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스 관계자도 "질 것같다"던 최지만 연봉조정, '100쪽 PT 자료'에 승리 비결 있었다 [이상희의 MLB 스토리]

신화섭 기자  |  2021.03.18 11:29
최지만의 연봉조정 청문회에서 사용된 프레젠테이션 자료의 일부.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최지만의 연봉조정 청문회에서 사용된 프레젠테이션 자료의 일부.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피오리아(미국 애리조나주)=이상희 통신원] 미국 메이저리그에는 연봉조정(Salary arbitration) 제도가 있다. 빅리그 데뷔 후 서비스타임 3년을 채우면 연봉조정 자격이 생긴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둬도 대부분 메이저리그 최저연봉만 받거나 조금 인상되더라도 구단이 주는 대로만 받아야 한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만 뛸 수 있다는 메이저리그. 데뷔하는 것도 힘들지만 이후에도 매년 정글 같은 곳에서 생존 경쟁을 피할 수 없다. 때론, 예상치 못한 부상 때문에 짐을 싸기도 한다. 그래서 연봉조정은 ‘경쟁을 잘 이겨내고 살아 남아 대견하다’며 주는 일종의 당근인 셈이다.

메이저리그는 매년 12월 구단마다 논텐더(Non-tender) 마감일에 일부 선수들을 방출한다. 주로 연봉조정 자격이 있는 선수들 중 실력이 부족하거나 실력이 돼도 구단 사정상 많은 돈을 주기엔 애매한 선수들이 해당된다. 연봉조정을 앞둔 구단들이 본격적인 협상에 나서기 전에 선수들을 정리하는 과정인 셈이다.

2016년 LA 에인절스 유니폼을 입고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최지만(30·탬파베이)은 2020 시즌이 끝난 뒤 연봉조정 자격을 취득했다. 미국 현지에선 최지만의 2021년 연봉으로 160만~200만 달러(약 18억~23억원) 정도를 예상했다. 일부에선 그 금액을 부담하기 싫어서 탬파베이가 최지만을 논텐더로 방출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구단은 최지만을 버리지 않았다.

논텐더 마감일이 지나면 각 구단은 연봉조정 자격이 있는 선수들과 협상을 시작한다. 일부 구단은 연봉조정 마감일인 1월 중순까지 거의 연락을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무관심으로 일관해 상대를 애태우게 한 뒤 마감일에 연락하고 몰아붙여 구단이 원하는 금액을 관철시키려는 일종의 협상 방법이다. 일부는 연봉조정 마감일 이전에 협상을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다.

최지만의 미국 에이전시 GSM의 관계자는 “2019 시즌이 끝난 뒤부터 최지만 선수의 연봉조정에 대비해 거의 2년간 준비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거짓말 조금 보태서 수능을 준비하는 고3 수험생의 모습이었다”고 했다. 이들은 메이저리그 선수협회(MLBPA)의 도움을 받아 최근 5년간 연봉조정 청문회까지 갔던 케이스를 다 넘겨 받아 분석했다고 한다.

MLBPA는 1년에 한 번 메이저리그 공인 에이전트를 대상으로 연례 미팅을 한다. 이와 별개로 연봉조정자격이 되는 선수들을 보유한 에이전트들을 상대로 또 다른 미팅을 진행한다. 여기선 주로 지난 수년간 연봉조정의 흐름과 결과에 대한 분석 자료들을 토대로 어떻게 해야 연봉조정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논의한다고 한다.

GSM 측은 우선 탬파베이 구단에 자신들의 연봉조정 준비가 마치 미숙한 것처럼 보이게 하려고 연막전술을 폈다고 한다. 관계자는 “요즘은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코리안 메이저리거에 대한 한국 언론의 기사도 미국에 거의 다 전해진다”며 “그래서 우리는 한국언론에 최지만 선수의 연봉조정 비교대상으로 피츠버그에서 워싱턴으로 트레이드 된 1루수 조쉬 벨(29)을 언급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략은 일정 부분 주효했다.

최지만(오른쪽)이 2019년 뉴욕 양키스와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트린 뒤 홈에서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탬파베이 홍보팀 최지만(오른쪽)이 2019년 뉴욕 양키스와 경기에서 끝내기 홈런을 터트린 뒤 홈에서 동료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사진=탬파베이 홍보팀
최지만 측은 또 탬파베이 구단이 연봉조정 마감일까지 협상이 결렬되면 100% 연봉조정 청문회까지 가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것을 알고, 일찌감치 외부에서 연봉조정전문 변호사를 영입했다. GSM 측은 “솔직히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왜냐하면 선수로부터 받는 에이전트 커미션의 반 정도를 변호사에게 줘야 한다. 하지만 결국 선수가 이겨야 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변호사를 영입했다”고 말했다. 변호사를 영입하는 것도 선수협회에서 추천한 10인의 이력서를 살핀 것은 물론, 10인의 변호사 모두와 개별 전화인터뷰를 통해 최근에 다룬 케이스와 그 결과 등을 꼼꼼히 살핀 뒤 최후의 1인을 선택했다고 한다.

연봉조정 마감일까지 타협점을 찾지 못한 최지만 측은 연봉조정위원회에 245만 달러(약 27억원)의 희망연봉을 제시했고, 탬파베이 구단은 185만 달러(약 21억원)의 연봉을 적어냈다.

GSM 관계자는 “연봉조정 마감일까지 조정이 결렬된 뒤로 하루에 거의 4시간 이상을 자지 못하면서 연봉조정 청문회를 준비했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변호사와 함께 청문회에서 발표할 최지만 선수의 가치와 평가 자료를 준비하고 수정하는 과정을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그런 과정을 통해 총 100페이지 분량의 프레젠테이션(PT) 자료가 준비됐다”며 “그 후에는 또 누가 프레젠테이션을 진행할 것인지를 두고 모의발표를 수십 번 반복했다”고 한다. 연봉조정 청문회에서 선수와 구단 측에 주어진 발표시간은 공평하게 각 1시간씩이고, 주어진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자료를 발표해 선수에게 유리한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이다.

GSM 관계자에 따르면 메이저리그 연봉조정 청문회는 다음의 순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1. 선수 측 발표. 왜 이 연봉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 (1시간)

2. 10분 휴식

3. 구단 측 발표. 왜 선수가 원하는 연봉을 줄 수 없는지에 대한 설명 (1시간)

4. 45분 휴식

5. 구단 측 발표에 대한 선수 측 이의 제기 (30분)

6. 10분 휴식

7. 선수 측 대응에 대한 구단 측 이의 제기 (30분)

8. 종료 (총 4시간가량 소요)

GSM 관계자에 따르면 연봉조정 마감일까지 구단과 타협점을 찾지 못해 245만 달러의 연봉을 적어냈을 때, 최지만과 안면이 있는 스캇 보라스 에이전시의 전직 한국계 관계자는 “너무 많은 액수를 적어냈다”며 “청문회에서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보라스 한국 총괄 이정문 이사는 "이는 보라스 코퍼레이션의 공식 입장도, 공식 발언도 아닙니다"라고 전해왔다.) 이 관계자 외에도 최지만 측의 승리를 비관한 이는 많았다.

그러나 지난 2월 초 열린 청문회의 결과는 최지만의 승리였다. GSM 측은 “최지만 선수가 메이저리그 1라운드 출신의 1루수인 CJ 크론(31·콜로라도)의 첫 번째 연봉조정금액(230만 달러)보다 더 많이 받게 돼 기쁘다. 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청문회를 준비하느라 고생했지만 최지만 선수에게 승리를 안겨줄 수 있어 보람이 크다. 고생한 건 다 잊었다”고 말했다.

결국 최근 수년간의 연봉조정 케이스에 대한 집중분석과 전문변호사와의 협업, 그리고 자기 선수에 대한 믿음과 승리에 대한 집념이 다수의 예상을 깨고 최지만의 연봉조정 승리를 이끌어낸 것이다.

이상희 스타뉴스 통신원 sang@lee22.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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