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현종이 소환한 최고 유망주의 그때 그선택 '며칠만 더 참았더라면...' [이상희의 MLB 스토리] - 스타뉴스

양현종이 소환한 최고 유망주의 그때 그선택 '며칠만 더 참았더라면...' [이상희의 MLB 스토리]

신화섭 기자  |  2021.05.24 16:28
2011년 탬파베이 소속으로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 참가한 이학주.  /사진=이상희 통신원2011년 탬파베이 소속으로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 참가한 이학주. /사진=이상희 통신원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미국인들이 즐겨 쓰는 말 중에 'Life is all about timing'이란 표현이 있다. '인생은 모두 타이밍이다' 정도로 해석될 수 있겠다. 이는 '우리 삶에는 적당한 때가 있으며 그 때를 기다릴 줄 아는 인내력이 필요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양현종(33·텍사스)은 한국에서의 꽃길을 마다하고 올 초 미국으로 건너가 메이저리그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적지 않은 나이의 무명투수. 그를 반기는 이는 많지 않았다. 미래도 불투명했다.

그럼에도 양현종은 좌절하지 않았다. 자신감을 갖고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었다. 스프링캠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지 못해 개막전 26인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다.

2021시즌이 시작된 지 약 한 달의 시간이 흐른 4월 27일(한국시간). 양현종은 그토록 원했던 메이저리그 무대에 콜업돼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본업인 선발 대신 불펜투수였다. 하지만 그는 좌절도 실망도 안 했다. 양현종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순간순간을 즐기며 자신이 할 일만 하겠다고 했다.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지난 6일 미네소타와 원정경기에서 빅리그 선발투수 데뷔전을 치른 그는 20일에는 뉴욕 양키스전에 두 번째 선발 등판했다. 결과도 좋았다. 상대 선발 코리 클루버의 노히트 노런으로 패전투수가 되긴 했지만 메이저리그 최고 명문구단 양키스를 상대로 5⅓이닝 3피안타 2실점했다.

호투를 펼친 양현종에 대한 구단의 기대치는 당연히 높아졌다. 크리스 우드워드(45) 텍사스 감독은 21일 기자회견에서 "양현종이 당분간 계속 선발진에 잔류할 것"이라고 말했다.

텍사스 양현종.  /사진=이상희 통신원텍사스 양현종. /사진=이상희 통신원
양현종을 보고 있으면 'Life is all about timing'이란 말이 생각난다. 그리고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끝내 메이저리거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2019년부터 KBO리그에서 뛰고 있는 유격수 이학주(31·삼성)다.

서울 충암고 출신인 그는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 계약하며 2009년 마이너리그 무대에 첫 발을 내디뎠다. 당시 그가 받은 계약금은 115만 달러(약 13억 원). 아시아 출신 아마추어 야수치고는 많은 편이었다.

이학주는 2010년 마이너리그 올스타전인 퓨처스게임에 출전할 만큼 구단의 신임을 받았다. 2011년 탬파베이로 트레이드 된 후에도 곧 '메이저리그 무대'에 설 수 있는 유망주로 관심을 받았다. 그 해 퓨처스게임에도 출전했고, 마이너리그 엘리트 코스인 애리조나 가을리그(AFL)에도 선발됐다.

하지만 2013년 4월 수비를 하다 주자와 충돌하며 다친 무릎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당시 이학주는 4할의 타율을 기록할 만큼 타격에 물이 올랐다. 전매특허인 수비는 기본이었다.

이학주는 수술과 긴 재활 끝에 2014년 복귀했지만 타격과 수비는 예전 같지 않았다. 탬파베이는 결국 2015년 9월 이학주를 방출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해 12월 샌프란시스코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하며 한 번 더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기로 했다.

계약 조건 중에는 '기존의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을 수 있는' 옵트아웃(Opt Out) 조항도 삽입했다. 이는 구단이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빅리그 콜업을 해주지 않을 때 사용할 수 있는 권리로 선수에겐 일종의 보험장치인 셈이다.

2016시즌을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한 이학주는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로 뛰면서 타율 0.265, 3홈런 12타점의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하지만 곧 올라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메이저리그 콜업은 없었다. 그러자 이학주는 옵트아웃을 사용할 수 있는 5월 31일 망설임 없이 권리를 행사하고 다시 FA가 됐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그를 불러주는 팀은 없었다. 게다가 이학주가 팀을 떠난 뒤 공교롭게도 샌프란시스코 내야수 3명이 도미노처럼 부상으로 쓰러졌다. 결과론이긴 하지만 '만일 옵트아웃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다면' 이학주의 야구 인생은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이학주는 그 후 기자에게 "오랜 시간 뒷바라지를 해준 부모님께 제일 미안했다"며 "아버지에게 '수 년을 기다려놓고 단 며칠을 참지 못했냐'는 꾸중도 들었다"고 말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라는 말에 비춰보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이상희 스타뉴스 통신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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