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섭x김윤진x나나 '자백' 결말이 바뀐 이유는?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22.11.01 10:30
이 기사에는 영화 '자백'의 스포일러가 약간 담겨있습니다.


해외영화 리메이크는 쉽지 않다. 설정이 좋아야 하는 건 물론이지만 국내 관객들이 원작을 가급적 몰라야 한다. 해외 영화를 리메이크한 영화들이 원작을 가급적 잘 알리지 않는 이유다. 반전이 있는 영화라면 특히 그렇다.

한국적 정서를 가미한다곤 하지만, 한국적 정서가 시쳇말로 K-신파로 흐르기 쉽다. 신파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만드는 이들의 관성 같은 경향이 있는 탓이다.


영화 '자백'은 그런 어려운 길들을 잘 헤쳐나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요, 개봉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자백'은 알려졌다시피 스페인 영화 '인비저블 게스트'가 원작이다. 내연녀 밀실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사업가와 승률 100% 변호사가 사건의 실체를 짜맞춰가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자백'의 시작은 벨기에로 떠나는 비행기였다. '신과 함께' 등을 제작한 리얼라이즈픽쳐스 원동연 대표가 벨기에 브뤼셀 판타스틱영화제에 초청돼 비행기를 타고 가던 중 우연히 원작을 보면서 시작됐다. 브리티쉬에어라인을 타고 가던 원 대표는 한글 자막이 있는 해외영화를 찾던 중 우연히 '인비저블 게스트'를 보고 반했다. 그 뒤 리메이크 판권을 갖고 있는 지인에게 제안을 받으면서 본격적으로 시나리오 작업과 감독 찾기에 나섰다. 원 대표와 영화 '마린보이'를 같이 한 윤종석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


그런데 원 대표에게 유명 감독으로부터 건너건너 제안이 들어왔다. 마침 역시 비행기에서 '인비저블 게스트'를 본 유명 감독이 이 영화 리메이크에 관심을 갖고 있다가 원 대표가 제작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연출자를 구했냐는 문의를 해온 것. 보통 이럴 때 제작자는 심적인 갈등을 겪기 마련이다. 전작 흥행 성적이 안좋은 감독과 유명 감독 중 선택을 하자면, 고민 끝에 후자를 택하기 쉽다.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감독이 바뀌는 경우도 충무로에는 왕왕 있다.

그래도 원 대표는 윤종석 감독과 같이 가기로 하고 유명 감독의 제안을 고사했다.

제목 정하기도 어려웠다. 윤종석 감독은 이런 영화일수록 제목이 정직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자백'이란 제목이 너무 영화 속 반전을 암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제작사에서 100만원을 상금으로 걸고 제목 공모를 하기도 했지만 결국 '자백'만한 제목이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자백'은 당초 KT영화사업부에서 투자하고 배급할 계획이었다. KT영화사업부가 한창 의욕적으로 한국영화 투자에 나설 때 선택한 영화였다. 그렇게 잘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KT영화사업부가 한국영화 사업에서 철수를 결정하면서 '자백'은 하루아침에 허공에 뜰 위기에 놓였다. 다행히 롯데엔터테인먼트에서 '자백'을 인수받으면서 제 모습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개봉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2019년 12월 크랭크업한 '자백'은 원래는 2020년 10월 개봉을 하려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미뤄졌다. 그 뒤 여러 차례 개봉 시기를 저울질 했으며 올 9월말 개봉도 고민했었다. 여러 이유 속에 10월26일 개봉해 입소문으로 박스오피스 1위를 이끌고 있다.

사실 '자백' 결말은 현재 극장 상영버전과는 조금 달랐다. 시나리오에는 K-신파와 닿아있는 결말이 있었고, 그렇게 찍었다. 원래 결말은 비밀을 품고 있는 자동차가 얼어붙은 호수에서 꺼내지는 걸 부모가 지켜보는 장면이었다. 특히 김윤진의 얼굴이 롱테이크로 담기는 것이었다. 먹먹한, 절절한, 안타까운, 마침내인, 온갖 표정이 담겨있는 김윤진의 얼굴이 마지막이었다.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은 매우 중요하다. 배우의 얼굴로 시작하고 맺을 경우, 어떤 배우의 얼굴로 시작하고 어떤 배우의 얼굴로 끝나느냐에 따라 전해지는 감흥이 천차만별이다. 그렇기에 마지막 장면을 어떤 배우의 얼굴로 맺느냐를 놓고 감독과 배우의 신경전, 배우들의 신경전, 투자사와 감독의 신경전 등등이 벌어지곤 한다. 보통 이럴 때 합의점은 시나리오다. 시나리오를 보고 영화를 하기로 한 만큼 시나리오 대로 가는 게 제일 좋지 않냐고 정리하곤 한다. 이게 안되서 결말이 산으로 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올여름 영화 중에도 그런 영화가 있긴 하다.

특이하게도 '자백'의 현재 버전 결말 아이디어는, 편집기사와 투자배급사인 롯데엔터테인먼트 직원이 냈다. 영화가 쌓아올린 서사와 반전들이 주는 쾌감 그리고 결말이 다 드러났는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가서 어머니의 감정을 더하면 자칫 신파로 흐르기 쉽고 지금 관객들은 그걸 싫어할 것이란 아이디어였다. 이 아이디어를 윤종석 감독은 흔쾌히 받아들였다. 윤 감독은 합리적이고 영화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제작자 원동연 대표는 신파가 주는 힘을 아는 만큼 쉽게 동의하진 않았다. '신과 함께' 제작자이니, 신파가 주는 힘은 아는 맛인 탓이다. 아는 맛이 더 무서운 법이다.

더욱이 제작자는 고려할 게 더 많다. '자백'이 소지섭의 얼굴로 열고 김윤진의 얼굴로 닫는 영화로 기획하고 합의해서 만들어진 영화인데, 현재 버전으로 가면 김윤진의 얼굴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보통 배우들이 작품을 결정할 때 꼭 힘을 쏟는, 이거다 싶은 장면이 있기 마련이다. 그 장면을 위해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윤진에겐 마지막 장면이야말로 그랬을 터.

원 대표는 고민 끝에 현재 상영 버전을 김윤진에게 보여줬다. 양해를 구하면서. 김윤진은 자신의 장면이 통째로 편집됐는데도 불구하고 이 버전이 훨씬 깔끔하고 관객에게 영화 내용이 잘 전달될 것 같다며 흔쾌히 동의했다. 원 대표 표현대로 "쿨했다".

'자백'을 본 관객이라면 동의하겠지만, 이 영화는 소지섭 김윤진 나나, 세 주연배우들을 보는 맛이 상당하다. 소지섭은 기존에 보여줬던 것과 결이 다른 연기를 보여준다. 나나는 전혀 다른 두 모습을, 한 모습으로 연기하는데 가히 발견이라고 할 만하다. 김윤진은 모처럼 한국영화에 자막이 필요하다는 소리가 안 나올 만큼, 정확한 딕션으로 관객의 귀에 내용을 꽂는다.

좋은 영화는 배우들과 감독, 제작자, 편집, 투자사까지 어느 한 명의 공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함께 만든다. '자백'은 그렇게 만들어진 좋은 영화다.

'자백'은 개봉 첫주 목요일보다 개봉 둘째주 월요일 관객이 더 많이 들어 롱런 조짐은 보이고 있다. '자백'의 주역들은 10월30일 무대인사를 가는 도중에 이태원 참사 소식을 접하고 애도하는 차원에서 급히 취소했다. 무대인사관들은 취소 소식이 전해지자 예매가 60%가 넘게 빠졌다. 이후 국가 애도 기간이 선포되면서 영화를 홍보할 수 있는 기회가 전면 봉쇄되기도 했다.

여러 사람들의 공으로 만들어진 좋은 영화가, 부디 더 많은 관객들에게 제대로 전달되길 바란다. 거대한 슬픔이 다가올수록 평정심을 유지하면서 하던 일을 계속 해야 하는 법이다. 그래야 살아진다. 애도를 마음에 품고, 극장에 가는 일상이 계속되길, '자백'은 그 일상에 포함되도 좋을 만한 영화다.

전형화 기자 aoi@mtstar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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