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유재명 "멋부리지 않겠다. 휩쓸리지 않겠다"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인터뷰

김현록 기자  |  2018.09.25 12:00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배우 유재명(45).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2016)의 학생주임 동룡이 아빠로 나타나 그간 발견하지 못했던 연기파 배우의 존재를 알리더니,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마구 누비며 점점 더 존재감을 키워가는 중. 지난해 '비밀의 숲'에선 이창준 검사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리우더니 이번엔 '라이프'가 종영하자마자 추석대작 영화 '명당'(감독 박희곤)으로 떡 하니 나타났다.

왕의 운명까지 좌지우지하는 천하명당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암투를 그려낸 이 작품에서 유재명은 조승우가 맡은 천재 지관 박재상의 단짝이자 동료인 현실주의자 구용식 역을 맡았다. 묵직함을 내려놓고 서늘함을 지운 그는 한층 가벼워진 발놀림으로 영화 곳곳을 누비며 인간미 넘치는 캐릭터를 그려보였다.

연극무대를 통해 쌓은 단단한 저력을 지난 3년여 동안 폭발하듯 뿜어내 온 유재명은 차분한 어조로 감사를 전했다. 카메라 울렁증 탓에 바뀐 매체에 여전히 적응 중이라는 그는 '명당'에 이르러서야 현장을 즐긴다는 걸 체감했다며 앞으로도 "멋부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hwijpg@


-요즘 좋으실 것 같다.

▶감사하죠. 좀 어벙벙하고요. 너무 좋은 일들, 감사한 일들이 많이 생겨서 가끔 멍 하니, 멍 때리고 있다. 나에게 왜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지? 하면서.

-영화 '명당'은 어땠나.

▶좋았다. 조화로운 작품 같았다. 연기 테마 음악 미술 호흡 편집 그리고 간간이 느껴지는 배우들의 눈빛 모두 조화로운 느낌이었다. 어디 치우친 작품이 아니라.

-그간 드라마에서 묵직한 모습을 보다가 귀엽고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연극 때도 코미디 호흡을 많이 했다. 최근에는 오랜만이다. 맞는 옷을 입은 듯했다. 제가 즐겨 입는 옷, 집에서 편하게 입는 옷을 입은 느낌이다. 고무줄 늘어져도 입으면 편한 옷이 있지 않나. '명당'의 구용식은 오랜만에 그런 편하고 자유로운 옷을 입었던 것 같다.

-직접 만났을 땐 진중한 이미지가 강한데 '코미디가 내 옷'이라니 의외다.

▶저사람 되게 진지한 사람인데 웃기네. 허술해 보이는데 웃기네. 작정하고 하는 게 아니라 그 인물에 푹 담겨져서 하다 보니까 그런 웃음이 자연스럽게 배어서 좋게 봐주시는 것 같다. 반전을 즐긴다.

-'비밀의 숲', '라이프'에서 함께 한 조승우와 또 함께했다. 이번엔 친구다.

▶시간이 지나서 친구 같다. 편하다 보니까 친구로 나온다는 부담감은 없었다. 오히려 제가 친구 같고 승우가 형 같은 때도 있다. 제가 애교가 발동하면 승우가 '형 그러지 마' 그러기도 한다. 관객들도 색다른 재미를 가져가실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본 조승우는 어떤 배우인가.

▶몇 번 말씀을 드렸는데, 굉장히 치밀하고 치열하다 .겉으로는 슴슴한 느낌이 나지만 작품을 대하는 태도나 집중력은 제가 선배이고 형이지만 존중하고 싶을 정도다. 분석하는 모습, 인물이 가진 큰 마인드에 대해서 묵직하게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 표현 방식은 절제가 돼 있다. 왜 조승우라는 배우가 이렇게 사랑받는지를 느꼈다. 저도 배우고 연출을 하기 때문에 그걸 중요시한다. 자기 중심을 잡고서 자유롭게 연기한다. 함께하기에 최고의 배우라 생각한다.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어떻게 캐스팅됐는지.

▶영화에서는 '하루' 이후 가장 큰 역할이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고 놀랐고 이렇게 큰 역을 할 수 있을까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감독님 미팅을 가지며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단순한 조력자가 아니다. 자기만의 신념이 있다. 왕위를 차지하고 싶은 양반들의 신념과 견주어 전혀 다르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과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면서 돈 많이 벌고 싶은 서민들의 원초적 신념을 대변하는 인물'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이다. 그러다보니까 자신감이 생겼다.

-톤 조절은 어떻게 했나.

▶서두에 말씀드린 대로 참 조화로운 작품이었다. 음식으로 치자면 저는 '재미있는 음식'이다. 결국은 밸런스다. 다른 배우들의 연기와 잘 어우러지는 재미를 드러야 한다는 게 목표였다. 큰 서사에서 그 몫을 맡다보니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재미를 주는 것은 과하거나 조금이라도 템포를 못 맞추면 뻘쭘해지는 현상이 나타난다. 저는 양쪽 다를 잡고 싶었다. 읽고 상상하며 캐릭터를 잡아갔는데 제가 구용식을 보면 되게 귀엽다. 표정이나 말투가 육감적이라고 할까, 동물같기도 하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오랑우탄? 곰 같은 캐릭터인데 묵직함이 있으면서도 표현방식은 밝다. 고 그 마음을 단단하게 새긴 중요한 작품이었다. 큰 스크린에서 멋진 배우들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도 멋진 작업이었다.

-지난해 드라마 '비밀의 숲'에선 섹시하다는 평까지 받았다.

▶살다보니 그런 일도 있었다. 한때 젊었을 때 섹시한 적도 있었다. 나잇살이 있지만 저라고 항상 이렇게 푸짐한 인상은 아니지 않았겠나. 키가 크고 다리가 긴 편이니까.(웃음) '비밀의 숲'에서는 인물이 품은 이중적인, 선과 악이 공존하는 회색, 부인을 사랑하면서도 떠날 수밖에 없는 처지, 등 중년 남자들의 '그것'을 꼬집어 캐릭터가 되다보니 얻어걸린 것 같다. 정말 매력적인 캐릭터인 것 같다. 저도 이 캐릭터는 '인생캐릭터'구나 한다.

-시즌2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죽어버렸으니 참여하기가 어렵기도 할 텐데.

▶조심스러운 부분인데. 작가님과 제작진의 의지가 중요하다. 제가 하고싶다고 하는 게 아니니까. 박수칠 때 떠나라고. 저는 떨어져서 게가 할 수 있는 몫을 다 했으니까. 불러주신다면 감사한데 제 의지는 아닌 것 같다.

-왜 사랑받는다고 생각하는지.

▶저는 촌스러운 사람이다. 심심한 사람이다. 멋있는 사람이 아니다. '도봉순'에서 추리닝 입고 멸치 까는 아저씨가 됐다가 슈트 입은 검사가 됐다가 수술가운 입은 의사가 됐다가 장사를 했다가 사극을 했다가…하는데 저 사람에게 저런 게 보이나 하는 면 때문인 것 같다. '저런 매력이 있었나' 하고 잘 봐주신 것 같다.

-혹시 묫자리나 집터를 바꾼 건가.

▶서울 올라와서 아주 저렴한 옥탑방에 살았다. 그 옥탑방이 자꾸 생각이 난다. 경제적으로 힘든 때였는데 그 옥탑방에서 좋은 일이 많이 생겼다. 나온지 2년 됐는데 지금도 아침에 산책코스를 걸으며 거길 지나간다. 집터라기보다는 그때 그 집에서 경험했던 짧은 마음고생과 제 열정이 좋은 일들을 불러와준 것 같다. 저는 바람이 잘 통하고 수압이 높은 집을 좋아한다.(웃음) 지금 사는 집은 산동네인데 동네 할머니들이 낮에 모여 이야기를 하고 계신 모습이 좋았다. 골목에 사람 사는 흔적이 있고 조그마한 마을 공동체가 느껴져 그리로 이사를 갔다.

-대중이 유재명이라는 배우에 대해서 신뢰를 갖게 되면서 부담도 더 커질 법하다.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나이는 적당히 들었는데 이 쪽은 아직 신인같다. 연기는 여전히 끝이 없다. 고민의 연속이다. 평생 하고 싶지만 이렇게 많은 포커스를 받게 되면서 중심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이다. 중심이 무엇인지 스스로 물어보고 있다. 대중들이 원하는 것과 제가 하고 싶은 것의 연결지점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고 싶다. 좋은 연기자로 남는 것, 좋은 작품을 남기는 것 그 사이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영화 '명당'의 배우 유재명 / 사진=김휘선 기자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나.

▶좋은 작품들이 들어오니까 아까워서 해야지 했는데 하다보니 다작이 됐다. 연극 때는 실험적인 작품을 많이 했다. 연극과는 다른데, 첫 느낌이 중요한 것 같다. 좋은 작품은 처음 봤을 때 머리에서 계속 떠오른다. '명당' 경우도 용식이가 계속 떠올랐다. 그런 작품을 받게 되면 여지없이 하게 됐던 것 같다. 연출할 때는 실험적인 작품을, 배우로서는 코믹한 캐릭터를 많이 했는데 본능적으로 반대급부를 찾았나보다.

-무대에서 연기하다 카메라 앞으로 옮겨오며 매체가 바뀔 때 어려움은 혹시 없었나.

▶적응을 잘 못하기에 내려가려고 했다. 제 문제라 생각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더 많이 보여드리고 싶은데 왜 기회가 없을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러면서 약간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저희 동네에 있는 후배들과 술 한 잔 먹으면서 용기내고 위로받는 시간을 가졌다. 역시 옆에 있는 동지가 중요한 것 같다.

-그럴 때 '응답하라'를 만난 건가.

▶그때 만났다. 그 옥탑방에 있을 때. 아직도 동룡이 아버지로 많이 알아보신다. 신원호 PD는 저라는 배우를 처음으로 크게 쓰고 알아봐 주신 분이다. 그리고 '비밀의 숲'이 중간 과정에서 또 다른 모습을 대중에게 각인시켜 주셨고, 그리고 '명당'이 추석 시즌 큰 스크린에 걸리는 완성점 같은 모습이다. 이것 끝나면 또다른 시작이 될 것 같다. 3년 사이에 어떤 조화가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너무 좋다.

감사하다는 말 밖에. 그 말 밖에 안 떠오르는 것 같다. 더 잘하는 것도 중요한데 더 정확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랑을 받았기에 어떤 역할을 맡았을 때 그 역할이 보여주는 정확한 연기를 해내야되겠다. 멋부리지 않고 휩쓸리지 않고 인물이 가지고 있는 진심과 애환을 제가 아는 범위 내에서 있는 그대로 보여드리는 것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크게 조명받지 못했지만 열심히 무대에 오르고 있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무명배우라는 말이 없다고 생각한다. 배우들에게는 각자 이름이 있다. 그것이 어떤 장르를 만나느냐의 문제다. 연극으로 소문난 배우가 많지만 영상 매체를 아직 안 만났기에 이름이 안 알려졌을 뿐이다. 자존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도 자존감이 낮다. '오디션이 떨어진 건 못해서가 아니라 그 역이 안 맞았을 뿐이야. 오디션에 떨어진 것이 실패가 아니다. 마음고생을 하겠지만 마음 단단하게 먹고 자기 길을 가면 나를 믿어주는 좋은 분이 많고 좋은 작품이 많다' 그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것을 맞딱뜨리는 게 복이 아니겠나. 그 복은 온다는 말을 해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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