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망할 한류라면 제대로 망해야 한다 [버닝썬게이트⑦]

전형화 기자  |  2019.03.25 10:41
버닝썬게이트로 한류의 민낯을 드러낸 정준영, 승리, 최종훈/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뉴스1 버닝썬게이트로 한류의 민낯을 드러낸 정준영, 승리, 최종훈/사진=머니투데이 스타뉴스, 뉴스1


한류 산업이 위기다, 라고 말한다. 승리가 쏘아 올린 버닝썬게이트로 한류 산업이 위기라는 기사가 줄을 잇는다. 이렇게 망할 한류 산업이라면 제대로 망해야 한다.

한 때 K팝 스타로 세계 곳곳에 이름을 떨친 아이돌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가 성매매, 위생 관리법 위반 혐의 등으로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와 친한 사이인 FT아일랜드의 최종훈, 씨엔블루 멤버 이종현,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 등이 끼리끼리 벌였던 추잡한 행위가 만천하에 드러났다.

한류스타들인 만큼 당장 중국권과 일본 등에 실시간으로 이들의 소식이 전해졌다. 한류 위상이 높아진 탓인지, 타임과 BBC 등 세계 유력 언론들도 이들의 행각을 재빨리 보도했다. 망신살이다. 정준영 사건 여파로 차태현과 김준호 등 '1박2일' 멤버들이 내기 골프를 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들의 방송 하차도 이어졌다. 차태현이 여러 한류 드라마와 영화 한류를 일으킨 '신과 함께'에 출연했던 터라, 이래저래 한류 산업 위기 타령이 적잖다.

이미 진작에 위기였다. 한류를 산업으로 규정하고 신줏단지 모시듯이 하는 순간부터 위기는 시작됐다. 현재 한류는 드라마가 이끌었던 1막을 지나 방탄소년단을 정점으로 한 K팝 전성시대로 2막을 열었다. '런닝맨' 등 예능 한류와 '신과 함께'로 불이 붙기 시작한 영화 한류가 있긴 하지만 현재 한류의 주축은 분명 K팝이다. 그러니 K팝의 위기가 곧 한류의 위기라고 시끌시끌하다.

버닝썬게이트로 한류가 위기라는 진단은 천편일률이다. 어렵게 쌓아올린 한류 산업이 버닝썬게이트로 위기에 처했다는 식이다. 전형적인 산업 논리다.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국제수지 중 한류 관련 수지는 약 2조 8000억원 (24억 3000만 달러)흑자였다. 이 중에서 게임 관련 수지는 21억 1000만 달러였다. K팝 음원과 영화, TV프로그램 판권, 콘서트 수입 등 음향영상과 관련서비스 수지는 3억 2000만 달러였다. 산업 논리로 따지면 대중문화 한류보다는 게임 산업을 육성하는 게 맞다.

그럼에도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한 한류를 조명하는 건, 각인효과가 큰 탓이다. K팝과 드라마, 영화 등은 한국을 각인시키는 효과가 다른 산업보다 크다. 문화이기 때문이다. 대중문화 한류로 인한 무형적인 자산이 한국의 이미지를 높여 유형적인 자산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한류의 위기를 진단하려면 산업이 아닌 문화의 위기를 짚어야 한다. 버닝썬게이트가 터지기 전부터 한국 대중문화 속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문제 지적은 계속됐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을 말한다.

버닝썬게이트와 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들 속에는 낮디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깔려 있다. 여성을 물건 취급하고, 성관계 동영상을 단톡방에 올리는 추악한 행동, 그럼에도 누구도 그걸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한 저변에는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자리 잡고 있다. 해명 또한 마찬가지다. 남자들 중에서 승리 단톡방 같은 행태에서 자유로운 사람이 어디 있겠냐는 변명이 자연스레 나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여학생들 외모에 순위를 매긴 교대 단톡방 사건이 비슷한 시기에 불거진 것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한국 대중문화에는 이런 낮은 성인지 감수성이 만연해있다. Mnet '아이돌학교'가 어린 소녀들을 성적으로 대상화한다는 비판이 거셌고, '개그콘서트'의 코너 '사둥이는 아빠딸'에서 "난 김치 먹는데 성공해서 김치녀가 될거야" 등이 장면이 문제가 돼 코너가 폐지된 게 불과 2년 전이다.

새로운 한류 키워드로 떠오른 한국 힙합은 낮은 성인지 감수성으로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래퍼 송민호는 “미노 딸래미 저격/ 산부인과처럼 다 벌려”라고 랩을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힙합 붐을 일으킨 Mnet ‘쇼미더 머니’로 유명세를 얻은 블랙넛은 여성 래퍼 키비디를 랩을 통해 성적으로 모욕했다가 고발당했다. 래퍼 산이가 여혐 논란으로 거센 비난을 받은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한국 드라마에서 흔히 보이는 남자 주인공이 여자 주인공의 팔목을 강제로 잡아끌며 키스하는 장면은 이미 해외에서도 비판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한국 드라마 팬을 자초하는 해외 시청자들에겐 남성이 여성을 강압적으로 그리는 게 불편하다는 의견이 상당하다.

'라디오스타' '해피 투게더' 등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유독 어린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꼭 애교를 요구하는 것도 낮은 성인지 감수성 탓이다. 예능 한류팬들이 불편하게 받아들이는 요소 중 하나다. 영화 'VIP'가 여혐 논란으로 엄청난 비난을 받은 뒤 영화계에서 여성주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이런 점에서 방탄소년단의 행보는 주목할 만하다. 사실 방탄소년단도 이 같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방탄소년단은 ‘미스 라이트’라는 노래에서 “명품백을 쥐기보다는 내 손을 잡아주는/ 질투심과 시기보단 됨됨이를 알아주는”이라는 노랫말과 ‘농담’ 중 ‘그래 넌 최고의 여자, 감질/쏘(so) 존나게 잘해 갑질/아 근데 생각해보니 갑이었던 적 없네/갑 떼고 임이라 부를게. 임질’이란 랩으로 팬들에게서 해명을 요구받았다. 방탄소년단은 이런 논란에 공식 팬카페에 사과문을 올렸다. 이후 방탄소년단은 팬들의 피드백에 적극적으로 임했다.

방탄소년단은 빌보드 뮤직 어워드에서 '페이크 러브'를 불렀을 때 "내가"와 "니가' 등의 가사를 바꿔 불렀다. 자칫 흑인을 비하하는 N워드(니거)로 들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잘못된 인식에 대해 사과하고 혐오 표현으로 들릴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수정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한류가 위기다. 그 위기는 대중문화에 만연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 탓이다. 승리와 정준영 등은 곪았던 고름이 터졌을 뿐이다.

버닝썬게이트가 주요 외신에 소개되면서 한류 산업이 위기라고 걱정하기보다는, 주요 외신에 한국 모텔 몰카 사건이 대대적으로 보도된 걸 더 걱정해야 한다. CNN과 BBC, 가디언, NBC와 USA 투데이, 텔레그래프 등이 한국 모텔에서 몰래카메라가 설치돼 1600여명의 사생활이 유료로 공개됐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가디언은 이 사건을 전하면서 정준영이 승리와 함께 있는 채팅방에서 여성의 동의 없이 촬영한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한 혐의로 기소됐다고 함께 전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는 몰래카메라 문제가 급증하지만 범죄자는 가벼운 벌금을 물거나 아예 처벌받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다. 정말 부끄러워야 해야 할 건, 위기라고 여겨야 할 건, 버닝썬게이트로 몰카천국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이다.

망하려면 제대로 망해야 한다. 그래야 다시 새롭게 일어날 수 있다. 버닝썬게이트가 한국과 한국대중문화의 민낯을 드러냈다면, 이제 달라져야 한다. 버닝썬게이트가 터지고 '정준영동영상'이 검색어 1위가 되는 현실이 달라져야 한다.

남의 시선으로 위기 타령은 그만해야 한다. 작은 그릇에 큰 물건을 담아봤자 넘치거나 깨질 뿐이다. 언제나 위기는 기회다. 버닝썬게이트는 한국 대중문화에 만연한 낮은 성인지 감수성을 바꿀 기회다.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버닝썬게이트가 한류에 던진 진정한 화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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