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경구가 아주 솔직하게 밝힌 뒷이야기

[2017 영화 결산 릴레이 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7.12.20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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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설경구/사진제공=씨제스 엔터테인먼트


올 한해 한국영화계는 다사다난했다.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스타뉴스는 그 중심에 섰던 영화인들을 릴레이로 만났다. 두 번째 주자는 배우 설경구다.

설경구에게 2017년은 롤러코스터였다. '불한당'으로 덜컥덜컥 올라갔다가 곧장 떨어졌다가 다시 불한당원으로 올라갔다가 '살인자의 기억법'으로 회오리를 돌았고, 결국 두 영화로 연말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다. 나이 오십에 '지천명아이돌'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곳곳에서 암약하는 불한당원들 덕"이라고 공을 돌렸다. 설경구와 2017년을 돌아봤다.

-'불한당'은 93만명 밖에 들지 않았는데 극장을 대관하며 수십번씩 반복관람하는 열혈팬들인 불한당원들 덕에 지천명아이돌이란 별명까지 얻었는데.

▶체감은 몇백만명은 든 것 같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올해가 정말 인생에서 잊지 못할 해일 것 같다.

-사실 요 몇 년 출연작들 흥행이 계속 안 좋았다. 그런 데서 오는 불안과 초조가 분명 있었을텐데.

▶그 이상이었다. 3년 사이에 아, 추락하는구나, 언젠가 내려오는 건 당연한데 이렇게 추락하고 싶지는 않았는데란 생각이 많았다. 잘 될 때는 그냥 해도 됐다. 그런데 몇 번 꺾이니깐 밸런스를 놓친 듯하고 평형감각을 잃어버린 듯 했다. 뭘 해도 안되는구나. 나이가 오십이라 어렸으면 젊은 혈기로 뭘 어떻게든 해볼텐데. 이런 생각을 할 때 들어온 게 '살인자의 기억법'이었다.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개고생하겠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한 번 부딪혀 보는 건가, 이런 생각으로 선택했다. 처절하게 했다. 어떻게 해야 될지 방법을 모르니깐 그냥 줄넘기를 했다. 새벽 1시에 자다가도 일어나서 줄넘기를 했다. 이렇게라도 해보자, 이렇게 학대라도 해보자. 그랬다.

-'불한당'은 어떻게 선택했나. 사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새로울 게 없었을텐데.

▶'불한당'은 그 뒤로 제안을 받았다. 잘 읽혔다. 그런데 '무간도' 같이 익숙한 이야기였다. 감독을 찾아봤다. 사진을 봤는데 희한하더라. 뭐지, 이건 똘아이가 아니면 천재일 것 같았다. 한 번 보자고 했다. 한때는 초조하니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급하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불한당'은 변성현 감독을 만났다. 술을 먹는데 어, 다르더라. 끼가 있더라. 다음날 하자고 했다.

-'살인자의 기억법'보다 '불한당'을 먼저 선보였다. 호평을 받고 막 개봉할 즈음에 변성현 감독의 SNS논란이 불거졌다. 그러면서 흥행에 직격탄을 맞았는데. 나중에 재평가됐지만, 말하자면 그렇게 선택한 영화가 또 다시 휘청거리게 된 경험을 하게 된 것 일 텐데.

▶나중에 밝혀졌지만 변성현 감독은 절대 일베가 아니다. 나도 사실 그때는 정신이 없었다. 다음날 무대인사였다. 변 감독은 자숙한다는 의미로 무대인사에 안 오기로 했다. 배우들끼리 웃지는 말자, 짧게 끝내자라고 이야기했다. 설마설마 했는데 예매가 빠지는 게 눈에 보이더라. 무대인사관에서 예매가 40장이 빠졌다.

원래 무대인사가 끝나면 영화가 망해도 밥은 먹고 헤어진다. 그런데 '불한당'은 그러면 안될 것 같더라. 사람이란 게 밥을 먹다가 웃을 수도 있는 게 아닌가. 혹시라도 밥 먹다가 웃는 모습이라도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더 말이 나올 것 같아서 그냥 헤어졌다. 허전해서 이창동 감독님에게 전화했다. 와라,라고 하시더라. 편의점에서 쓴 맥주를 마셨다. 드라마 촬영 중이던 (임)시완이에게 전화했다. 사람이란 게 안 좋은 일이 겹치면 움추려들기 마련이다. 시완이가 제가 가도 될까요?라고 하더라. 빨리 오라고 했다.

-'불한당'은 칸국제영화제에도 초청됐는데. 변성현 감독은 불참했다. 당시 출국할 때 공항에서 설경구가 사진기자들에게 90도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던 장면이 인상 깊던데.

▶그냥 출국하려 했는데 미안하더라. 모든 게. 그래서 나라도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칸국제영화제에서 엄청난 환호와 갈채를 받았는데.

▶마냥 좋았던 건 아닌데 괜히 좋은 척을 했다. 어떻게 하면 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고민했다. 마침 이번에 같이 칸에 초청된 '옥자'가 기립박수를 몇 분 받았다더라. 그래, 그러면 그걸 넘으면 사람들이 '불한당'에 관심을 좀 더 갖지 않을까 싶었다. 비행기에서 김희원에게 시나리오를 짜보라고 했다. 그런데 그런다고 뭐가 되나. 그러다가 문득 시간을 끌자고 생각했다. 두당 1분씩 커튼콜을 받으면 기립박수 시간이 길어지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한명씩 나가서 좌우로 위로 손을 흔들었다. 내가 나가고, 전혜진이 나가고, 김희원이 나가고, 임시완이 나가고. 같이 나가고. 나중에 티에리 프레모 칸집행위원장이 그만하고 밖으로 나가라고 하더라. 나가야 하나 싶었는데 기자들이 말리더라. 2층을 보라며. 2층을 보니 난간에서 떨어질 것처럼 매달려서 열렬하게 박수를 치는 관객들이 있더라. 그 광경을 보고 울 것 같아서 히익하고 숨을 쉬었다. 극장을 나가는 데 현지 관객들이 영화 잘 봤다며 '불한당' 티켓을 주더라. 영화를 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위축돼서 갔다가 위로를 받고 왔다. 누가 초를 쟀더니 기립박수 시간이 '옥자'보다 길었다더라.

-칸에 돌아온 뒤 극장에선 '불한당'이 내려오고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불한당원들이 재관람과 극장대관을 하기 시작했는데.

▶제작사 안은미 프로듀서가 불한당원들의 사진을 보여줬다. 그때만 해도 아무 생각 없이 이야, 이 정도면 전당대회를 해야겠다라고 했다. 마침 투자배급사인 CJ E&M에서 불한당원들과 함께 하는 대관 행사를 잡았다. 그런데 우연히도 같은 날 불한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잡은 대관 행사가 있었다. 그래서 양쪽에 다 가겠다고 했다.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환호를 받았다. 배우들이랑 제작진은 누구 탓을 하기보다는 다들 '불한당' 흥행에 아쉬워했다. 그런데 그런 환호를 받으니 왠지 영화가 안 망한 것 같았다.

-부인인 송윤아도 곁에서 '불한당'의 그런 롤로코스터 같은 희노애락을 같이 겪었을텐데.

▶우리 와이프도 불한당원이다. 내 영화라서 그런 게 아니다. '불한당'을 보고 난 뒤에 왜 또 보고 싶지, 이러더라. 내가 출연한 영화를 보고 그런 이야기를 한 건 처음이다. 처음엔 걱정되서 그런가 보다 싶었다. 그런데 아니다. 계속 생각이 난다는 거라. 아마도 다른 불한당원들도 그랬던 게 아닌가 싶다.
설경구/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설경구/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불한당'이 그렇게 지나고 힘든 마음속에서 처절하게 찍었던 '살인자의 기억법'을 선보였다. 그런데 기자시사회 기자회견에서 설현에게 백치미가 있다고 했다고 논란이 일었는데. 곧장 공개 사과했고. 사실 외부에 알려지진 않았지만 당시 인터뷰를 했을 때 다시 한 번 사과하고 그런 문제점들에 대한 이야기를 앞으로 주변에도 전하겠다고 했는데. 누구나 실수나 잘못은 한다. 사과도 하고. 그런데 그 뒤가 훨씬 중요한 법인데. 그런 마음을 먹고 실천한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인데. 더욱이 나이 오십에.

▶주변에서 미망인이나, 기왕이면 다홍치마란 표현을 쓰면 왜 그런 말은 하면 안되는 지 이야기하곤 한다. 책을 보고 많이 공부했다. 당시 많은 분들이 엄청나게 책을 보내주셨다. 편지도 많이 보내주셨고. 다 읽었다. 요즘도 틈틈이 읽고 있고. 세상이 바뀌면 거기에 맞춰야 한다. 모르고 했다면 알려고 하고, 알면 고치면 된다. 잘못했으면 사과하고 안 하려 노력하면 된다.

-결과적으로 '살인자의 기억법'은 265만명이 들어 흥행에 성공했다. 연기적으론 연말 시상식에 상을 받게 된데 큰 몫을 했고. 결과는 그랬지만 당시 논란이 일었을 때는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에 자책감까지 크게 들었을 법한데.

▶한숨도 못 잤다. 내가 뱉은 세음절이 영화를 만든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줄까봐. 밤을 새고 내가 반성문을 썼다. 솔직하게. 회사나 주위에선 좀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했지만 내 입이 실수한 것이니 내가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루라도 빨리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사실 '살인자의 기억법'도 개봉이 계속 미뤄졌던 작품이었는데. 그러니 나중에 찍은 '불한당'이 먼저 개봉한 것이고. 불안한 마음이 계속 있었을텐데.

▶계속 개봉이 미뤄지니깐 진짜 안되는구나, 계속 위축됐다. 진짜 열심히 했고, 진짜 나를 학대하면서 했는데, 그래도 안되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랬는데 그 모든 일들이 결과적으론 지천명아이돌이란 별명을 얻게 해줬고, 연말 시상식 남우주연상을 휩쓰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그야말로 드라마틱하게.

▶지천명아이돌. 사람이 귀가 익숙해지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마련인데 난 그렇지 않다. 갈팡질팡 오락가락 피폐해졌던 사람에게 갑자기 이런 반전이 생기다니. 2017년은 꿈에도 상상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

상은 솔직히 '오아시스'를 할 때는 어느 정도 받겠거니 예상은 했었다. 그리고 15년만이다. '불한당' 막바지에 농담처럼 변성현 감독에게 이 영화로 상을 받으면 뭘 받고 싶냐고 했다. 그랬더니 일초도 망설임 없이 남우주연상이라고 하더라. 에이, 웃기지 말라고 했다. 사실 변성현 감독은 '불한당'에서 내가 좀 다르게 연기를 하려 하면 "참아주세요"라면서 "저는 선배님 데리고 폼 잡을 거에요"라고 했다. 그러면서 턱 각도 하나하나까지 살폈다.

이런 결과는 솔직히 팬심이 다했다고 본다. 불한당원들이 다했다고 본다. 대종상 시상식에서 우리는 방송을 못 보니깐 참석자들 얼굴을 보여주는데 객석에서 "와"라는 함성이 나왔다. 나도 그렇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도 그렇고 다 조인성이 카메라에 잡혔구나라 생각했다. 그런데 인성이가 옆에서 불한당원들이라고 이야기해주더라.

다 불한당원들 덕이다. 사실 상반기에 상영된, 더구나 흥행이 안된 영화에 출연한 배우가 연말 시상식에서 상을 받기 힘들지 않나. 불한당원들 덕에 계속 영화가 이야기됐기 때문이다. 제작자에겐 미안하지만 '불한당'은 정말 다 준 영화다.
설경구/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설경구/사진제공=씨제스엔터테인먼트

-차기작이 '한공주' 이수진 감독의 '우상'인데. 한석규와 호흡을 맞추고 있고. 셋의 캐릭터를 생각해보면 현장 분위기가 저절로 상상이 되는데.

▶'불한당'을 같이 한 안은미 프로듀서가 '우상' 책(시나리오)을 줬다. 읽고 열흘 안에 답을 준다고 했다. 그런데 읽으면서 가슴이 벌렁벌렁하더라. 진정이 안되더라. 그 다음 날 바로 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책을 한줄 한줄 꼼꼼하게 다시 읽을게라고 했다.

-한석규는 자기 스타일대로 연기하는 편이고, 설경구는 감독에게 맞춰주는 편인데. 이수진 감독은 자기 고집이나 주관이 확실한 감독이고.

▶석규 형은 감독님에게 자기가 생각한 대로 해보겠다고 했고. 난 모르겠으니 (감독님에게)만들어달라고 했다. 서로 방식은 달라도 어차피 하나로 만나게 되는 지점이 있다. 그렇게 만들어가고 있고. 이런 방식은 작품마다 다른 것 같다. 난 이번에 완전히 내려놨다.

-롤러코스터 같았던 2017년 가장 기뻤던 순간과 가장 기뻤던 말은.

▶가장 기뻤던 건 칸 뤼미에르 극장에서 커튼콜 받았을 때. 오래오래 기억날 것 같다. 가장 기뻤던 말은 지천명아이돌.

-변성현 감독은 차기작 준비를 시작했던데. 이제 세상에 나오는가.

▶나랑 약속했다. (변성현 감독이)내년에는 불한당원들을 직접 만나서 감사드리는 것부터 시작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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