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호 감독이 밝힌 故최은희 "여왕적 카리스마, 숙명적 사랑"

김현록 기자  |  2018.04.17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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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최은희 영정 / 사진=공동취재단고 최은희 영정 / 사진=공동취재단


'별들의 고향' 이장호 감독이 지난 16일 타계한 원로배우 고 최은희를 추모했다.

17일 고인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을 찾은 이장호 감독은 고 최은희를 '최선생님'이라 부르며 "여왕적 카리스마의 소유자", "신상옥 감독의 숙명적 동반자"라고 회고했다.

'별들의 고향', '바람불어 좋은 날', '바보선언', '나그네는 길에서도 쉬지 않는다' 등으로 1970~1980년대를 주름잡았던 이장호 감독은 "1965년 연출부로 신필름에 입사했다. 당시 신필름은 월급 받는 사람만 200명이 되는, 충무로에서 가장 큰 영화사였다. 긍지를 갖고 있었다"고 말문을 열었다. 배우 최은희와 남편 신상옥 감독은 당시 신필름을 통해 여러 영화 작업을 함께하며 다양한 대표작을 선보였다.

이장호 감독 / 사진=스타뉴스이장호 감독 / 사진=스타뉴스


이장호 감독은 "최 선생님은 여왕적 카리스마가 있었다. 하지만 섬세하시다. 까다롭지만 자상하고, 특히 현장 연기자를 살피시며 여러 말씀을 해 주셨다. 여전히 선생님이란 칭호를 버리지 못한다"고 털어놓으며 "결혼할 때 특히 최 선생님이 주례를 해 주셨다. 당시로선 여성이 주례를 하셨으니 스포트라이트도 많이 받았다. 제가 유명하지 않은 시절 그런 시선을 대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저에게는 젊은 날 여러 의미가 있는 위치에 최 선생님이 계신다"고 말했다.

1962년생인 고 최은희는 1942년 연극무대에서 데뷔, 1947년 영화 '새로운 맹서'를 시작으로 무려 1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해 온 당대 최고의 여배우다. 고전적인 미모와 독보적 카리스마로 사랑받았다. 1967년 안양예술학교 교장을 역임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썼고, 영화 감독으로서 3편의 영화를 선보이기도 했다.

고 최은희는 1954년 신상옥 감독과 결혼, 신필름을 함께 이끌며 한국영화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1977년 이혼 후 1978년 1월 홍콩에서 북한 공작원에 납북됐고 그해 7월 신상옥 감독까지 납북되는 사건은 당대 큰 충격을 안겼다. 신상옥 감독과 북에서 재결합한 고인은 북한에서 영화를 선보이며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1986년 오스트리아 빈에 머물던 중 탈출에 성공,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하다 1999년 영구 귀국했다. 신상옥 감독은 2006년 4월 11일 80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이장호 감독은 고 최은희가 최근 몇 년간 투병하며 최근에는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을 받을 만큼 힘든 시간을 보내왔다며 "이렇게 떠나신 것이 안타깝지만 오랜 투병 소식을 들어왔기에 각오가 되어 있었다. 이렇게 떠나시는구나 싶다"고 고백했다.

고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 / 사진=\'연인과 독재자\' 스틸컷고 최은희와 신상옥 감독 / 사진='연인과 독재자' 스틸컷


이장호 감독은 이어 "저는 신상옥-최은희의 숙명적인 동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한때 이혼을 겪었지만 그것도 장애가 되지 않는, 정말 숙명적인 동반자였다고 생각한다. 사랑과 영화 사업 모든 부분에서 함께였다"고도 말했다. 이 감독은 "지난 11일이 신상옥 감독의 12주기였다. 당시 최선생님은 몸이 좋지 않아 참석하지 못하셨다"며 "그로부터 며칠 되지 않아 부음을 들으니 두 분은 죽음까지 깨뜨리지 못한 숙명적 동반관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재차 든다"고 생각에 잠겼다.

한편 고 최은희는 지난 16일 신장투석 중 별세했다. 신정균 감독을 비롯해 슬하에 1남2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19일 오전, 장지는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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