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동호랭이 "쥬얼리 '원모어 타임' 데뷔..고스트 작곡가는 관례였죠"(인터뷰①)[스타메이커]

[스타메이커](125) 작곡가 겸 대표 프로듀서 신사동호랭이

윤상근 기자  |  2021.05.19 10:30

편집자주 | [스타메이커] 스타뉴스가 스타를 만든 '스타 메이커'(Star Maker)를 찾아갑니다. '스타메이커'는 대중의 사랑을 받는 스타 뿐만 아니라 차세대 스타를 발굴한 국내 대표 '엔터인(人)'과 만남의 장입니다.

신사동호랭이 인터뷰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신사동호랭이 인터뷰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신사동호랭이(38, 이호양)는 K팝을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히트 작곡가 중 한 명이라고 할 수 있다. 2004년 자신의 이름이 아닌 신사동호랭이라는 이름으로 작곡 활동을 시작했고 이 이름 자체도 화제를 모으며 이후 작곡가 사이에서 활동 이름을 짓는데 하나의 트렌드가 됐을 정도로 보유한 히트곡이 정말 많았다.

우여곡절을 거치며 대표 프로듀서로 거듭났음에도 후배 작곡가들과 끊임없이 격식 없는 소통을 하고, 자신이 제작하는 아이돌그룹 멤버들과도 터놓고 이야기를 하며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는 마인드 만큼은 분명 롱런의 비결이라고 할 만 했다.

-간단하게 자기 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저는 현재 티알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의 대표 프로듀서로 재직하면서 걸그룹 트라이비 제작하고 있고요. 타이거(tiger)라는 단어를 거꾸로 쓴 레지트(regit)라는 프로덕션 회사의 .대표 프로듀서이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저와 EXID 멤버로 활동한 LE가 소속돼 있고요. 트라이비의 앨범을 맡고 있는 안무가들도 모여서 작업을 하는 공간도 함께 쓰고 있습니다.

-그럼 정확히 대표 프로듀서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요.

▶그럼요. 저는 여태껏 회사의 대표라는 직책을 맡아본 적도 없고 하기도 싫어서요. 저는 그저 프로듀서의 역할이 더 중요할 뿐이라고 생각하고 있죠. 그리고 프로덕션을 새로 만든 이유는 제작 회사와 프로덕션이 한 회사 안에서 섞이면 안 좋더라고요. 그리고 한 회사만 맡으면 뭔가 다양함이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다양한 걸 접해야 콘텐츠가 발전하고 스펙트럼도 넓어지는 데 한 회사만 맡았을 때 부정적 경험도 했고요.

그리고 구성원들과는 계약 관계가 아닌 크루 형태로 함께 하되 수익 모델도 찾고 있어요. 저를 통해서 하게 되는 것만 수익을 쉐어하는 정도죠. 구성원들과 계약서도 써본 적도 없는데요. 만약 제가 창작자가 아니면 계약서가 없음으로 인해 불상사가 날 수는 있지만 전 제 일을 제가 다 하고 구성원들도 각자 자기들의 일을 직접 하니까 그럴 일은 없어요.

요번에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화두가 됐던 고스트 작곡가라는 것도 그때 당시에는 관례였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고요. 저는 그걸 싫어해서 그렇게 안했지만 과거에 활동했을 때는 이 일을 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서 받아들여야만 했었어요.

-올해로 이 업계에서 활약하신 지도 얼마나 되셨나요.

▶공식적으로는 신사동호랭이라는 활동 이름을 2004년에 처음 썼어요. 그 전에 고3 때 편곡자로 데뷔를 했고요. 신사동호랭이라는 이름으로는 자두가 부른 '남과 여'라는 곡의 편곡을 맡았어요.

-혹시 본인이 작곡가로서 알려지게 된 시점이 어느 때인지 기억이 나실까요.

▶사람들에게 제 활동 이름이 각인된 건 쥬얼리 히트곡 '원 모어 타임'이었는데요. 그때 저는 이 곡의 번안 편곡을 맡았어요. 그런데 MBC의 모 방송에서 이 곡이 소개됐을 때 누군가의 실수로 제가 작곡자로 크레딧이 잘못 올라간 거예요. 심지어 그걸 보고 여러 제작자들이 제게 작곡 의뢰를 하기도 했었죠. 그 중 1명이 마이티마우스 제작자였는데 그 계기로 제가 썼던 곡이 '에너지'라는 곡이었어요.

-직접 발굴하신 후배 작곡가들도 정말 많죠.

▶저랑 같이 했던 작곡가들 중에서는 블랙아이드필승도 있고 범이냥이 등도 있고 많은데요. 이들과는 제가 같이 한다는 개념이고 제 작업을 같이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물론 무언가를 필요로 하는 게 있으면 하게 되겠지만 이제는 저만의 것을 하게 되고, 그 친구들도 그 친구들만의 것이 생겨서 그것에 집중하고 있는 거죠. 그때는 이 작업의 발주자가 저였던 것만이 지금과의 차이점이에요. 이제는 의뢰자가 직접 그 친구들에게 연락이 가니까요. 제가 발굴을 한다거나 누군가를 데리고 있다 라는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저 이 업계에서 가가 선배일 뿐이죠

신사동호랭이 인터뷰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신사동호랭이 인터뷰 /사진=김창현 기자 chmt@
-지금 시점으로 따져봤을 때 본인의 커리어의 어느 지점을 달리고 있다고 보면 될까요.

▶최정점은 아니죠. 어떤 선배가 제게 "이 일을 하게 되면 오르락내리락을 할 것"이라고 말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때가 2009년, 2010년 쯤이었는데요. 제가 일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 잘 내려와야 잘 올라가야 한다 라는 걸 그때는 몰랐어요. 이후 굉장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경험했고 지금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중인 거예요.

정점이라는 말도 좋아하지 않아요. 심지어 제가 어느 인터뷰에서 "1등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말한 적도 있어요. 당연히 제 욕심에 의한 1등이 뿌듯하겠지만 우리가 하는 일이라는 게 계획대로 1등이 되는 것도 아니고 소리소문 없이 상승을 하고 하락을 해서 거기에 일희일비를 하면 못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작곡가로 활동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음악하는 게 좋았고 만드는 게 재밌었고요. 제가 어릴 때 할 수 있었던 일이 랩 하는 형들의 트랙을 만들어가는 것이었어요. 제가 상상했던 게 현실화가 되고 반영이 됐을 때의 쾌감이 있었어요.

제 작곡에 영향을 준 아티스트도 정말 한 두 명이 아니었죠. 엑스재팬 요시키가 되기도 했고 블랙아이드피스 윌아이엠 등도 제 우상이 되곤 했죠. 장르도 폭넓게 시도하는 편이에요. 장르 자체에 대한 거부 반응도 적은 편이고요.

-작곡가 또는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보람과 고충은 무엇이었나요.

▶제작하면서 느낀 감정인데 굉장히 고생하면서 작업한 친구들이 좋은 성과를 얻으면 뿌듯했어요. 그리고 고충은 그 과정인 것이죠. "내일이면 달라지겠지" 하는 희망이 사라지고 뭔가 쳇바퀴 돌듯이 지내며 겪는 불확실성과 불안감의 끝이 안 보일 때가 제일 힘든 부분이에요. 다만 저는 그 시간들을 버텼다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뭔가 새로운 걸 해야 한다고만 생각하느라 그 시간들이 그저 갔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②로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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