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지배한 한국의 활, 일본의 공, 중국의 매트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1.08.10 09:46
양궁 3관왕에 오른 한국 여자 대표팀의 안산. /AFPBBNews=뉴스1 양궁 3관왕에 오른 한국 여자 대표팀의 안산. /AFPBBNews=뉴스1
스포츠 용품사들에게 올림픽은 매우 중요한 글로벌 전시장이다. 자사 제품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는 데에 올림픽 만한 스포츠 이벤트는 없기 때문이다. 이들은 각 종목의 주요 국제대회와 올림픽에서 공인 용품사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한다. 또한 자사 제품을 사용 중인 올림픽 참가 선수들의 활약 여부에 따라 스포츠 용품사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8일 막을 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는 그 어느 대회보다 아시아의 스포츠 브랜드들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 중심에는 한국의 활과 일본의 공, 중국 매트 제조 업체들이 있었다. 여기에는 스포츠 용품사의 기술력은 물론 한국, 중국, 일본의 해당 종목 경기력과 대중화 정도가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한국의 하계 올림픽 시그니처 종목인 양궁은 선수들의 활약뿐 아니라 한국산 활이 대세였다. 이미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절반이 넘는 양궁 참가자들이 사용했던 윈엔윈은 도쿄 올림픽에서도 경쟁업체인 미국의 호이트를 압도했다. 종목 특성상 양궁의 활은 올림픽 공인 제품이 따로 없다. 하지만 40%에 육박하는 올림픽 참가 선수들이 윈엔윈 제품을 사용하면서 윈엔윈은 올림픽 공인 활이나 다름 없다는 평가를 받았다.

양궁 국가대표 선수와 감독을 지낸 박경래 대표가 설립한 윈엔윈은 이 부문 세계 시장 점유율 1위 기업이다. 도쿄 올림픽에서 각각 3관왕과 2관왕을 달성한 안산(20)과 김제덕(17)은 모두 윈엔윈 활을 사용했다. 두 선수의 대활약에 힘입어 타사 제품에 비해 화살을 빠르게 날아가게 할 수 있고 정확한 탄착군 형성에 적합하도록 설계된 윈엔윈 경기용 활의 기술력도 다시 한 번 호평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의 염혜선(가운데)이 지난 8일 세르비아와 동메달결정전에서 상대 공격에 블로킹을 시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한국여자배구대표팀의 염혜선(가운데)이 지난 8일 세르비아와 동메달결정전에서 상대 공격에 블로킹을 시도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올림픽 공인 용품은 이미 국제 무대에서 검증된 브랜드 가운데 해당 종목 국제 스포츠 기구가 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도쿄 올림픽 공인 용품 가운데 비중이 높은 공인구는 일본 제품이 대다수였다. 이는 단순히 개최국 특혜가 아니었다. 여기에는 해당 종목 스포츠 브랜드의 기술력과 역사가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일본 기업이 만든 도쿄 올림픽 공인구는 배구, 농구, 핸드볼, 수구, 야구, 소프트볼, 테니스 등이었다. 이 가운데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때부터 올림픽 공인구로 지정돼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기업들이 많다.

대표적 기업은 배구와 수구의 공인구를 제공한 미카사다. 1950년대부터 일본 배구의 유행과 함께 성장한 미카사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배구 공인구로 지정됐다. 특히 이 대회에서 일본 여자 배구가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한 덕에 미카사는 글로벌 브랜드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더욱이 미카사 배구공은 1964년 이후 일본에서 배구가 생활 스포츠로 더욱 인기를 구가하면서 폭발적인 성장세를 기록했다. 1917년 히로시마의 작은 고무 공장에서 출발했던 미카사는 1998년 배구 컬러 볼 혁명을 주도했으며 이듬해인 1999년에는 태국에 공장을 건립해 글로벌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해왔다.

도쿄 올림픽에서 농구와 핸드볼 공인구를 제작한 몰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볼 판매 업체로 알려져 있다. 1958년 창업한 몰텐은 다양한 스포츠 종목의 공을 제작해 왔고 특히 국제 농구 대회를 통해 브랜드의 명성을 높였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예상을 뒤엎고 일본 여자 농구 팀이 은메달을 기록해 몰텐의 홍보효과가 극대화됐다는 평가다.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다시 정식 종목이 됐던 야구의 공인구는 사사키(SSK)였다. 사사키는 메이저리그 야구(MLB) 공인구인 롤링스와 차별화되는 강점이 이번 올림픽을 통해 인정받았다. 특히 투수의 입장에서 느낄 수 있는 그립감에서 탁월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미국 야구 대표팀의 투수로 지난 5일 한국과의 패자 준결승 선발로 나섰던 조 라이언(25)은 "뛰어난 그립감의 사사키 야구공을 미국에서도 사용해야 한다"고 칭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일본은 공인구는 아니지만 세노 브랜드가 배구 네트와 체조 기구 등의 올림픽 스포츠 용품 공식 제공업체로 지정됐다. 일본 굴지의 스포츠 용품사 미즈노의 계열사인 세노는 1964년 경기력 측면에서 이미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던 일본 체조의 성장과 함께 체조 기구 제작을 중심으로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한 케이스다.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도쿄올림픽 태권도 경기 모습. /AFPBBNews=뉴스1
한편 중국 스포츠 용품사들이 도쿄 올림픽에서 큰 역할을 한 분야는 격투기 종목의 매트 제작이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이후 급성장을 했던 중국 스포츠 용품사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업체는 산둥 타이샨이다. 산둥 타이샨은 중국 무술의 중심지 중 하나인 산둥성에서 1978년 창업한 스포츠 용품업체로 1983년 '중국 킥복싱'으로 불리는 산다(散打) 종목의 연습을 위한 매트를 제작하면서 전국적인 명성을 얻게 됐다. 이후 산둥 타이샨은 매트 제작 기술을 유사 종목인 유도, 레슬링, 태권도 등으로 넓혀 세계 시장 점유율을 높일 수 있었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도 산둥 타이샨은 유도와 태권도 매트와 복싱 링의 공식 제공업체였다.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대부분 종목의 공인구는 일본 제품이 사용됐지만 탁구에서는 중국의 샹하이 더블 해피니스(雙喜)가 사용됐다. 이는 난공불락의 세계 최강 자리를 차지고 있는 중국 탁구 파워와 무관하지 않다.

해당 종목 용품사와 경기력의 관련성은 중국 역도에서도 나타난다. 이번 올림픽 역도 부문에서 중국은 무려 금메달 7개를 휩쓸었고 역도 바벨 올림픽 공식 용품 제공사는 중국의 허베이 장콩이었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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