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 선수단이 24일(한국시간) 우승 확정 후 기뻐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릴의 우승은 프로축구가 구단주나 투자그룹의 사유재가 아니라 시민들과 호흡해야 하는 공공재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벨기에, 네덜란드와 인접해 있어 상업도시로 발전해 왔던 릴은 19세기 산업혁명의 에너지를 가장 잘 발현한 프랑스의 도시였다. 릴은 이후 섬유와 기계공업 단지가 조성됐고 경제적 측면에서 풍요로운 시대를 구가했다.
경제적인 여유는 축구 팀의 비약적 성장을 이끌었다. 1930년대부터 릴에 일자리가 많이 생겨나 자연스레 이 곳으로 모여든 노동자들이 릴의 축구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1946~1955년 사이에는 두 차례 리그 우승과 다섯 번의 프랑스 컵 정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릴의 산업 전성기는 1960년대부터 서서히 하강곡선을 그렸다. 제조업 중심의 릴 산업 체계는 가격과 기술 경쟁력 하락으로 고전을 면치 못했고 축구단 릴은 3부리그까지 추락했다. 위축된 도시 경제와 일자리가 곧바로 축구 팀 성적에 영향을 준 셈이다.
릴은 다시 1부리그로 승격됐다. 하지만 1994년 빚더미에 올라 구단 존립 자체가 심각한 상황이었다. 이 때 시 정부가 구원투수로 나섰다. 시 정부는 클럽 주식 가운데 80%를 매입해 재정 투입을 했다. 사실상 시민구단이 된 셈이다.
잠시 동안 릴의 대주주 역할을 했던 시 정부는 1997년 클럽의 엄청난 부채를 탕감하기 위해 민간 투자자를 유치했다. 릴 클럽에 대한 민간투자는 회의적인 평가도 있었지만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었다. 기본적으로 릴은 프랑스 축구 명문 클럽 중 하나였고, 릴이 해저터널을 통해 파리와 런던을 오가는 초고속 열차 유로스타의 정차역이라는 점이 긍정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다.
릴 팬들이 24일(한국시간) 우승을 자축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프랑스 지방 정부는 오랫동안 프로축구 클럽에 재정적 지원을 해왔다. 프랑스 프로축구단은 한국과 같은 시도민 구단 체제는 아니었지만, 지방 정부나 시 정부는 프로축구 클럽에 대한 투자를 '공공 복지 서비스'로 평가했다.
여기에는 잉글랜드나 독일에 비해 상대적으로 프랑스 프로축구의 관중이나 산업 규모가 작다는 점도 고려됐으며, 특히 프랑스에서 이민자들의 스포츠였던 축구의 사회통합 가치를 정부가 높게 평가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프랑스 지방 정부의 프로축구 클럽에 대한 지원은 장기간 대규모로 이뤄졌다. 실제로 2001년까지 사실상 모든 프랑스 프로축구 클럽은 경기장 소유권을 갖고 있는 지방 정부나 시 정부에 경기장 사용료를 내지 않았다. 심지어 지방 정부가 직접적으로 클럽에 재정적 투자를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지방 정부가 클럽으로부터 경기장 사용료를 받고, 지방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제한 금액이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클럽에 대한 배려는 지속되고 있다.
릴의 우승은 한동안 카타르가 소유한 부자구단 PSG의 화려함에 가려 보지 못했던 프랑스 사회가 일군 프랑스 프로축구의 중요한 특징을 되돌아 보게 하는 계기가 되고 있다.
이종성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