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성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들을 수 없는 이유

[록기자의 사심집합소]

김현록 기자  |  2018.09.25 12:00
영화 \'명당\'의 지성 /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명당'의 지성 /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새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을 내놓은 지성(41)은 "영화를 하면 신인같다"고 했다. "극장 앞에 제 얼굴이 걸리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다"고 했다. "소망이 있다면, 100만이 넘는 영화를 해봤으면 한다"고도 했다. 세 살 어린 동료배우 조승우에 대한 '팬심'을 털어놓는가 하면, '내 명당은 이보영 옆자리'라던 닭살 발언을 해명하다 "보영이가 편할 수 있는 자리를 찾을 뿐이고, 제 명당 자리는 그 옆일 뿐"이라는 진심어린(!) 설명으로 기혼·미혼을 가리지 않는 기자들로부터 야유 아닌 야유까지 받아버린 이 남자. 진지하게 "어떤 분들에게 이 발언이 불편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고백하긴 했지만, '나는 있는대로 말했을 뿐인데'라는 듯 다소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던 배우 지성의 모습이 계속 생각이 난다.

사랑하는 아내에 대한 그의 애정을, 동료에 대한 존경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지성이 수줍게 털어놓는 문구들을 곧이곧대로 들을 일은 아니니 짚어본다. 1977년생인 지성은 1999년 데뷔했다. 20편을 채운 드라마보다야 훨씬 적지만 '명당'까지 6편의 장편 상업영화에 출연했다. 스크린보다 브라운관 쪽 활약이 더 빛난 건 사실이지만 '혈의 누'(2005)는 200만 가까운 관객을 모았고, 주연을 맡은 '나의 PS 파트너'(2012)의 총관객은 183만 명이었다.

반전의 카드 역할을 톡톡히 해냈던 '혈의 누'로 만났던 지성을 스크린을 통해 새삼 다시 보게 된 건 영화 '좋은 친구들'(2014)을 통해서였는데, 지성은 물론이고 주지훈, 이광수를 모두 배우로 다시 보게 한 그해의 손꼽히는 수작으로 기억된다. 그 얼굴에 처음 '악역'의 그늘이 드리워진 드라마 '비밀'(2015)에 이어 황정음과 거푸 만난 드라마 '킬미,힐미'(2016)를 보면서 지성이란 배우의 매력에 퐁당 빠졌다. 촬영 직전 합류를 결정, 7개의 인격을 가진 재벌3세를 끝내주게 연기해버린 그를 종영 직후 포차에서 만났더랬다. 지성은 당시에도 "(자신에게는 출연 제안이 오지 않고) 한참 다른 분들의 출연을 논의하던 때에 먼저 시놉시스를 보고는 '나 시켜주면 잘 할텐데 했던 작품'"이라고 말했었다. 여느 배우들이 공개석상에서 쉽게 하지 않는 이야기들이다.

영화 \'명당\'의 지성 /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명당'의 지성 /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명당' 개봉을 맞아 다시 만난 지성은 여전했다. '배우 지성'이 아니라 '이보영의 남편', '딸 지유의 아빠'로서도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심지어 묻지도 않고 '액션을 왜 이리 잘하냐'고 했을 뿐인데 먼저 싱글벙글해져서는 "내가 지유 아빠 아니냐"고 답을 시작했다. 7년 열애 2013년 결혼한 지성과 이보영은 2015년 딸 지유를 얻었고 지난 달 둘째 임신 소식을 전해 축하를 한 몸에 받은 터다.

"늦게 자식을 낳고 향후 20년 뒤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어요. 제 딸이 커서 결혼할 시점에 제가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평상시 몸 관리를 하는 편이거든요. '명당' 같은 영화를 갑자기 만나서 액션을 준비하려면 제 몸이 따라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평소 음식도 조절하고, 운동도 하고. 그래서 말 타고 액션하는 건 따로 준비할 필요가 없었어요. 지유한테 '아빠가 건강하다' 보여주는 것도 같고.(웃음) 지유가 4살인데 엄마 아빠가 다 배우라는 걸 인식하는 것 같아요.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영상통화를 하면 옆사람들 보라고 데려가더라고요. '아빠가 자랑스러운가?' '내가 잘 해줬나?'하는 생각도 들고."(흐뭇)

밤을 꼬박 새운 밤샘 촬영을 아침에 마무리하는 것으로 '명당'이 크랭크업 한 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잠시 눈을 붙이고 곧장 유치원에서 픽업한 딸과 여행을 떠났다는 지성. 작품이 끝나면 주어진 시간을 온전히 가족과 보내다 보니 개인의 삶이 별로 없다면서 "1년 동안 내가 뭐했나 하면 별 거 없다"고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다. 삶의 변화는 배우 지성의 변화가 됐다. 자연히 가족애가 담긴 작품에 눈이 먼저 가고, 드라마 '피고인'(2017) 경우는 딸 구하는 아빠 이야기가 너무 절실히 다가왔더랬다. 그는 이보영을 만나 "예전엔 그래본 적이 없는데 제 자신을 사랑할 줄 알게 만들어줘 가장 고맙다. 눈물 날 정도로 고맙다"면서 "연기 또한 달라진 것 같다. 저도 모르는 변화가 있었다"고 털어놨다.(지성에겐 미안한 얘기지만, 인터뷰를 마친 기자들 몇몇은 푸념했고 몇몇은 분통을 터뜨렸다.)

아내 이보영은 직업관에 대해선 말하지 않는 편이지만 좋지 않은 면에 대해선 직설적로 이야기한다고. '명당'에 대해선 별 말이 없었냐는 질문에 지성은 딱 한마디 했다. "아주 재미있다고 하셨습니다."

영화 \'명당\'의 지성 /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명당'의 지성 / 사진제공=메가박스플러스엠




영화 '명당'에서 지성은 훗날 고종의 아버지 흥선대원군이 되는 젊은 날의 흥선 이하응을 연기했다. 기세등등한 세도정치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기 위해 '상갓집 개'를 자처, 혓바닥으로 맨바닥을 핥으면서도 권력에 대한 욕망을 놓치 않는 인물이다. 왕의 묫자리까지 가로채 가며 가문의 힘을 유지하려는 영화 속 안동장씨 일가가 악의 축이라면, 핍박받는 왕가의 자손으로 등장한 흥선은 영화가 진행되며 그 성격이 드라마틱하게 바뀌어 간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부담은 아예 내려놓고 캐릭터에 집중했다는 지성은 "어느 누구도 실제 흥선을 본 적은 없기 때문에 내가 흥선이라고 생각했고, 그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면서 "배우 지성의 모습을 안 담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그 사람이 어떻게 걷고 말하고 숨을 쉬겠구나, 매 신 그의 솔직한 감정을 담으려 했다. 광기가 표출되는 순간순간을 두고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한다"면서 "상갓집 개로 목숨을 부지하려 했던 사람이 '이 터는 내가 가져야겠소'라고 말하기까지, 광기는 사실은 당연했을 것 같다"고 지성은 털어놨다.

"광기는 흥선 개인의 삶에서 나온 감정이라 생각해요. 권력에 대한 욕망이든 욕심이든, 그게 나빴는지 안 나빴는지는 후대 사람들이 결정지어 주는 것 같아요. 지금 흥선군이 나빴는지 옳았는지 좋은 사람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의견이 분분하잖아요. 캐릭터를 잡을 때 어려웠어요. 제 입장에서는 그저 옳다고 생각했어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내가 해야 할 몫에 대해서는 옳다 생각하고 결정하는 것으로."

노력형 배우를 자처한 지성은 "개인적으로 연기를 즐기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타고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이 터는 내가 가져야겠소' 하는 순간, 이제부터는 즐겨보자라는 마음으로 했다"고 고백했다. 그래놓고는 이내 "사실 많이 즐기지는 못했다. 누가 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털어놓는 그는 여지없는 지성, 지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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