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은 극장에서 영화 보지 말라는 소리"..'비상선언' '킹메이커' 개봉 연기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21.12.17 10:03
"직장인은 주중에 퇴근하고 극장에서 영화 보지 말라는 소리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로 영화관 영업시간을 다시 제한하자 영화계 안팎의 반발이 거세다. 오후10시 이후 영업을 금지시키면, 영화 상영 시간을 고려하면 오후7시 이후 상영은 거의 어렵기 때문이다. 영화계의 어려움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조치로 퇴근하고 극장을 찾으려는 평범한 직장인들은 사실상 극장에서 영화 관람이 불가능해진다.

김부겸 국무총리는 16일 코로나19 대응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사적모임 허용인원을 4인까지 축소하고 전국에 걸쳐 동일하게 적용한다"며 강화된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영화관과 공연장, PC방 등은 오후 10시까지로 제한된다. 이번 조치는 이번 주 토요일(18일) 0시부터 특별방역시간 종료일인 내년 1월2일까지 16일간 적용되며 연말에 방역상황을 다시 평가해 연장 여부를 검토한다.

이 같은 방침에 따라 연말연시 특수를 기대했던 극장가는 망연자실한 상태다. 15일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개봉해 관객을 극장에 불러모으고 그 기세를 연말연시 개봉하는 한국영화들이 이어받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당초 극장계에선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 강화 조치에서 방역 대책이 확실한 일부 업종들은 예외가 있을 수 있다는 전망에 한가닥 기대를 내걸었지만 직격탄을 맞았다. 극장업계는 영화관이 모두 백신패스관으로 운영되는데다, 마스크를 쓰고 관람하고, 음식물 취식도 금지됐는데, 그런 특수성을 인정받지 못한 데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이 지난 15일 개봉해 이틀만에 100만명을 동원하는 등 초반 열기가 뜨겁지만 18일 이후부터는 오후10시 이후 극장 영업이 금지되기에 상영시간대가 대거 사라졌다. 마블팬들 사이에선 "타노스 당했다"고 자조하고 있는 분위기다.

정부의 이 같은 조치에 영화계 각 단체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영화프로듀서조합, 한국영화감독조합 이사회, 영화수입배급사협회, 한국시나리오작가조합, 상영관협회 등은 정부 조치가 발표되자 곧장 "극장 영업시간 제한은 영화산업의 도미노 붕괴를 가져온다"는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각 단체들은 영화계가 팬데믹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지만 제대로 된 피해보상은 없는 상황에서 극장은 영업을 계속해왔다고 설명했다. 극장이 문을 닫는 순간 영화계 전체의 생존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킬 게 분명할 뿐더러 극장은 방역을 철저히 해왔다고 전했다. 하지만 다시 극장 영업시간을 오후10시 이후 금지할 경우 영화의 상영 시간을 감안하면 오후 7시 이후 상영 시작은 거의 불가능하게 된다고 호소했다. 또한 각 단체들은 "이는 단순히 극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문화생활 향유를 심각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영화 개봉을 막음으로써 영화계 전체에 피해가 확산되고 결과적으로 영화산업의 도미노식 붕괴로 이어질 우려가 크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이번 조치를 전후로 연말연시 개봉을 계획했던 영화들이 대거 개봉을 연기하고 있다. 송강호 이병헌 전도연 주연 영화 '비상선언'이 개봉을 연기했을 뿐더러 12월29일 개봉 예정이었던 설경구 이선균이 호흡을 맞춘 '킹메이커'도 결국 개봉을 연기했다. 12월 개봉 계획이었던 작은 규모의 외화들도 줄줄이 개봉을 미루고 있다. 북미 개봉에 맞춰 개봉하는 할리우드 직배 영화들만 예정대로 개봉을 강행하고 있다. 영화 각 단체들의 우려가 현실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각 영화 단체들은 오는 21일 국회 앞에서 시위를 기획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한국영화계 모든 이해단체들이 한 목소리로 정부의 이번 방역조치에 대해 반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긴급 성명에는 영화제작가협회, 영화산업노조, 한국독립영화협회 등등이 빠져 있다. 성명서가 긴급히 발표됐기에 의사를 취합하는 데 시간이 촉박했기도 했을 뿐더러 이해관계가 다르기도 한 탓이다.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전체 조합원의 뜻을 묻고 찬반을 결정하기에는 시간이 촉박해 이사회 명의로 성명서에 이름을 올렸다. 영화계에는 영화관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멀티플렉스 지원을, 대기업 지원이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영세업자들이 다 고통 받는데 대기업인 멀티플렉스는 예외로 해달라는 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의견도 있다. 극장이 망하면 영화계가 망한다는 주장이 정부가 세밀한 방침을 세우는데 또렷히 전달되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이번 긴급성명 발표에 참여한 한 영화계 인사는 "평일 저녁에 평범한 직장인들과 학생들이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는 건, 극장 오지 말고 집에서 OTT를 소비하라는 시그널"이라며 "이런 조치들이 계속돼 관객의 관람 패턴이 바뀌게 되면 문화 소비 형태가 달라진다"고 토로했다. 이어 "극장이 망하면 한국영화계가 망한다는 소리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면서 "한국영화계가 성장할 수 있었던 건 한국영화를 사랑해준 관객들 덕이다. 그 관객들이 이제 극장을 찾지 않게 된다. 이 문제는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다고 회복되는 게 아니다"고 덧붙였다.

정부의 이번 방역 조치는 내년 1월2일까지 이어지며 코로나19 확산세가 진정되지 않으면 또 연장될 가능성이 크다. 2주씩 연장되다 보면 곧 설연휴다. 이렇게 되면 설연휴를 겨냥한 영화들이 다시 개봉을 연기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영화관 영업시간 제한 조치가 계속 연장되면 올겨울 극장가는 지난해 이상으로 암울해질 전망이다.

현재 영화계는 팬데믹 기간 동안 개봉하지 못한 한국영화들이 쌓여있고, 그러다보니 새로운 영화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K콘텐츠 붐이 일고 있지만 정작 그 중심에 있는 한국영화인들을 배출한 영화계는 고사 직전이다. 영화관 영업시간 제한조치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면 신작 개봉을 섣불리 계획할 수가 없다. 시장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한데 승부를 걸 수 없는 탓이다.

극장 영업시간 제한 조치가 반복되면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만 극장에서 살아남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미국 개봉에 맞춰 개봉하는 할리우드 직배사 영화들은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와 무관하게 개봉을 진행하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위드코로나 이후 영화관람료 지원정책으로 가장 수혜를 입은 영화는 마블영화 '이터널스'였으며, 이번 영화관 영업시간 제한 조치로 상대적으로 덜 피해를 보는 영화들도 '스파이더맨: 노 웨이 홈' '킹스맨: 퍼스트 에이전트' '매트릭스: 리저렉션' 등 할리우드 직배 영화들이다. 한국영화 경쟁작들과 한국 수입업자들이 사들여 개봉을 계획했던 작은 규모의 외화들은 줄줄이 개봉을 연기한 탓이다.

위드코로나든, 사회적 거리두기든, 세밀한 조치가 필요하다. 방역 대책이 확실하다면 안정적인 상황을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 개봉 계획을 세울 수 있고, 그래야 좋은 한국영화를 보기 위해 관객들이 극장을 찾는다. 코로나19 초창기에 극심했던 극장포비아가 철저한 방역으로 사라지고 있는데, 정부 정책은 코로나 초창기와 다를 바 없다.

실패를 계속 붙잡고 있으면 새로운 실패가 달라붙는다. 이제라도 새로운 정책이 시급하다. 더 늦으면 한국영화산업의 도미노 붕괴가 시작된다. 아니 이미 시작됐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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