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축 3명에 또 인종차별...' 명승부가 남긴 씁쓸한 뒷맛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1.07.12 15:33
잉글랜드 마커스 래시포드가 12일(한국시간) 유로2020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후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FPBBNews=뉴스1 잉글랜드 마커스 래시포드가 12일(한국시간) 유로2020 이탈리아와 결승에서 승부차기를 실축한 후 얼굴을 감싸쥐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탈리아의 우승으로 막 내린 유로 2020 대회의 캐치 프레이즈는 '평등한 게임(Equal Game)'이었다. 대회를 주관하는 UEFA(유럽축구연맹)가 2017~2018 시즌부터 축구장 안팎에서 그 어떤 종류의 차별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있는 구호다.


하지만 이번 대회를 통해 들여다 본 유럽 축구는 UEFA가 추진하고 있는 대표적 공공정책 프로그램인 '평등한 게임'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이는 공격축구와 스리 백 전술의 창의적 활용을 바탕으로 근래에 보기 드문 명승부를 연출했던 유로 2020의 어두운 그림자다.

대회 도중 발생한 인종차별 문제는 크게 3건이었다.

첫 번째는 조별리그 오스트리아와 북마케도니아의 경기에서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을 넣은 오스트리아 스트라이커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32·상하이 상강)의 입에서 시작됐다.

세르비아 혈통인 그는 골을 넣은 뒤 북마케도니아 선수들을 향해 알바니아인에 대한 모욕적인 언행을 했다. 북마케도니아는 이슬람교를 믿는 알바니아인이 대거 모여 살고 있는 곳으로 슬라브 계통의 기독교 중심국가 세르비아와는 철전지 원수였다. 세르비아는 1992년부터 3년간 지속된 보스니아 내전 당시 알바니아와 코소보 등의 이슬람교도 30만 명을 몰살시켰고 이후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 사이에 내전이 일어나 알바니아계 주민들은 세르비아를 떠나 대부분 난민이 돼 뿔뿔이 흩어졌다.

오스트리아의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왼쪽)가 지난 6월 14일(한국시간) 북마케도니아와 유로2020 조별리그 경기 후 상대팀 에지얀 알리오스키와 이야기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오스트리아의 마르코 아르나우토비치(왼쪽)가 지난 6월 14일(한국시간) 북마케도니아와 유로2020 조별리그 경기 후 상대팀 에지얀 알리오스키와 이야기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유로 2020의 인종차별 문제는 스타 선수들의 과거 행적과도 연결됐다. 인종차별의 장본인으로 지목된 선수들은 프랑스의 앙투안 그리즈만(30)과 우스만 뎀벨레(24)였다.

바르셀로나 소속인 이 두 선수는 지난 2019년 일본 투어 기간 호텔에서 일본인 직원의 외모에 대해 비하 발언을 했던 사실이 밝혀져 유로 2020 대회 중에 곤욕을 치렀다. 바르셀로나의 스폰서인 일본 기업 라쿠텐은 이 때문에 스폰서십 취소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1966년 월드컵 이후 첫 메이저 대회 우승을 노렸지만 수포로 돌아간 잉글랜드도 인종차별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일부 잉글랜드 팬들은 12일(한국시간) 이탈리아와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실축한 세 명의 선수들에게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인종차별적 표현을 무차별적으로 쏟아냈다. 공교롭게도 승부차기를 성공시키지 못한 잉글랜드 선수들은 각각 세인트 키츠, 트리디나드 토바고, 나이지리아 혈통의 다문화 선수 마커스 래시포드(23·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제이든 산초(21·도르트문트), 부카요 사카(20·아스날)였다. 결국 잉글랜드 팬들은 이 세 명을 잉글랜드 패배의 희생양으로 지목한 셈이었다.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오른쪽)가 12일(한국시간) 유로2020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 제이든 산초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이탈리아 골키퍼 잔루이지 돈나룸마(오른쪽)가 12일(한국시간) 유로2020 결승전 승부차기에서 잉글랜드 제이든 산초의 슛을 막아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잉글랜드 팬들의 이 같은 태도는 2년 전 한 이탈리아 언론의 인종차별적 기사에 대한 반응과는 180도 달랐다. 2019년 이탈리아의 코리에레 델로 스포트는 인터밀란과 AS로마의 금요일 경기를 앞두고 로멜로 루카쿠(28·인터밀란)와 크리스 스몰링(31·AS로마)을 전면에 내세워 '블랙 프라이데이'라는 인종차별적 제하의 기사를 게재해 빈축을 샀다. 당시 코리에레 델로 스포트는 "문화적 다양성을 나타내려고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지만 자국 선수 스몰링이 연관돼 있는 이슈에 잉글랜드 팬들은 분개했었다.

유로 2020에는 국가간 대립 양상이 축구로 표출됐던 사례도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대표 선수들이 입고 있는 유니폼을 문제 삼았다. 러시아 대표팀은 우크라이나 선수들의 유니폼에 새겨있는 우크라이나 지도에 러시아가 지배하고 있는 크림반도가 포함돼 있었다는 이유로 공식적인 항의를 제기했다. 크림반도는 원래 우크라이나의 영토였지만 러시아가 지난 2014년 병합한 지역이다. 현재 우크라이나를 비롯한 적지 않은 국가들이 이 합병을 불법으로 주장하고 있어 분쟁의 소지가 있다.

UEFA는 2차 대전 이후 유럽을 갈등과 분열이 아니라 통합의 시대로 이끌기 위해 1954년에 창립됐다. 1960년부터 시작된 유로 대회는 UEFA 회원국들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초기에 어려움이 많았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는 초기 유로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축구를 매개로 선의의 경쟁을 통한 하나된 유럽을 이끌겠다는 UEFA의 의지가 현재의 유로 대회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 유럽이 자신 있게 세계 최정상이라고 할 수 있는 분야는 과거에 비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다만 축구는 세계 최정상으로 자부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분야다. 유럽은 최근 월드컵에서도 남미를 압도하고 있으며 유로 대회는 월드컵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글로벌 축구대회로 급부상했다.

UEFA의 발족은 유럽 통합의 신호탄이었고 UEFA가 만든 유로 대회는 어느새 다문화 선수들의 경연장으로 탈바꿈했다. 이번 유로 2020에서 불거진 국가간 갈등과 인종차별 문제가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이유다.

이종성 교수. 이종성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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