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키스 2700억 거절한 홈런왕 "한국에 사는 형이 여행 오라고 한다" [이상희의 MLB 스토리]

신화섭 기자  |  2022.05.31 16:27
에런 저지.  /사진=뉴욕 양키스 구단 홍보팀 제공 에런 저지. /사진=뉴욕 양키스 구단 홍보팀 제공
[세인트피터스버그(미국 플로리다주)=이상희 통신원] 2014년 가을 에런 저지(30·뉴욕 양키스 외야수)는 수많은 마이너리그 유망주 중 한 명으로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때 현장의 스포트라이트는 그의 팀 동료였던 그렉 버드(30)에게 쏠렸다. 1루수 버드는 당시 AFL에서 타율 0.313, 6홈런 21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947의 빼어난 성적을 올리며 리그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저지는 타율 0.278, 4홈런 15타점의 기록을 남겼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었지만 버드에 비하면 부족했다.

그로부터 8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저지는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홈런타자로 성장했다. 그보다 앞서갔던 버드는 부상과 방출을 반복하며 현재는 마이너리거 신분이 됐다. 2019년 이후로는 메이저리그에서 1경기도 뛰지 못하고 있을 정도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강타자가 된 저지의 성공 비결은 뭘까. 저지는 지난 주말 탬파베이와 원정 경기가 열린 미국 플로리다주 세인트피터스버그 트로피카나 필드에서 가진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가족의 힘"을 가장 먼저 꼽았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출신의 저지는 2013년 메이저리그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31번)에서 양키스의 지명을 받아 프로에 진출했다. 1라운드 출신답게 마이너리그에서 매년 괄목할 만한 성장세를 보여준 그는 2016년 8월 빅리그에 데뷔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의 메이저리그 첫 해 성적은 타율 0.179, 4홈런 10타점으로 처참했다. OPS도 고작 0.608이었다. 이에 대해 저지는 "빅리그 첫 해 고전했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며 "그때 잘했다면 오히려 메이저리그를 쉽게 보고 교만해졌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그때 타율 0.179를 아직도 휴대폰에 기록해 놓고 본다"고 했다. 초심을 잃지 않고 스스로에게 동기 부여를 하기 위해서이다.

저지의 말처럼 데뷔 첫 해 쓴맛은 오히려 약이 됐다. 심기일전한 그는 이듬해 타율 0.284, 52홈런 114타점의 빼어난 성적을 기록했다. OPS는 무려 1.049나 됐다. 아메리칸리그 홈런왕과 신인왕은 그의 것이었다. 올스타에 선정된 것은 물론 아메리칸리그 MVP 투표에서도 2위에 올랐다.

이후 그의 활약은 거침이 없었다. 올스타에 총 3차례나 선정되며 전국구 스타가 됐고, 실버슬러거상 2회, 윌슨 올해의 수비선수상, 필딩바이블상 등 타격은 물론 수비에서도 인정받는 스타가 됐다.

저지는 필드 밖에서는 '올 라이즈 파운데이션' 자선재단을 설립해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고 그들의 무한한 잠재력을 깨우치게 하는 데 영감과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저지가 야구 실력은 물론 인격적으로도 팬들에게 인정받는 이유이기도 하다.

저지가 어린 유소년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자선재단을 설립하고 운영하는 것은 그의 성장 배경과도 관계가 있어 보인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흑인 혼혈인 저지는 태어난 다음날 지금의 양부모에게 입양됐다. 한국계인 그의 형도 입양아다. 양부모는 저지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을 때 그에게 입양 사실을 알렸고, 저지는 양부모에게 "내 외모가 달라 이미 알고 있었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올 시즌이 끝나고 메이저리그 FA(자유계약선수)가 되는 저지는 시즌 전 뉴욕 양키스로부터 7년 총액 2억 1350만 달러(약 2650억 원)의 연장 계약을 제안받았지만 거절했다. 그리고 이날까지 홈런 18개로 메이저리그 1위를 달리고 있다. 타율(0.309)과 타점(37개) 기록도 훌륭하다. OPS는 무려 1.045나 된다. 지금의 페이스라면 시즌 60홈런도 가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에런 저지.  /사진=뉴욕 양키스 구단 홍보팀 제공 에런 저지. /사진=뉴욕 양키스 구단 홍보팀 제공
다음은 저지와 일문일답.

- 초반이긴 하지만 성적이 뛰어나다. 시즌이 생각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 물론이다. 현재 우리 팀이 지구 1위(아메리칸리그 동부) 아닌가. 이것만 봐도 올 시즌 나는 물론 우리 팀이 올바른 방향으로 잘 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준다. 뉴욕 양키스에서 뛴다는 것은 '최고'라는 자부심을 갖게 한다. 때문에 오프시즌에도 항상 최선을 다해 준비해야 하고, 시즌이 시작되면 정규시즌은 물론 포스트시즌에도 좋은 성적을 올려야 한다. 양키스는 최고의 팀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팀이 순항 중이긴 하지만 최근 팀 동료들이 부상으로 하나둘 전력에서 이탈하는 등 우려되는 일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남은 동료들이 최선을 다해 계속 지금의 좋은 분위기와 성적을 유지하려 하고 있다.

- 홈런 선두이다. 올 시즌 이루고 싶은 개인 목표가 있는가.

▶ 내가 홈런을 많이 친 것은 동료들 덕이라고 본다. 우리 팀에는 나 말고도 앤서니 리조(33)와 지안카를로 스탠튼(33), 그리고 DJ 르메이휴(34)까지 좋은 타자가 넘친다. 내가 그들 사이의 타선에 있다는 것은 상대 투수가 어쩔 수 없이 나와 정면승부를 하게 만든다. 내 앞뒤로 좋은 타자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동료들 덕분에 개인적으로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목표보다는 시즌 내내 동료들과 함께 호흡을 잘 맞춰 우리 팀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이 이루고 싶은 유일한 목표이다.

- 일각에선 초반부터 홈런을 많이 친 게 올 시즌 뒤 FA가 되기 때문이라는 일명 'FA로이드 효과'라는 이야기도 있다.

▶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리그 최저 연봉을 받는 메이저리그 2년차 때도 올 시즌처럼 홈런을 많이 치고 잘했다. 그때는 성적이 좋아도 연봉에 반영되지 않을 때다. 그렇기 때문에 FA 계약 때문에 좋은 성적을 올리고, 동기부여가 된다는 이야기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올 시즌 좋은 성적을 올리고 있는 것은 내 스스로 계속 발전하는 좋은 선수가 되고 싶고, 그런 과정과 결과를 통해 팀 승리에 기여하고 싶기 때문이다. 양키스에서 뛴다는 것은 앞서 말한 것처럼 '최고'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내 스스로 항상 '오늘 경기가 마지막 경기'라는 마음 자세를 갖고 경기에 임한다. 최고의 팀에서 최고의 선수가 되고 싶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내 스스로에게 주는 유일한 동기부여이다.

- 올 시즌 60홈런도 가능하다는 예상도 나온다. 어떻게 생각하나.

▶ (웃으며) 시즌 초반이고 아직 6월도 되지 않았다. 갈 길이 멀다. 게다가 한 시즌 홈런 60개를 치려면 개인적으로 운동도 열심히 해야 하고 부상도 안 당해야 하고, 넘어야 할 일들이 많다. 쉽게 장담하고 예상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때문에 지금 당장 시즌 홈런 60개를 생각하기 보다는 매 경기 매 타석만 생각하고 집중하고 싶다. 아울러 한 시즌 홈런 60개를 친 타자보다는 월드시리즈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릴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다.

슬라이딩하는 에런 저지.  /사진=뉴욕 양키스 구단 홍보팀 제공 슬라이딩하는 에런 저지. /사진=뉴욕 양키스 구단 홍보팀 제공
- 2014년 AFL에서 당신을 처음 인터뷰한 게 엊그제 같은데 지금은 리그 최고의 스타가 됐다. 비결을 꼽자면.

▶ 가족의 힘이 가장 큰 것 같다. 가족은 내가 기쁠 때나 슬플 때나 또는 힘들 때도 상황을 가리지 않고 항상 내 곁에서 묵묵히 응원하고 성원해준다. 잘 알겠지만 메이저리그 첫 해 타율이 0.179일 만큼 성적이 초라했다. 물론 그 이듬해 반등해 신인왕 타이틀도 받고 잘 했지만 그 모든 게 사랑하는 가족이 곁에 있었기 때문이다. 늘 나를 위해 조건 없이 존재하는 그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 이유를 꼽자면 뉴욕 양키스라는 최고의 팀에서 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양키스는 나에게 좋은 코칭을 해준 것은 물론 내가 오롯이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다. 좋은 팀, 그리고 강팀에서 뛰다 보니 어린 나이에 포스트시즌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런 모든 것들이 내가 성장하고 좋은 타자가 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 메이저리그 첫 해 타율(0.179)을 휴대푠에 기록해 다닌다고 들었다. 사실인가.

▶ 맞다. 메이저리그가 쉽지 않다는 경험을 잊지 않고, 스스로 긴장하기 위해 그 타율을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해 놓고 종종 꺼내 본다. 사실 빅리그 첫 해 고전했던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됐다. 그때 잘했다면 메이저리그를 쉽게 보고 교만해져서 지금 이 자리에 없을지도 모른다.

- 과거 AFL 인터뷰 때 "안타를 치면 씹고 있던 껌을 계속 씹고, 그러지 못하면 씹던 껌을 버리고 새 껌을 씹는 징크스가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그런가.

▶ (웃으며) 아직도 그렇다. 당신도 잘 알겠지만 야구 선수들이 미신을 잘 믿는 편이다. 게다가 야구라는 종목이 쉽지 않은 경기이다. 그러다 보니 선수들이 주변 환경이나 특정 행동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게 되면 은근히 그것에 집착하거나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나 역시 그렇다. 물론 루키 때보다는 덜 하지만 껌 이야기처럼 아직도 버리지 못하고 게속하는 나만의 징크스가 있다. 때론 이런 행동들이 스스로 긴장감을 덜어주는 재미가 되기도 한다.(웃음)

- 형이 한국계라고 들었는데.

▶ 그렇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을 방문해 보고 싶다. 형이 현재 한국에 살고 있는데 나와 우리 가족 모두를 한국에 여행오라고 한다. 가고 싶긴 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여행 제한이 생기는 등 쉽게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현재는 '간다 못간다' 결론을 내기 보다는 상황을 지켜보면서 유동적으로 대처할 생각이다. 우리 팀이 올해 월드시리즈 우승을 해서 뉴욕에서 일단 우승 축하 퍼레이드를 한 뒤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게 되면 가장 좋을 것 같다.(웃음)

관련기사

<저작권자 © 스타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스타뉴스 단독

HOT ISSUE

스타 인터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