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칸의 유아인 "'버닝' 종수와 긴 시간을 함께하고파"

영화 '버닝'은 이창동 감독이 그린 청춘의 이야기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던 3명의 젊은이가 엮인 미스터리다. 유아인은 그 중에서 뜻대로 되는 일이 하나 없는 남자 종수를 연기했다. 소설을 쓰고 싶지만 현실에선 재판 중인 아버지 탄원서를 쓰는 게 고작이고, 그녀를 만나고 싶지만 현실에선 그녀의 빈 방에서 스스로를 위로할 뿐이다. 유아인은 그 허망함을 분노를 꾹꾹 욱여넣어 한 걸음 한 걸음을 옮기며 종수를 만들었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버닝'에, 유아인의 종수에 많은 이들이 반했다. 뜨거운 찬사가 이어지고 있다.

영화제가 막바지에 이른 지난 18일, 칸의 맑은 바닷물이 반짝이는 해변가의 어느 테이블에서 유아인을 만났다. 그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유아인은 '버닝'에 반했다. '버닝'과 그 세계를 만들어낸 이창동 감독에 대한 애정과 찬탄이 한마디 한마디에 그득했다. 갈망했던 작업에 대한 만족감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긴장된 칸의 레드카펫에서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고, 기분좋은 칸의 호평에도 흥분하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고스란히 느껴졌다. 오랜만이었다.



-칸영화제에 직접 와 보니 어떤가. 얼떨떨한 것도 같다.

▶얼떨떨하다. 또 플래시가 터지고 하면 긴장이 된다. 예전에는 레드카펫이나 플래시 터지고 하는 순간들도 잘 즐기고 했는데 요새는 더 힘들어졌다. 종수로 살아서 그런가. 다른 어색함들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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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상받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건 케이트 블란쳇에게 물어보는 걸로. 저도 그들의 속내가 궁금하다. 좋은 평가들을 많이 해주시고 기분이 좋다. 이창동 감독님과 '버닝'의 좋은 순간이 만들어지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현재로서는 기분좋게 잘 즐기는 것이 중요하다.

-평점이 굉장히 높다. 역대 최고점도 나오고 하니 더 기대감이 높은 것 같다.

▶배우로서 기분이 좋다. 사실 저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른다. 감독님이 더 아실 것이고. 하지만 좋다.(웃음) 감독님 팬으로서 오랜만에 칸에 오셔서 좋은 평가를 받으시고 환대를 받으시고 하는 게 기분이 좋은 것 같다.

-이창동 감독에 대해 이야기하며 '세계의 신'이라는 표현까지 썼는데.

▶이 세계의 신이 아니고(웃음) '버닝'이란 세계의 신이다. 이전에도 그런 생각으로 했다. 우리는 작가의 세계, 그들이 창조하는 세계, 그 세계의 일부가 되는 일들을 한다. 그 세계를 표현하고 만들어내야 하는 순간이 있기에 감독님에 대한 의구심을 갖지 않고 신뢰해야 한다. 내 편의(?) 때문일 수도 있다. 유독 오래 기다려온 작업이고 꿈꿔온 작업이기 때문에 절대적인 믿음 안에서 움직여보자고 임했던 것 같다.

-이창동 감독과 '영혼의 단짝'이 됐다는 표현까지 들리더라.

▶저의 애정이다. 촬영하면서는 정말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창동 안에서 종수를 발견하기 위해서 많이 애썼고 발견하게 되기도 했다. 감독님이 가진 어떤 순수성에 크게 매료됐다. 카메라가 돌아가는 어떤 순간에는 세상의 모든 게 페이드아웃되고 이창동의 의식과 나의 움직이는 몸만 남아있느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었다. 재미있었다.

감독님이 저보다 딱 나이가 2배 많으시다. 거장이기도 하시지만 제가 만난 감독님 중에 가장 노장이기도 하시다. 나이듦의 아름다움이 있을 수 있구나 하며 지냈다. 왜냐면 진짜 열려 있으시다. 꼰대성이 1도 없다. 제가 아는 한.



-감정을 극도로 자제하면서 연기했다. 유아인 하면 떠올랐던 강렬하게 폭발하는 연기에서 벗어났다고 할까.

▶거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최근의 흥행작들, 저에게 어떤 순간들을 만들어준 작품들에서 극단의 감정을 표현하고 극단의 인간을 표현하고 그런 캐릭터로 사랑을 받았다. 저도 그렇게 느끼고 관객도 그렇게 느끼신다.

여러 요소가 균형감 있게 흘러가면서 배우에게 최소한의 표현을 허락하는 현장을 찾는 게 쉽지 않다. '최대한, 더 효과적으로, 더 많이'. 드라마 현장은 더더욱 그렇다. 정해진 쇼트 안에서 누가 더 파장을 일으키느냐의 싸움을 하는 현장이 많으니까. '더 기분이 좋아야지', '더 슬퍼야지' 이런 말을 자주 듣는다. 그걸 받아들이지 않으면 너무 힘들다.

'버닝'으로 외적 표현이 최대한 배제된, 내면의 울림을 주는, 제가 정말 하고싶었던 방식으로, 갈증을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표현의 양식을 가져가면서 해갈이 되는 기분이었다. 어떤 때가 벗겨지는 기분이었다. 실제로 때가 탔던 것 같다. 때묻지 않은, 이물감이 덜한 결정 같은 연기가 뭔지 생각할 틈도 없이 말이다.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그 순간에 매몰되고 흘러가는 순간도 있었던 것 같다. 또 다른 나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엔딩의 임팩트가 강했다.

▶제일 마지막에 찍었다. 그 순간을 향해서 가는 거니까. 제일 테이크를 적게 갔던 신이다. 그 순간 눈이 내리고, 하늘 빛도 그렇고, 그 모든 흐름 자체가 이 순간이 필연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닌가 할 정도였다. 진짜 추울 때 진짜 눈 맞으면서 찍었다.

우리 영화에 가짜가 하나도 없다. 다 진짜다. 실제로 담을 수 있는 것은 최대한 기다리고 최대한 접근해 실제로 담으려 했다. 하늘 공기 빛… 그런 것들인데 그런 것들을 실제 감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 수반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기다림이 정말 즐거웠다. 기다려야 할 것을 기다리니까 기다리지 않을 수가 없다.

-'버닝' 이후 유아인은 어떻게 달라질까.

▶모르겠다. 좋은 시나리오를 받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이전에는 정말 힘차게 달렸다면 지금은 정성스럽게 한 걸음 한 걸음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단순히 커리어를 관리한다는 명목이 아니다. 관객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더 흥미롭고 재미있는 순간을 다양하게 배우로서 보여드리고 표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땠든 '버닝'에서 유아인이라는 이미지를 굉장히 다양하게 깊숙이 펼쳤기에 조심스러워지는 것 같다. 이전에는 잔상을 지우려고 애를 썼다. 판타지를 깨고 그것을 넘나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극단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번에는 관객이 종수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갈 수 있게 시간을 두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달라진 몸의 움직임, 자세 또한 인상적이더라.

▶몸의 움직임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휘청이는 청춘을 내 몸의 움직임으로 보이고 싶었다. 중심이 없고 맥없는 인물을 표현하는 데도 몸의 움직임과 자세를 고민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시각적으로 멈춰있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나뭇가지처럼, 갈대처럼 움직이는 모습들을 너무 그리고 싶었다.

그 동안 똑바로 서 있고 하는 것이 너무 힘든 작품들이 있었다. 저는 '완득이' 캐릭터를 좋아하는데 연기의 톤에서라면 그 연장선상에서 버전을 해내고 싶었던 것 같다. 캐릭터의 성분이 비슷하다고 해도 그것이 표현되는 방식 자체가 영화적 특성에 따라 완전히 다르다. 이전에 제가 청춘들을 많이 표현했지만 그 내면을 깊이 들어가 표현하거나 청춘 자체에 시간을 할애하는 작품은 많이 없었다. 그저 청춘을 그렸을 뿐이다. 이번 작품이 정말 영광스럽고 반가웠던 것은 이런 순간을 기대하기 어려운 순간 껍데기가 아닌 내면을 포착하고자 하는 현장을 만났다는 것 자체다. 배우로서 가지기 힘든 영광이었던 것 같다.



-인지도 높고 대중성이 있는 스타로서 N포세대 같은 청춘의 애환에 공감했나.

▶주변 동생들 도움을 많이 받았다. 10대 때 일을 시작해 직업인으로 살았기에 취업난을 겪어보지는 않았지만, 청춘의 시기에 겪을 법한 감정의 문제들 등이 있었고 지금도 있다. 그러나 단순히 제 개인적인 경험에 기인해서 제 발자취를 따라가는 식으로 청춘을 표현하고 싶지는 않았다. 책임감을 가지고 동시대의 청춘을 표현하고 싶었다. 어느 때보다 제 동생뻘의 친구들과 대화를 많이 하고 마음을 열고 친해지는 과정이 있었다. 취재 아닌 취재를 했고 굉장히 깊숙이 다가갔다. 정말 그들의 시선, 그들의 마음에 접근하는 부분들이 크게 생겼다.

-종수는 마침내 소설을 쓴다. 어떤 소설을 쓴다고 생각했나.

▶어떤 내용을 쓰는지 그건 제 마음이다. '버닝'을 쓴다.(웃음) 벤을 쓰고 해미를 쓰고 종수를 쓴다느 생각으로 있었다. 그 순간의 종수가 종수가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너무 좋은 현장을 경험해서 다음엔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들겠다.

▶이 다음엔 다음의 제가 있겠죠. 그래도 이전보다는 좀 더 죄의식이 덜한 연기를 하기 위해서 애쓸 것 같다. '버닝' 이후에 힘들어지는 걸 느꼈다. 하지만 옳고 그름, 낫고 못함을 따질 수는 없는 것 같다. 저마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바가 있고 그에 얼마나 잘 반응하느냐가 중요하다.

-다음 계획은 있나?

▶버닝의 홀, 긴 터널에서 빠져나간 다음에 생각하고 싶다. 단순히 촬영을 떠나서 '버닝'과 종수와 함께 긴 시간을 함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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