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5조 손실' 미국대학풋볼은 태초부터 '프로' 스포츠였다 [이종성의 스포츠 문화&산업]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  2020.08.18 14:20
지난 1월 미국대학풋볼 올스타전 격인 2020 이스트 웨스트 슈라인 보울 모습. /AFPBBNews=뉴스1 지난 1월 미국대학풋볼 올스타전 격인 2020 이스트 웨스트 슈라인 보울 모습. /AFPBBNews=뉴스1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따르면 코로나19(COVID-19) 사태로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가 감내해야 할 경제적 손실액은 10억 달러(약 1조 1875억 원) 정도다. 이는 한 시즌 경기 수가 미국 프로스포츠 가운데 가장 많은 메이저리그(MLB)의 20억 달러와 프로농구(NBA)의 12억 달러 다음으로 많은 추정 손실액이다.


실제로 NCAA 주관의 행사 가운데 ‘3월의 광란(March Madness)’이라고 불리는 대학농구 토너먼트 경기가 무관중으로 진행됐으며 미국 대학스포츠 가운데 최고 인기 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풋볼(미식축구) 경기도 대부분의 지역 컨퍼런스에서 올 시즌에는 경기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이 중에 대학 미식축구 경기의 취소는 각 대학과 NCAA에 경제적으로 가장 큰 손실을 가져다 줄 것으로 예측된다. 미식축구의 인기가 가장 높은 5개 지역 컨퍼런스의 50개 주립대학이 한 시즌에 벌어들이는 수입이 총 41억 달러(약 4조 8687억 원)이며 이를 학교별 평균으로 계산하면 8200만 달러(약 971억 원)나 되기 때문이다.

대학 스포츠가 근본적으로 선수들에게 연봉 지급을 하지 않는 아마추어 스포츠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엄청난 액수다. 미국 대학 스포츠가 제도적으로만 ‘아마추어 스포츠’일뿐, 산업적 측면에서는 ‘프로 스포츠’였다는 평가가 그 어느 때보다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부분이다. 사실상 프로 스포츠로 운영되고 있으면서도 대학생 선수들에게 이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해묵은 문제가 최근 다시 불거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대학 미식축구는 태초부터 프로 스포츠처럼 운영됐다. 이미 1903년 당대 최강의 팀인 예일 대학교 미식축구팀은 같은 학교 법대, 의대와 신학대의 운영에 필요한 예산을 충당할 만큼의 막대한 수입을 올렸다. 1914년에는 7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스타디움을 개장해 한 시즌 경기 수는 적지만 경기마다 구름관중을 몰고 다니는 미식축구 경기의 문화적 특성을 십분 활용할 수 있었다.

아이비리그의 라이벌 하버드 대학은 예일 대학 미식축구팀의 성공이 가져온 대학의 유명세를 부러워해 대변혁을 감행했다. 당시 하버드 대학의 총장이던 찰스 윌리엄 엘리엇은 대학 미식축구팀의 성적향상을 위해 연봉 7000달러를 주고 감독을 모셔왔는데 이는 하버드 대학의 최고 연봉을 받는 교수보다 30%나 많은 액수였다. 하버드 대학을 연구 중심의 세계 최고 명문 대학으로 변모시키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엘리엇 총장은 홈 경기 때마다 3만8000명의 관중을 운집시킬 수 있는 미식축구의 가치를 이렇게 인정했다.

20세기 초반까지 주로 동부 사립 명문 대학의 전유물이었던 미식축구 문화와 산업은 전국적으로 확산된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대학 간의 치열한 라이벌 의식이 크게 작용했으며 이 과정에서 대학 미식축구는 미국 전역에 걸쳐 ‘추수감사절 시즌의 지역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지난 1월 열린 LSU(루이지애나 주립대)와 클렘슨대의 미국대학풋볼 챔피언십 경기 장면.  /AFPBBNews=뉴스1 지난 1월 열린 LSU(루이지애나 주립대)와 클렘슨대의 미국대학풋볼 챔피언십 경기 장면. /AFPBBNews=뉴스1
규칙의 변화도 대학 미식축구의 대중화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무엇보다 공격권을 가진 팀이 전진패스에 실패하면 15야드만큼 후퇴해야 하는 벌칙이 없어진 게 중요했다. 경기에 박진감을 더하기 위해서는 러닝 플레이뿐 아니라 쿼터백으로부터 시작되는 과감한 패싱이 이뤄져야 했는데, 이와 같은 벌칙 때문에 대학 미식축구 경기는 오랫동안 특정 학교를 응원하는 재학생과 동문 외 대중들에게는 지루한 경기였다.

미식축구 경기의 빠른 전개를 위해 한 팀당 15명에서 11명으로 선수 숫자를 줄이고 3번 공격을 할 동안 5야드 이상 전진을 하지 못하면 공격권을 상대 팀에 넘겨줘야 했던 규정 제정(추후 4번 공격에 10야드 전진으로 변경)도 스피디한 경기 운영을 위한 중요한 변화였다.

이런 변화를 주도했던 예일 대학교 미식축구팀의 감독 월터 캠프는 미식축구라는 경기를 분업화와 계량화로 대표되는 미국 산업의 특징과 접목시켰다. 캠프의 규정 변화는 미식축구 선수들의 다양한 포지션 분화와 함께 공격권을 가진 팀이 전진한 거리를 정교하게 측정한다는 계량화를 이끌었고, 이는 미식축구를 가장 미국적인 스포츠로 변모시키는 계기가 됐다.

미국적인 가치를 고스란히 담고 있던 대학 미식축구의 산업적 위상은 1970년대 후반 TV 중계권료를 둘러싸고 미식축구 명문 대학들과 NCAA의 분쟁에서 재확인됐다. 몇몇 미식축구 명문 대학들은 TV 중계권료를 NCAA가 방송사와 독점적으로 협상하는 것이 위헌적 소지가 있다고 판단해 소송을 제기했고 미국 대법원은 명문 대학들의 손을 들어줬다.

이후 1990년대에는 천정부지로 뛰어오른 대학 미식축구팀 감독의 연봉이 전국적인 화제가 됐다. 1992년 텍사스 A&M 대학이 미식축구 감독 연봉으로 28만 7000달러(약 3억 4000만 원)를 지불한 것에 대해 비판이 거세지자 텍사스 A&M 대학 측은 “고등교육(대학교육)은 비즈니스다”라는 명언을 남기며 이를 일축했다. 미국 대학에서 미식축구 만한 비즈니스 상품은 없다는 의미였다. 2019년 기준 미국 대학 미식축구 감독의 최고 연봉은 930만 달러(약 110억 원)에 달한다.

미국 대학 스포츠 종목 가운데 비인기 종목은 사실상 대학 미식축구 팀이 벌어들인 수입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다. 미소 냉전 시기부터 미국 대학생 선수가 따낸 올림픽 메달에도 미식축구팀이 벌어들인 수입이 큰 몫을 했다. 또한 미국 사회에서 미식축구 팀은 대학교의 위상을 결정짓는 중요한 잣대로 인식됐다. 아마추어 스포츠의 전당인 대학에서 경기가 펼쳐지지만 프로 스포츠라는 비판을 받아 왔던 대학 미식축구의 존재 이유였다.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이종성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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