의 영화인들을 만났습니다. 첫 주자는 '모가디슈' 류승완 감독, 두 번째 주자는 배우 한예리, 세 번째 주자는 배우 허준호입니다.


허준호 허준호


얼굴에 살아온 세월이 새겨져가는 배우를 보기란 쉽지 않다. 그 얼굴이, 그 얼굴로, 수많은 감정을 드러낼 수 있는 배우는 더욱 찾기가 쉽지 않다. 스크린에서, TV로, 다시 휴대전화로, 점점 작아지는 화면 속에서 백마디 말보다 표정 하나로 숱한 감정을 농축시킬 수 있는 배우. 허준호다. 허준호는 '모가디슈'로 배우의 얼굴을 거대한 스크린에서 볼 때의 쾌감을 관객들에게 선사했다. 드라마 촬영에 바쁜 허준호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었다.

-큰 사고를 당하거나, 큰 고초를 겪었거나, 크게 아프고 난 뒤, 그 다음의 삶을 다시 산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다시 열심히, 잘, 착하게 산다고 마음 먹어도 그러기가 결코 쉽지 않다. 대체로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곤 한다. 그런데 허준호는 휴지기 전과 후과 달라도 너무 다르다. 복귀 이후 함께 작업을 같이 한 수많은 동료들이 한결 같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연기는 차지하고 삶에 대한 칭찬들이 가득한데.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이다. 2005년에 교통사고가 크게 났다. 차가 폐차가 될 지경이었으니깐. 그 때 내 몸을 빛이 감싸는 걸 느꼈다. 내 입으로 이게 하나님 빛이구나라고 토로했다. 원래 불교신자였다. 버리려고 하고 내려놓으려 해도 답이 없더라. 그런데 다 버리니깐 예수님을 주시더라. 그렇게 삶의 목표를 주셨다. 그 뒤로는 내 계획이 없고 주신 대로 맡기고 살고 있다.

-연기 활동을 중단하고 미국에서 살다가 2016년 드라마 '뷰티풀 마인드', 그리고 영화는 '불한당'으로 복귀했는데.

▶(설)경구가 미국으로 찾아왔다. 어느날 사무실에 출근했더니 경구가 (송)윤아와 아기 데리고 와 있더라. "어떻게 알고 왔냐"고 하니깐 "내가 너를 못 찾을까"라고 하더라. 그렇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 겸사겸사 '불한당'을 하게 됐다.

사실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전에도 연기 제안들이 있긴 했지만 다 고사했다. 그런데 '뷰티풀 마인드'는 나한테 의사 역할을 제안하더라. 요즘은 내가 많이 (작품 속에서)신분이 상승했지만 그 전에는 그런 역할을 제안받았던 적이 없었다. 새로운 도전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드라마 속 역할도 그렇고.

-'불한당' 이후 '국가부도의 날'을 했는데.

▶'국가부도의 날'은 시나리오를 읽었는데 큰 역할이더라. 상업영화인데 나 같이 인지도가 없는 사람에게 그렇게 큰 역할을 주다니 의외였다. 제작진을 만났는데 내가 예전에 했던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를 이야기하더라. 당시 50회까지 계약하고 그 뒤로 홍콩영화를 찍기로 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인기가 높아지니 덜컥 연장이 돼버렸다. 다른 작품을 하기로 약속을 했으니 그 드라마에선 50회에 하차할 수 밖에 없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에겐 나쁜 사람일 수 밖에 없게 됐다. 내 딴에는 약속을 지켰는데 나쁜 놈이 돼버린 셈이었다. 그런 작품 속에 내 모습을 좋게 기억해주고 영화 쪽에서 인지도도 낮은 나 같은 사람에게 큰 역할을 준다니 너무 감사하더라.

-'국가부도의 날'에서 마지막 얼굴은 영화가 끝난 뒤에도 오래 기억나는데.

▶내가 연기를 했다기 보다 하나님이 해주신 것이다. 연기를 하고 그 뒤에 그 얼굴을 작품으로 봤을 때 내가 모르는 얼굴이 거기 있는 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그 장면은 원래 그렇게 끝나는 게 아니었다. 원래대로 찍고 감독님에게 "한 컷만 더 찍죠, 제가 한 번 해볼게요"라고 요청드린 장면이다. 결국 그 장면을 영화에 썼더라. 나부터 IMF 시절을 겪었던 터다. 사람들이 우리가 힘들었고 무시받았던 시절은 기억 못하고 너무 콧대 세우고 살고 있지 않나 싶다. 외국인노동자들이 너무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하는데 너무 미안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마음들을 담아보려고 했다. 그 얼굴이 다르게 느껴졌다면 내가 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다.

-'인랑'에도 특별출연했는데.

▶김지운 감독이 내가 미국에 있을 때 밥을 사주려 자주 찾아왔다. 그런 김지운 감독이 같이 하자는데 어떻게 안 할 수 있나.

-허진호 감독의 '천문'에서도 분량은 짧지만 신구와의 독대 장면은 엄청나게 인상적이었는데.

▶허진호 감독은 영화 '그 섬에 가보고 싶다'에서 배우와 연출부로 처음 만났다. 당시 MBC 주말드라마를 찍고 있을 때였다. 박광수 감독님이 이름을 내야 하니깐 주말드라마를 찍으면서 이 영화를 같이 하라고 허락해주셨다. 촬영장소가 어마어마하게 멀었다. 혼자 하루 종일 운전하고 배타고 들어가서 하루 찍고 오거나 아니면 찍지도 못하고 올라올 때도 있었다. 그럴 때 연출부인 허진호 감독이 참 잘해줬다. 그리고 '천문'은 프로듀서가 '화산고'를 같이 한 친구였다.

-사람들과 좋은 인연들로 작품을 계속 하게 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옛날에도 지금도 책(시나리오)이 우선이다. '천문'은 내가 예전부터 정말 존경해온 신구 선생님과 같이 독대하는 장면이 있어서 출연을 결심했다. 나는 TV드라마에서 어마어마한 내공의 연기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고, 엄청난 것들을 배웠다. 내 영웅인 신구 선생님과 마주 보고 연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정말 잡고 싶었다.

허준호 '모가디슈' 스틸 허준호 '모가디슈' 스틸
-'모가디슈'는 어떻게 하게 됐나.

▶류승완 감독과 처음 만나서 같이 밥을 먹으면서 영화 이야기를 들었다. 신뢰가 가더라. 첫 만남에서 바로 결정했다. 삶이 바뀐 것이다. 에전에는 계약할 때 계약서를 갖고와라, 이러면서 다 살폈는데, 이제는 믿고 간다. 다 이유가 있으시니깐 인도하시겠지라고 믿는다.

-그런 믿음이 어떻게 가능한가.

▶사람한테 많이 다쳤고, 나도 나를 못 믿는다. 2016년 허준호와 2021년 허준호가 또 다르다. 요즘은 좀 잘된다 싶으니깐 점점 더 교만해지고 있다. 예전보다 대본을 덜 본다. 그래서 (대본을) 더 보려고 노력한다. 교만이 계속 꿈틀거린다. 욕심도 더 생긴다. 앵글에 대한. '모가디슈'에서 구교환이 죽는 장면을 찍을 때 내 얼굴이 조금이라도 더 나왔으면, 아무래도 북한쪽 인물들이니깐 내 얼굴로 그 장면이 끝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그래서 카메라에 더 걸리려고 구교환 주위를 맴돌기도 했다. 예전 같았으면 감독에게 이야기도 했을 것이다. 결국 그 장면은 조인성 김윤석 얼굴로 마무리됐다. 그게 이 영화에 맞기도 하고. 그날 밤에 숙소 가서 기도했다. 욕심을 버리게 해달라고. 나를 못 믿으니 계속 기도한다.

-그 믿음이 보답 받았나.

▶믿음의 보답이라기 보다 좋은 작품을 주시고 상도 주시니 너무 감사하다. '모가디슈'가 청룡영화상에서 작품상을 탔다. 나도 조연상을 탔지만 내 개인적인 상보다 작품상을 탄 게 훨씬 훨씬 기쁘고 감사하다. 배우가 사람들이 알아주는 작품을 해야지 개인적인 영광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여전히 사람들이 허준호를 이야기하면 '주몽'과 '올인'을 말한다. 그런 작품들에 한 작품을 더 할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모가디슈' 해외 촬영 현장이 꿈꾸던 현장이라고 했었는데.

▶나한테 누가 이런 기회를 주겠나, 그런데 줬고, 그 현장이 너무 좋았다. 아마도 난 한국에서 가장 해외 로케이션을 많이 한 배우 중 한 명일 것이다. 예전에는 해외 로케이션을 하면 매일매일 사고였다. 내 앞에서 죽는 사람도 있었고, 실명한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모가디슈' 촬영장은 경이롭더라. 우리나라 영화가, 스태프들이 이렇게 발전해서 여기까지 왔구나라는 생각에 정말 감동했다. 물론 최근에 '듄'을 보고 고개를 푹 숙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게 시작이다.

-'모가디슈'에서 북한 림용수 대사 역을 연기하려 했을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졌나. 초목표가 무엇이었나.

▶생존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무슨 위치가 필요하나, 내 손자, 내 가족, 내 부하들을 살려야 한다. 할아버지 아닌가. 이게 제일 중요했다. 자존감보다는 자존심이 셌을 것이고. 냉정하기도 해야 하지만 꼭 그렇게만은 못하는. 혹시 당에 내가 한 말을 이야기하면 어쩌나라고 고민하기도 했을테고. 현장에서 아기들이 네 명 있었던 게 내가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데 선물이었다.

여전히 연기할 때 내 목표는 그 작품의 감독에게 '오케이'를 받는 것이다. 한국대사관 앞에서 "갈 곳이 없오"라고 이야기하는 장면은 여전히 마음에 부족한 부분이 느껴진다. 당시에도 감독이 오케이는 했지만 계속 마음에 자신이 없어서 고민했다.

처음 모로코에 도착해서 본 촬영 장면이 시위 장면이었다. 아기엄마가 아기 신발 들고 우는 장면이었는데, 영화 속에는 소리를 줄여서 넣었지만 현장에서는 배우의 소리가 마치 동물 울음소리처럼 들렸다. 몰입이 안되려야 안 될 수가 없었다. 매일 힘을 빼려고 운동을 했다. 매일 지쳐야 했고, 건강한 얼굴이 드러나면 안됐으니깐.

현장에선 늘 현장에 맞춰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찍고 있는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는 부잣집 아저씨라 안 쓰는 화장품도 얼굴에 바르고 있다.

-복귀 이후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고 있는데.

▶어릴 때도 악역을 한 번 하면 생활연기를 하고 영화와 드라마, 뮤지컬을 오가면서 했다. 요즘은 캐릭터를 바꿔가면서 하도록 한다. 감사하게도 좋은 작품들을 제안해주셔서 그럴 수 있게 됐다.

-인생 2막에 좋은 일들이 연이어 있는데.

▶인생 2막이 아니라 죽었던 놈을 다시 살리신 것이다. 평안을 알게 됐다. 화가 나더라도 회복 시간이 짧아졌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풀려 매일 술을 마셨다. 술에 매달렸다. 지금은 하나님께 매일 매달린다. 나도 똑같다. 욕한다. 입 밖으로 안 내뱉을 뿐이다. 속사람은 똑같다. 그래서 매일 매시간 매달린다.

-요즘은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특히 유명인일수록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거나 드러내지 못하게 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진짜 나는 누가 뭐래도 예수님에게 미친 놈이다. 배우는 두 시간 동안 희노애락을 관객에게 주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정작 나는 사람들한테 희노애락을 받을 수가 없다. 대중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아이러니라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그걸 술로 풀려했지만 이제는 예수님을 만났다. 내 안에 악마라고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들이 여전히 있다. 그런 것들이 '이리와, 안아줘' 같은 작품을 할 때 드러나기도 한다. 내 안의 아픈 것들, 악한 것들을 내가 아닌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게 해주신 것도 하나님이 허락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과거에 일본에서 뮤지컬을 홍보하러 갔을 때 일본 기자가 독도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고 질문했을 때 대처한 게 요즘 새삼 화제를 모으고 있다. 당시 일본기자에게 다가가 펜을 빼앗은 뒤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는데.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니깐. 그 순간 지혜를 주신 것 같다. 당시 일본 취재진과 사전에 오직 작품에 대한 질문을 하기로 약속을 했다. 그런데 그 기자가 약속을 깬 것이었다.

아버지(허장강)가 살아계셨을 때 일이다. 내가 열살 때 돌아가셨으니 그보다 어릴 때였다. 눈이 왔는데 치우지 않고 있으니 나랑 형들을 불러서 혼을 내시면서 당신 허벅지를 보여주셨다. 총알이 뚫고 간 자국이었다. 일본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관통상을 당하셨다고 하더라. 그렇게 살아내서 너희들을 키웠는데 어떻게 이런 기본적인 것들도 안 하느냐고 말씀하셨다. 어린 마음에 우리 아버지 끌고 가서 총알 맞게 한 나쁜 놈들이란 마음이 들었다. 가뜩이나 그런 마음을 어릴 적부터 갖고 있었는데 약속도 안 지키고 그런 질문을 하니 화가 나기도 했다. 그렇게 답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지혜를 주신 것 같다.

허준호 허준호
-청룡영화상에서 상을 받으며 "계속 기적을 일으켜주시는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이어가다가 마지막으로 "다시는 사고 안 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한 게 화제를 모았는데.

▶나도 모르게 나왔다. 안 그래도 가족들에게 혼 났다. 회개를 해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시키신 것 같다. 사실 사람 욕심은 똑같다. 후보에 오르니 시상식 당일까지는 잠도 안 오더라. 그래서 차라리 빨리 그날이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당일에는 마음이 편해지더라. 내가 상을 받는 것보다 작품상을 받은 게 훨씬 기뻤고. 작품상을 받는 자리에 그 뒤에 같이 서 있는 배우가 되고 싶었다.

'모가디슈'가 아카데미 장편외국어영화상 한국 후보가 된 것도 너무 감사하다. 매일매일 감사하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더 매달린다. 내가 자꾸 나를 건든다. 자꾸 욕심이 생긴다. 그저 주시는 대로 살아야 하는데 자꾸 욕심을 부리러 한다. 그래서 계속 매달린다.

예전에는 혼자 못 있는 사람이었다. 사람 좋아해서 항상 사람들과 있어야 했다. 지금은 하나님 만나는 즐거움으로 산다. 아침에 일어나서 기도하고 대본 외우고 연기하고 운동하고 다시 기도 드리고 잔다. 매일매일이 바쁘다.

-왜 기적이라고 생각하나.

▶이 나이에 다시 돌아와서 나도 모르는 연기가 나온다. 좋은 작품과 만나게 해주시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해주신다. 예전에는 스트레스를 술먹고 노래 부르는 것으로 풀었다. 노래를 부른다기보다 소리를 지르려고.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 만나는 즐거움으로 살게 해주시니 얼마나 기적인가.

-미국에서 한 때 목회자의 삶을 생각하기도 했는데.

▶나는 목회할 자격이 안된다. 나를 묵상하고 기도해보니, 나는 목회를 하면 사람을 꼬셔서 돈을 벌겠더라. 연기를 할 것 같더라. 잘못하면 사람들을 다 지옥으로 보내겠더라.

-실제로 복귀한 다음 좋은 작품들을 계속 하고 있는데. 그건 좋은 연기와 태도를 계속 보여줬기에 기회가 이어지는 것이기도 한데.

▶나는 성향이 워커홀릭이다. 이왕 일하는 거 최선을 다하고 와야지 마음이 놓인다. 작품을 준비하는 분들은, 감독이나 작가들은, 길게는 10년 넘게 이 작품을 계속 생각하고 준비해온다. 그런 작품들을 하는데 내가 허투루 하면 안된다.

예전에는 선배들이 억지로 시켜서 한 작품들도 많았다. 3일만 도와줘,라고 해서 현장에 가보면 주인공인 것도 있었다. 밤을 새워 일하고 막 잠들었는데 잠깐만 도와줘,라고 해서 눈꼽만 떼고 갔더니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고 주인공이더라. 안한다고 했다가 많이 컸다란 소리를 들어서 할 수 없이 한 작품도 있다. 말도 안 되게 속상했는데 요즘은 한 작품, 한 작품, 최선을 다해 준비해온 분들과 같이 일하게 됐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후진 양성은 생각이 없나.

▶내가 급이 되면 모를까 말도 어눌하게 해서 안된다. 내게 연기 스승님이 몇 분 계신데, 그 분들처럼 조리있게 말을 할 줄 모른다. 내가 알려주면 허준호식 연기만 알려주게 된다. 난 TV드라마를 하면서 정말 연기 잘하는 분들을 너무 많이 만났다. TV드라마를 하면서 대사 처리하는 방법이 늘었다. 내가 굳이 뭔가를 차린다면 헬스장을 차릴 것 같다. 신체훈련은 노하우가 있으니깐. 그냥 나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에 변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여전히 성질이 남아있는데 기도한다. 기도하고 또 기도한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