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스티븐연 in 칸 #한국어 #봉준호 #연상엽 그리고 후회

칸(프랑스)=김현록 기자  |  2018.05.19 12:00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버닝\'의 스티븐 연 /AFPBBNews=뉴스1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버닝'의 스티븐 연 /AFPBBNews=뉴스1


'버닝'의 스티븐 연(한국명 연상엽)은 놀랍다. 5살 때 미국으로 건너간 교포 1.5세대인 그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인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한국인을 연기했다. '위대한 개츠비' 같은, 뭘 하는지 모르겠는데 돈이 많은 이상한 사람 벤이다.

처음 스티븐 연은 한국인이란 설정이 부담돼 고사할 생각까지 했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본 뒤에는 신기하게도 그 두려움이 사라졌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버닝' 속 그가 그려낸 캐릭터는 아무 이물감이 없다. 유학생활을 한 듯한 독특한 발음이 되려 벤을 더욱 실감나는 인물로 만든다. 사이코패스를 연상시키는 순간 순간, 하품마저 섬뜩하게 다가오는 다층적인 캐릭터가 스티브 연을 만나 제대로 탄생했다.

아니 스티븐 연이 아니라 연상엽이라 해야 한다. '버닝'의 오프닝에 그는 스티븐 연 대신 연상엽이란 이름을 썼다. 이따금 만나는 한국의 가족들이 불러주는 그 이름이 현재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인 '버닝'에 어울린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그의 애정이, 깊은 이해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칸에서 만난 스티븐 연이 들려준 이야기를 이곳에 옮긴다.

스티븐 연 /AFPBBNews=뉴스1 스티븐 연 /AFPBBNews=뉴스1


-'버닝'에 대한 칸 현지의 반응이 좋다.

▶정말 기분이 좋다. 그것이 바로 이창동 감독의 힘이다. 감독님의 영화를 보면 한국적 문화 코드 안에 세계적 코드를 섞어 놓고 인간적 면과 문화를 폭넓게 보여줄 수 있는 면이 굉장히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런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너무 좋다.

-사이코패스 성향 어떻게 해석했나.

▶사이코패스라는 설정이 어렵지는 않았다. 왜냐면 규칙이 없고 혼란이 들어가 있는 연기 방식을 해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가장 어려웠던 건 벤이라는 사람이 느끼고 있는 인간적인 외로움이었다.

-섬뜩한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다.

▶웃음소리에 대해서는 시나리오에 정확한 워딩이 있었다. 소름끼치는 싸늘한 웃음을 보이라고. 감독님이 저에게 구체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았다. 제가 느끼고 해 본 것이다. '그는 사이코다. 해봐.'

-벤은 살인자인가? 혹은 그렇지 않은가. 어떻게 생각하고 연기했나.

▶제가 배운 한국말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이 '미묘'라는 것이다. 그것은 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기도 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안타깝게도 벤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는다.

배우로서 캐릭터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는 아무 말씀을 드리지 않겠다. 감독님이 원했던 의도가 관객이 어떤 느낌을 받았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많은 토론을 끌어내는 게 감독님의 생각이었을 것이다.

감독님께서도 따로 지시하지 않고 제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놔두셨다. 배우만 결정할 수 있는 일이지만 결정하라고 하셨다. 정말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한국어 연기가 너무 자연스러워 놀랐다.

▶처음 시나리오를 받았을 때 고사할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했다. 저도 이창동 감독의 영화를 한다는 건 영광이지만 한국어 때문에 망할까봐 걱정을 했다. 한국인이 아닌데 한국어의 늬앙스를 과연 표현할 수 있을까.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은 다음에는 내게 원래 있는 늬앙스가 벤 캐릭터에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신기하게도 그 때부터는 한국어를 외워야 하는데 겁이 안 났다. 왜 겁이 안 났지? 신기할 정도다. 감독님도 가끔 그런 말씀을 한다. 이 영화가 스스로 만들어진 것 같다고. 저도 걱정이 없었다. 감독님도 도와주고 (유)아인씨도 도와주고. 그냥 노력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여기까지 왔다.

스티븐 연 /AFPBBNews=뉴스1 스티븐 연 /AFPBBNews=뉴스1


-연상엽이라는 한국어 이름이 쓰였다.

▶이 영화가 얼마나 깊이 들어가느냐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특히 '버닝'은 한국 이름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고 감독님도 그렇게 생각하셨다. 가금 한국에 오면 가족들이 연상엽이라고 이름을 부른다. 보통 많은 사람들이 나를 스티븐이라 생각하지만 그 이름이 유명해진 건 8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봉준호 감독이 캐스팅 과정에서 한 몫을 했다.

▶봉준호 감독이 영어로 문자를 보냈다. 정확한지는 모르겠지만 'Call me right now' 이런 내용이었다. 새벽 3시쯤이나 됐나. 이창동 감독님의 전화번호를 주셨다. 봉준호 감독님은 정확하고, 쓸데없는 말을 많이 안한다. 그냥 '이창동 감독님이니까 한국 갈 때 만나' 그러셨다. 정말 행운이었다. 당시 런던에 머물고 있었는데 마침 그러고 나서 한국으로 갈 계획이 있었다. 정말 우연의 일치다. 그런 우연이 우리 영화에서는 많이 생겼다.

-지난 기자회견에서 '버닝'을 찍으며 외로움에서 벗어나 용기를 얻었다고 한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가 용기를 준다고 생각을 했던 건 감독님이 네가 알아서 캐릭터를 해석하고 연기해 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감독님 촬영 방식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벤조차도 외롭다고 느낀다. 나 역시 외롭다고 느낀다. 왜냐면 나는 어느 곳에도 100% 소속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나를 캐스팅한 감독님은 정말 대단하다. 내게도 그런 면이 있다.

-벤과 자신의 공통점이 있었나.

▶내 직업 자체가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나는 외국인 이민자로서의 외로움이 있다. 그것 자체가 공통점이다. 나 연상엽이 벤과 100% 같을 수는 없지만 같아지려고 노력한다. 미묘한 성격의 차이점을 저와 맞춰나가면서 만들어갈 수 있는 좋은 조건을 만들어주셨던 것 같다.

-유아인과는 성격이 잘 맞고 통했다고 했는데.

▶왜냐면 그가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뛰어난 배우고 굉장히 지적이며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편안한 감정이 느껴졌다. 이게 모든 사람과 공유할 수 있는 감정은 아니지 않나. 그걸 봤을 때도 감독님이 탁월한 캐스팅을 하지 않았나 한다. 우리 같은 조각들이 잘 맞아들어가는 퍼즐 같은 느낌을 캐스팅에서부터 볼 수 있었다. 또한 외국인인 저를 그저 하나의 배우일 뿐이라고 느끼게 하고 저를 받아준 것도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다.

-마지막 질문이다. 레드카펫에서는 올라간 모두가 손을 잡고 올라가더라. 상영이 끝나고는 눈물을 흘렸는데.

▶레드카펫에서 손과 손을 잡은 것은. 영화를 만든 우리의 자연스러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5명의 우리가 함께 이 영화를 만들었다는 흥분이 있었다. 우리가 만든 프로젝트에 대한 자부심도 있고.

내 눈물은, 그 순간 여러가지 감정을 느꼈고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촬영 당시의 생각도 떠올랐다. 벤이라는 캐릭터를 연기하며 느낀 외로운 감정도 교차했다. 그래서 그렇게 되지 않았나 한다.

(인터뷰 말미 스티븐 연은 잠시 쉬었다가 언급하고 싶은 일이 있다고 말했다. 최근 그는 영화 '메이햄'을 연출한 조 린치 감독이 SNS에 올린 어린 시절 사진에 '좋아요'를 눌러 논란이 됐다. 사진 속 어린 조 린치 감독이 욱일기 문양의 옷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후 2차례에 걸쳐 사과문을 게재했다.)

▶영화 외적으로 벌어진 일에 대해서 언급하고 싶다. 그 일로 몰랐던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당황했고 정말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내가 더 잘 알았어야 했다. 내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저 죄송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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