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효준 빅리그 왜 못 가나... 선배들도 겪은 '비주류' 설움 [이상희의 MLB 스토리]

신화섭 기자  |  2021.07.14 07:27
박효준. /사진=스크랜튼/윌크스-바레 레일라이더스 구단 SNS 캡처 박효준. /사진=스크랜튼/윌크스-바레 레일라이더스 구단 SNS 캡처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올 시즌 뉴욕 양키스 산하 트리플 A에서 뛰고 있는 박효준(25·스크랜튼/윌크스-바레 레일라이더스)의 방망이가 뜨겁다. 그는 13일(한국시간) 현재 트리플 A에서 41경기 타율 0.342(146타수 50안타) 8홈런 25타점을 기록 중이다. OPS는 1.070이나 된다.


성적만 놓고 본다면 지금 당장 메이저리그 콜업감이다. 하지만 브라이언 캐시먼 양키스 단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이달 초 미국 현지 언론과 인터뷰에서 "빅리그에 아직 박효준이 뛸 자리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메이저리그는 실력만으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경쟁자의 활약 또는 갑작스런 부상 같은 운도 작용하고, 신인 지명 순위와 국적, 사용 언어 등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박효준의 미국프로야구 선배인 이학주(31·삼성)와 최지만(30·탬파베이)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2011년 탬파베이 소속으로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 참가한 이학주. /사진=이상희 통신원 2011년 탬파베이 소속으로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 참가한 이학주. /사진=이상희 통신원
2010년 시카고 컵스는 차세대 유격수 자리를 두고 당시 마이너리그에 있던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유망주 스탈린 카스트로(31·워싱턴)와 이학주 중 누구를 택할지 저울질했다. 결론은 카스트로였다.

그 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카스트로는 125경기에 출전해 타율 0.300, 3홈런 41타점의 호성적을 기록했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가 3할 타율을 올리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컵스는 카스트로가 주전 유격수로 자리매김하자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학주를 2011년 1월 탬파베이로 트레이드했다.

카스트로는 이후 뉴욕 양키스와 마이애미를 거쳐 지난해부터 워싱턴에 둥지를 틀었다. 올해로 메이저리그 12년차 베테랑. 반면 카스트로의 경쟁자였던 이학주는 메이저리그의 단맛을 보지 못한 채 한국으로 유턴해 KBO리그 삼성에 자리를 잡았다. 결과론적으로 당시 컵스의 선택은 옳았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때 컵스가 이학주를 선택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사실이다.

시카고 컵스 시절의 스탈린 카스트로.  /사진=이상희 통신원 시카고 컵스 시절의 스탈린 카스트로. /사진=이상희 통신원
최지만은 6년간의 마이너리그 생활 끝에 2016년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했다. 하지만 딱 그 뿐이었다. 불규칙하고 충분치 못한 출전 기회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그는 시즌이 끝난 뒤 방출당했다. 그 해 겨울 뉴욕 양키스와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초청장이 포함된 스플릿 계약을 한 최지만은 2017년 생애 처음 플로리다에서 스프링캠프를 치렀다.

당시 양키스 1루에는 그렉 버드(29·콜로라도)와 타일러 오스틴(30·요코하마)이 있었다. 둘 다 미국인이며 양키스가 애지중지 키우던 유망주였다. 하지만 최지만이 충분히 싸워볼 만한 상대였다. 최지만은 양키스와 계약할 때 '공정한 경쟁 기회'를 요구했다. 에인절스 시절 충분치 못한 출전 기회로 인해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경험을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양키스는 스프링캠프 때부터 공정한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버드와 오스틴은 그 해 시즌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렸지만 최지만은 트리플 A에서 시즌을 시작해야 했다. 버드와 오스틴이 메이저리그에서 부진하고 잦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하는 일이 잦아지자 양키스는 결국 그 해 6월 최지만을 메이저리그로 불렀다.

탬파베이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은 최지만.  /AFPBBNews=뉴스1 탬파베이에서 주전으로 자리잡은 최지만. /AFPBBNews=뉴스1
콜업 후 첫 두 경기에서 홈런포를 가동하며 양키스 팬들에게 최지만 이름 석 자를 각인시켰지만 양키스는 그를 신뢰하지 않았다. 최지만은 결국 2주 만에 마이너리그로 강등됐다. 메이저리그에 머문 2주 동안 그는 타율 0.267, 2홈런 5타점을 기록했다. 출루율과 장타율을 합한 OPS는 1.067이나 됐다.

당시 뉴욕 언론은 이런 양키스의 선수 기용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난했다. 양키스가 그토록 공을 들였던 버드는 결국 방출돼 올 해는 콜로라도 산하 마이너리그 트리플 A에서 뛰고 있다. 2019시즌 이후론 메이저리그에서 뛴 기록조차 없다. 오스틴 또한 양키스에서 방출된 뒤 여러 팀을 전전하다 지난해부터 일본에서 뛰고 있다.

메이저리그 선수협회(MLBPA)가 2020년 발표한 국가별 메이저리그 선수 현황 자료를 보면 미국이 943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는 도미니카공화국(137명), 베네수엘라(100명), 쿠바(29명) 순이었다. 한국은 5명이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은 도미니카공화국, 베네수엘라 등 중남미 선수들이 총 335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이들은 출신국가는 다르지만 같은 언어(스페인어)를 사용한다는 특징이 있다.

다민족이 공존하는 미국의 공용어는 영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선수협이 각 구단 관계자 및 선수들에게 하달하는 각종 공문과 안내문은 모두 영어와 스페인어, 두 가지 언어로 제작된다. 335명이나 되는 중남미 선수들에게 이른바 '스페인어 프리미엄'이 있기 때문이다. 각 구단에 자리잡고 있는 코칭스태프와 스카우트 등 프런트 오피스 인력까지 더하면 스페인어 프리미엄의 규모는 더 커진다.

2020년 기준 국가별 메이저리그 선수 현황. /자료=메이저리그 선수협회 2020년 기준 국가별 메이저리그 선수 현황. /자료=메이저리그 선수협회
이학주가 과거 카스트로에게 경쟁에서 밀렸을 때 당시 컵스 산하 마이너리그에 있던 나경민(30·전 롯데), 김동엽(30·삼성), 정수민(31·SSG) 등이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 있다. "코칭스태프에 한국인이 남미인 만큼 있었다면…". 팔은 늘 안으로 굽는다. 미국인도 남미인도 마찬가지다. 비슷한 실력의 선수들이 있을 때 누구를 콜업할지 선택권을 얻는다면 열에 아홉은 같은 국적과 언어를 따르게 마련이다.

메이저리그에는 또 '1라운드 프리미엄'이란 이야기도 있다.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에 지명돼 수십 억원에 달하는 고액의 계약금을 받은 선수들은 경쟁자에 비해 빨리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설령 빅리그에서 자리를 잡지 못해도 오랜 시간 기회가 부여된다는 것이다. 혹여 친정 팀에서 방출을 당해도 다른 팀에서 잘 데려간다. 1라운드는 언젠가 터질 거란 기대감이 있기 때문이다.

박효준이 메이저리그에 콜업되면 추신수(39·SSG), 최지만에 이어 마이너리그를 거쳐 빅리그에 진출한 세 번째 한국선수가 된다. 트리플 A에서 뛰고 있기에 외형상 넘어야 할 관문은 이제 단 하나만 남았다.

하지만 메이저와 트리플 A 사이의 벽은 생각 외로 높다. 각종 변수도 많다. 게다가 박효준은 '1라운드 프리미엄'도 '스페인어 프리미엄'도 없는 '비주류'이다. 오직, 자신의 실력만이 정글 같은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어렵지만 그가 '일당백'이 돼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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