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ULL인터뷰]유태오 in 칸 "꿈 같은 무대..韓에서도 사랑받고파"

칸(프랑스)=김현록 기자  |  2018.05.17 12:00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의 유태오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의 유태오 / 사진제공=엣나인필름


"이런 무대에서는 처음이니까, 치열한 경쟁 안에서 세계 언론이 주목해주니까. 너무 고맙고 뿌듯해요."

배우 유태오(37)은 제 71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탄생한 깜짝 스타다. 그는 경쟁부문 초청작인 러시아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영화 '레토'에서 주연을 맡아 프랑스 칸을 찾았다.

파독 광부 아버지와 간호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독일 교포인 유태오는 2000대1의 경쟁률을 뚫고서 고려인으로 옛 소련의 전설적 록가수로 사랑받은 가수 빅토르 최 역을 맡았고, 자연스럽게 캐릭터에 녹아나는 연기로 또한 주목을 받았다. 푸틴 정부에 반정부인사로 찍힌 감독 막바지 촬영을 앞두고 체포돼 아직까지도 가택 연금 상태. 그러나 그에 대한 응원이 힘이 됐는지 '레토'는 공개 이후 호평을 얻으며 유태오에 대한 관심 또한 부쩍 높아졌다. 칸 해변가에 위치한 한국 영화진흥위원회 부스에서 만난 그는 칸 영화제에 온 기분을 묻는 질문에 "너무 좋지요"라며 시원하게 웃었다.

"저는 15년 동안 무명 배우의 길을 밟고 있었잖아요. 이런 자리에서 주목을 받는다는 게 너무 좋아요. 시차 적응이 안 돼서 피곤하지만 그 피곤함도 좋고, 바쁜 것도 좋고, 집중받는 것도 좋고 유쾌해요. 칸은 꿈같은 자리잖아요. 운동선수로 치면 올림픽 무대고, 그것도 결승전에 진출한 셈인데 솔직히 실감이 안 나요."

빅토르 최를 연기할 20대 배우를 찾아달라는 요청에 '나는 어떠냐'며 셀카를 찍어보냈던 게 이 모든 일의 발단이었다. 1주일 만에 영상을 보내라는 답이 왔고, 1주일 뒤엔 모스크바행 티켓을 얻었다. 4시간이 걸린 첫 오디션. 유태오가 이야기한 건 빅토르 최에 빗댄 자신의 이야기였다.

"러시아에서 빅토르 최가 남성의 상징, 변화와 자유의 상징이만 앨범 가사를 해석해보면 시 같아요. 정체성의 혼란에서 오는 우울한 감수성이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말씀을 드렸더니 감독님께서 네 해석에 동의한다고 하시더라고요. 감독님은 모르시겠지만 사실은 제 모습을 설명한 거예요. 어렸을 때부터 정체성의 혼란, 떠돌아다니는 삶에 대한 우울, 나의 뿌리에 대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제 환경과 빅토르 최의 환경이 비슷했다는 건 운이었던 것 같아요, 또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의 스틸컷 / 사진제공=HYPE FILM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의 스틸컷 / 사진제공=HYPE FILM


비록 더빙이지만 고작 3주반 동안 러시아어를 공부하고 9곡의 노래를 마스터해야 했다. 2번째 촬영에서 450명 앞에 서서 노래를 불러야 했을 땐 미칠 것 같아 잠도 안 왔다. 하지만 '러시아의 박찬욱'이나 다름없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을 믿었기에 지금의 결과를 얻었다고 유태오는 말했다. 그런 감독이 촬영 종료를 1주일 앞두고 가택연금을 당했을 땐 '머리 달린 미친 닭'이 되어 날뛰는 기분이었단다.

"이전에 베트남 영화도 태국 영화도 찍었어요. 돌이켜보면 항상 가능성을 보고 갔다가 별 반응을 얻지 못하는 일이 많았고, 항상 김칫국물만 마시다가 힘들었던 것 같아요. 이제서야 집중받을 수 있는 좋은 역할을 맡았는데, 영화의 신들이 그 희망을 또 빼앗아가는구나 그런 생각이 드니까 정말 힘들었어요. 나는 무명 연기자로 살아야 하는 인생인가보다 하는 생각도 들고."

허나 포기하지 않은 스태프와 배우가 힘을 모은 끝에 영화는 결국 완성됐고, 유태오는 이렇게 칸에 왔다. '레토'는 칸은 물론이요 다음 달 러시아 개봉을 앞두고 벌써부터 반응이 심상치않다. 유태오가 이번 칸에서 촬영한 러시아 잡지 화보만 3건이다. 칸에서 만난 러시아 기자들은 그에게 다가와 '고맙다'는 말을 먼저 전했다고 한다. 유태오는 "다들 '니가 감히 우리 영웅을 건드려' 이런 느낌이 있었다. 많은 걱정들을 했다'고 하더라"며 "보고 나서는 잘 그려내줘서 고맙다, 우리 기억 속의 빅토르 최가 잠깐씩 보인다고 말씀을 해주셨다"고 흐뭇해 했다. 그에 고마워 하는 유태오와 러시아 기자들이 서로 '내가 더 고맙다'고 몇 번이나 이야기를 주고받았다는 후문이다.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의 유태오 /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제 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초청작 '레토'의 유태오 / 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오랜 무명시절을 견디며, 힘들 때마다 그의 곁을 지켜준 건 아내 니키 리다. '프로젝트' 시리즈로 알려진 미술 작가다. 2006년 뉴욕에서 만나 이듬해 결혼했으니 벌써 결혼 11년이 됐다. 유태오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 아내에게 미안해서 포기하지 못한 적도 있다"면서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저를 포기했을 때 아내가 제 곁에 있었고 저를 믿어줘서 고맙다"고 거듭 애정과 고마움을 표현했다.

'레토'는 유태오에게 또 하나의 전기가 될 게 분명해 보인다. 또 하나 분명한 건 이번 칸이 그를 발견하게 해 줬지만 유태오는 갑자기 나타난 배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2009년 '여배우들'로 데뷔해 국적을 가리지 않는 작품활동을 해 왔고, 2015년 '서울서칭'은 선댄스 영화제에 초청돼 주목받기도 했다. 글을 쓰고 곡도 쓰며 책도 내는 아티스트다. '레토'의 감독이 사진 한 장, 노래 한 곡에 유태오에게서 빅토르 최를 떠올린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유태오를 만나고 하늘이 준비된 자에게 기회를 준다는 옛 격언을 다시 곱씹었다. "한국에서 일하는 것이 저의 꿈"이라는 그의 바람은 곧 이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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