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시어머니가 준 선물은 실제 경험담 [★비하인드]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19.10.26 09:30


명절이다. 시댁에 내려갔다. 명절은 휴일이 아니다. 늦잠이라도 자고 싶지만, 시어머니가 먼저 일어나 부엌을 서성인다. 부리나케 일어나 "어머니, 일어나셨어요?"라며 인사한다.

딱히 악의는 없다. 시어머니는 아침 준비하던 것과 명절 음식 밑 준비를 부탁한다. 악의는 없다. 시어머니도 평생 그렇게 해왔을 뿐. 그래도 스멀스멀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시어머니가 선물이라며 곱게 포장한 봉투를 준다. 기쁘다. 그래도 며느리 생각을 해줬다는 게. 앞치마였다. 은행에서 사은품으로 나눠준 것이었다. 시어머니는 너무 좋지 않냐는 얼굴로 "너 주려고 오래 줄 서서 받아온 것"이라고 말한다. "감사합니다"라고 답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이다. 웹툰 '며느라기'에도 똑같은 일화가 있다. 같은 일화가 다른 매체에 각각 실렸다. 우연일까?

우연이다.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은 "앞치마 이야기는 (투자,배급사) 롯데 엔터테인먼트 OOO팀에 있는 분의 실제 경험담"이라고 말했다. "'며느라기' 이야기는 나중에 들었는데 그 웹툰을 본 적은 없다"고 했다.

우연이 아니다. 이 일화가, 실제 누군가의 경험담이고, 그 경험담이 각각 다른 영화와 웹툰에 실렸다. 그렇다는 건, 보편적인 일이란 뜻이다. 똑같지는 않아도 비슷한 경험을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니 이 우연은 우연이 아니다. '82년생 김지영'이 그만큼 보편적인 이야기란 뜻이다.

'82년생 김지영'은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982년에 태어나 오늘을 살아가는 김지영의 이야기다. 100만부가 팔린 소설이지만,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다. 사뭇 비이성적인 반대다. 이 반대는 '82년생 김지영'이 남녀 갈등을 조장한다는 게 명분이다. 더 속내를 드러내는 사람들 중에는 1982년에 태어난 여자들이 얼마나 팔자가 좋았는데 차별 타령이냐고 한다. '82년생 김지영' 속 보편적인 이야기들은 다른 행성이나 다른 차원의 이야기, 또는 1962년생 이야기로 치부하곤 한다.

사람들은 대체로 남의 행복보다 남의 불행에 더 공감한다. 희한하게 여성의 불행은 남성의 공감을 쉽게 얻지 못한다. 불행이라고 생각 못하는 탓이다. 위협이라고 받아들이는 탓이다. 기득권에 대한 잠재적인 위협. 이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나고 자라 획득한 것들에 대한 위협. 불행이지만 불행인지도 모르고 길들여진 탓이다. '82년생 김지영'의 앞치마 장면은, 이 장면이 누군가의 경험담인 건, '며느라기'에도 똑같은 일화가 있는 건,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

대체로 남성은 구석으로 몰리면 자신을 연민한다. 대체로 여성은 구석으로 몰리면 자신을 검열한다. '82년생 김지영' 속 남녀도 그러하고, 이 서사에 대한 첫 반응도 대체로 그러하다.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강한 반발 속엔 자기 연민이 담겨 있다.

그래서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의미 있다. 이 영화는 연민하지도 말고, 검열하지도 말자고 한다. 공감하자고 한다. 공감이 더 많아지면, 다음 세대는 조금은 더 나아진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김도영 감독은 "이 서사에서 놀라운 건, 경험치에 따라 다 다르게 다가간다는 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어쨌건 스스로는 경험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실재하는 건 사실이니 주변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김지영 생일을 4월 1일 만우절로 잡은 조남주 작가(소설 '82년생 김지영' 작가)의 변이 생각나네요"라고 했다.

조남주 작가는 "남성들에게 김지영의 삶은 '이게 사실일까' 하고 느껴질 테고 김지영보다 더 나쁜 상황을 겪은 여성들에게는 '이렇게 운이 좋다니' 하고 느껴질 거예요. 어느 쪽에서든 김지영의 삶은 과장이고 거짓말 같겠다 싶어서 생일을 만우절로 정했죠"라고 했다.

김도영 감독과 조남주 작가의 말은 앞뒤 아귀가 맞는다. 거짓말 같을 일들이 사실이니 경험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주변을 돌아봤으면 한다는 말이다.

김도영 감독은 시간이 흘러 이게 대체 왜 논란이었지란 세상이 오길 "'82년생 김지영'이 말도 안되는 전래동화가 되면 좋겠다"고 했다.

사건의 의미는 언제나 나중에 따라온다. '82년생 김지영'이란 사건의 의미도 나중에 따라올 것이다. 그 나중이 언제쯤일지. '82년생 김지영'이 불과 몇 년 전에는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가 될지, 옛날 옛적에는 그런 이야기가 있었어가 될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도 그 의미를 알게 될 나중은 분명히 온다. 오고 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