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인절스는 왜 렌던의 절반 값인 류현진을 잡지 않았나 [댄 김의 MLB 산책]

댄 김 재미저널리스트  |  2019.12.27 15:45
앤서니 렌던이 지난 15일(한국시간) LA 에인절스 입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앤서니 렌던이 지난 15일(한국시간) LA 에인절스 입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BBNews=뉴스1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 LA 에인절스의 이번 오프시즌 최대 과제는 선발투수진 재건이다. 올해 72승90패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에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35게임 차 뒤진 4위를 차지한 에인절스는 선발투수들의 평균자책점(ERA)이 5.64로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꼴찌에서 두 번째인 29위였다.


투수들의 무덤으로 불리는 덴버 쿠어스필드를 홈 구장으로 가진 콜로라도 로키스(ERA 5.87)가 에인절스보다 선발진 ERA가 나빴던 유일한 팀이었다. 올해 ‘동네북’ 신세였던 볼티모어 오리올스(5.57)와 디트로이트 타이거스(5.51)도 에인절스보다 선발진 ERA가 좋았다.

에인절스는 또 올해 선발투수로 무려 19명을 활용했는데 그 중 가장 많은 경기에 선발 등판한 선수가 좌완투수 앤드루 히니(4승6패, 4.91)로 겨우 18경기에 나섰을 뿐이다. 시즌 내내 꾸준하게 선발자리를 지킨 선수가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선발진이 기량은 물론 건강하게 마운드를 지키는 내구성도 다른 팀들에 비해 크게 떨어졌다.

메이저리그에서 올해 선발로 20경기에 등판한 선수가 단 한 명도 없는 구단은 에인절스가 유일무이하다. 심지어 올해 무려 21명의 선발투수를 내보내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로 많은 선발투수 등판 기록을 세운 토론토 블루제이스도 29경기에 선발로 나선 트렌트 손튼을 포함해 20경기 이상 선발 등판한 선수가 3명이나 됐던 것을 보면 에인절스가 선발투수에 관한 한 얼마나 지독하게 박복했는지 알 수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사실상 팀의 에이스 역할을 하던 타일러 스캑스는 지난 7월1일 텍사스 원정 도중 호텔 방에서 만 27세의 젊은 나이에 약물 복용으로 숨진 채 발견돼 큰 충격을 안겼다. 시즌 마지막 3개월을 뛰지 않은 스캑스가 거둔 7승(7패)이 올해 에인절스 선발투수 중 최고였다는 사실은 에인절스의 올해 선발진이 얼마나 허약했는지를 잘 말해주는 사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다면 에인절스의 이번 오프시즌 목표가 무엇일지는 물어보지 않아도 뻔하다. 뚜렷한 에이스도 없고, 꾸준하게 마운드를 지켜줄 내구성 있는 선발요원도 없었던 팀이니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선발진을 보강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일 수밖에 없다.

류현진(왼쪽)이 토론토의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지난 25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류현진(왼쪽)이 토론토의 메디컬 테스트를 위해 지난 25일 인천공항을 통해 출국하고 있다. /사진=뉴스1
다행히도 올해 프리에이전트(FA) 시장에는 초특급 에이스로 평가된 게릿 콜과 스티븐 스트라스버그를 비롯, 류현진, 매디슨 범가너, 잭 휠러, 달라스 카이클 등 에인절스에 오면 충분히 에이스 역할을 맡아줄 수 있는 선수만도 6명이나 됐다. 이들 중 최소 한 명을 영입하고 다음 레벨급 투수들 가운데 두 명 정도만 더 보완한다면 에인절스의 선발진은 올해보다 월등히 업그레이드될 수 있었다. 돈을 쓸 때는 화끈하게 쓰는 아트 모레노 구단주의 특성을 감안하면 에인절스가 이번 FA 시장에서 큰 손으로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그리고 그 전망처럼 에인절스는 오프시즌 초반부터 콜과 스트라스버그 영입전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고, 이들을 모두 놓치긴 했지만 곧바로 돌아서서 3루수 앤서니 렌던을 7년 2억4500만달러라는 거액을 베팅해 붙잡는 등 ‘큰 손’의 면모를 보여줬다.

이미 올해 초 팀의 기둥인 마이크 트라웃을 북미 프로스포츠 역사상 최고인 12년간 4억2650만달러에 연장 계약했던 에인절스는 이로써 올해 트라웃과 렌던 두 선수에게만 7억 달러에 육박하는 엄청난 투자를 했다. 당연히 다음 단계는 선발투수들을 확보하는 것에 맞춰질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그 다음부터 에인절스의 행보가 예상 궤도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범가너와 카이클, 류현진 중 최소한 한 명은 붙잡을 것으로 예상됐지만 결과적으로 아무도 영입하지 않았다. 이들 3명이 합의한 계약조건이 에인절스가 감당 못할 수준도 아니어서 이들 중 아무도 붙잡지 않은 에인절스의 결정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 수밖에 없었다.

물론 에인절스가 아무 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이 달 초 트레이드를 통해 볼티모어에서 지난 3년간 평균 30경기에 선발 등판한 우완투수 딜런 번디를 영입했고 19일에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지난 7년간 빠짐없이 매년 최소한 30경기 이상 선발 등판했던 FA 우완투수 훌리오 테헤란을 1년 900만 달러에 영입, 선발진의 내구성을 크게 향상시켰다. 여기에 범가너나 카이클, 류현진 중 한 명을 영입해 에이스 역할을 맡긴다면 에인절스의 선발진 보강 프로젝트는 상당부분 완성될 수 있었다.

그런데 에인절스는 당연해 보이는 그 수순을 밟지 않았다. 범가너나 카이클, 류현진 모두 에인절스와 대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그 누구도 에인절스에게서 진지한 오퍼를 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에인절스가 진정으로 영입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이들이 이 정도 금액으로 다른 팀과 계약하도록 놔두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이 모두 팀을 찾아 떠나간 지금 이제 더 이상 FA 시장에는 에인절스의 에이스 역할을 해줄 만한 투수가 남아 있지 않게 됐다.

선발투수진 보강이 누구보다 절실한 에인절스가 왜 FA 시장에서 팀을 확 바꿀 수 있는 기회를 그냥 흘러버렸는지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더구나 올해 팀이 트라웃과 렌던에게 엄청난 투자를 한 사실을 감안하면 더욱 의문이 든다.

필요하다곤 하지만 선발투수들만큼 절실하지는 않은 포지션인 3루수 렌던을 잡는데 2억5000만달러 가까운 엄청난 돈을 쓰고 나서 그 절반도 안 되는 액수를 투자하지 않아 그보다 훨씬 더 필요한 포지션인 에이스 보강 기회를 놓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것은 마치 기껏 큰 돈을 들여 엔진을 다 고쳐놓은 뒤 다 낡은 타이어를 교체하지 않고 땜질만 해서 계속 쓰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2020년 투타 겸업에 재도전하는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2020년 투타 겸업에 재도전하는 LA 에인절스의 오타니 쇼헤이. /AFPBBNews=뉴스1
물론 에인절스의 선발진 보강 옵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우선 트레이드를 통한 전력보강의 길은 아직 남아 있다. 보스턴 레드삭스의 데이빗 프라이스 등이 트레이드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하지만 그 옵션은 유망주들을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고 성사 여부도 확실한 것이 아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세컨드 레벨로 분류됐던 투수들 가운데서 ‘흙 속의 진주’를 찾는 것이다. 그런 후보들로 이반 노바(33), 알렉스 우드(29), 제이슨 바르가스(37) 등이 거론되고 있다. 이들은 우선 몸값이 저렴하고 빅리그에서 상당히 꾸준한 기록을 갖고 있어 부상만 없다면 괜찮은 선발요원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여기에 토미 존 수술에서 돌아와 내년부터 선발진에 복귀하는 오타니 쇼혜이와 기존의 선발요원인 히니, 그리핀 캐닝 등을 활용하면 그래도 ‘쓸 만한(Serviceable)' 선발진을 꾸리는 것은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정도론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양키스 등으로 대표되는 리그 정상급을 넘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투자를 할 때는 끝까지 마무리를 해야 하는데 이번 에인절스의 움직임은 뭔가 하다가 중간에서 그만 둔 느낌이 들게 한다. 과연 에인절스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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