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주희정 "나는 눈치 많이 봤다.. 아들과 약속 못지켜 미안" (일문일답)

KBL센터=김동영 기자  |  2017.05.18 11:49
은퇴 기자회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주희정. /사진=KBL 제공 은퇴 기자회견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린 주희정. /사진=KBL 제공


서울 삼성 썬더스의 주희정(40)이 은퇴를 결정했다. 기자회견을 열고 소감을 남겼다. 좋은 지도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드러냈고, 선수로 더 뛰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드러냈고, 뜨거운 눈물도 흘렸다.

주희정은 고려대 중퇴 후 연습생 신분으로 1997년 원주 나래 블루버드에 입단해 데뷔했다. 1997-1998시즌부터 2016-2017시즌까지 총 20시즌 동안 KBL 정규시즌 1029경기를 출전했다. 20시즌 동안 정규시즌 기준 총 1044경기 중 단 15경기만을 결장했다.

경기 출전 기록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기록을 자랑한다. 정규리그 기준 최다 어시스트(5381개), 최다스틸(1505개), 국내선수 트리플 더블 최다기록(8회), 3점슛 성공 2위(1152개), 리바운드 5위(3439개), 득점 5위(8564점)에 올라 있다.

20시즌 동안 수상경력 또한 화려하고도 꾸준했다. 1997-1998시즌 KBL 첫 신인왕 수상을 시작으로 정규리그 MVP, 플레이오프 MVP, BEST 5 4회, 수비 5걸상 2회, 우수후보 선수상 1회, 모범선수상 2회를 수상했다.

특히 2008-2009시즌에는 KT&G(현 인삼공사)가 정규시즌 7위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음에도 정규시즌 MVP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08-2009시즌 주희정은 54경기 전경기 출전, 평균 38분37초를 뛰며 15.06득점 4.76리바운드 8.33어시스트(1위) 2.28스틸(1위)을 기록했다.

이런 주희정이 프로생활 20년을 마무리하고 은퇴를 선언했다. 주희정 스스로도 아쉬움이 적잖이 남는 모습이다. 그래도 좋은 지도자라는 목표를 세우고, 다시 나아가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아래는 주희정과의 일문일답.

-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 3가지를 꼽자면?

▶ 솔직히 프로 20년 동안 특별히 생각나는 경기는 없는 것 같다. 전부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갔던 것 같다. 그래도 거쳤던 팀들도 다 생각이 나고, 특히 삼성 시절에 통합우승을 했을 때가 나에게는 가장 잊을 수 없는 시절이었던 것 같다.

- 은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는지?

▶ 아직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것 같다. 당장이라도, 휴가가 끝난 다음에 훈련을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 조금씩 비우려고 준비하고 있다. 비워야 내 앞으로의 미래가 빨리 다가올 것이라 생각한다. 미래를 더 많이 생각하려 한다. 아직 잊지 못할 추억들이 있지만, 사로잡혀서는 안 될 것 같다. 앞으로의 내 모습을 그리면서 준비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선수와 일반인으로서의 생활에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지?

▶ 오래 프로생활을 하다보니, 매 시즌이 끝난 후가 똑같았다. 휴가 때는 집안의 가장으로서,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잠시 돌아갔다. 가장 생각나는 것은 정규리그가 끝난 다음, 우리 첫째 아이, 둘째 아이와 약속을 하나 한 것이 있다.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가장 가슴이 아프다. 1년만 더 선수생활을 하면 안 되겠냐고 물어보더라. 꼭 하겠다고 약속을 했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아들과 함께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주희정. /사진=KBL 제공 아들과 함께 은퇴 기자회견에 참석한 주희정. /사진=KBL 제공


- 일각에서는 '주희정도 내치는데, 삼성을 가겠느냐'는 말도 나온다. 후배들이나 구단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 우리는 프로다. 후배들도 실력으로 먼저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든다. 후배들은 눈치 보지 말고, 프로답게 실력으로 보여주고, 구단의 인정을 받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 여러 기록을 보유하고 있는데, 가장 애착이 가는 기록이 있다면?

▶ 정말 운이 좋아서 많은 기록들을 가지고 있다. 모두 다 나에게는 소중한 기록이고, 애착이 가는 기록이다. 특히 하나를 꼽으라면, 1000경기 출장을 이룬 것이다. 첫 번째로 애착이 가는 기록인 것 같다.

- 아내는 뭐라고 위로를 해줬는지? 가족들과 어떤 시간을 보내고 싶은지?

▶ 은퇴라고 해서 당장 변하는 것은 없다. 애들 학교 갈 때 데려다 주고, 학원 갈 때 데려다 주고 할 것이다. 평범한 가정의 아빠처럼 지낼 것 같다. 놀이터도 가고, 놀러도 가면서 지낼 것 같다.

아내로부터 '수고했다. 조금 쉬어도 될 사람이다'라는 말을 들었다. 대한민국 아빠들은 다 똑같은 것 같다. 한 아내의 남편으로, 아이들의 아빠로 어깨가 무거울 것이라 생각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당분간은 쉬면서 앞으로의 미래를 설계할 것이다. 지도자 공부도 해야 한다. 그 전까지는 아이들과 원없이 좋은 시간 보내고 싶다.

- 후배 선수들에게 충고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 나는 개인적으로 학창시절부터 정말 무식하게 훈련을 해왔다. 프로에 와서도 슛이 없는 반쪽짜리 선수라는 말을 들었는데, 주위에서 운동 그만하라고 말려도 끊임없이 노력했다. 노력을 하면 행운이 찾아올 것이라 믿었다. 무작정 열심히만 했던 것 같다.

요즘은 시대도 많이 변했고, 스킬 트레이닝을 통해 기량을 향상시킬 수 있는 여러가지 방법이 많다. 막무가내 노력하기보다는, 생각을 하면서 경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훈련을 했으면 한다.

자존심도 있겠지만, 다른 팀 선수가 잘하면 그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 수도 있어야 한다. 그렇게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후배들에게 조금 더 생각하면서, 실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될 것이다. 과거 좋은 선배님들이 많았지만, 더 훌륭한 후배님들이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본인이 그리고 있는 지도자상이 있는지?

▶ 첫 번째로는 지금 프로에 있는 명장들의 장점들만 닮고 싶다. 몇 년 전에 NBA 중계를 우연치 않게 본 적이 있다. 스티브 내쉬가 피닉스에 있을 때 감독이 마이크 댄토니 감독이었다. 상대 팀 공격 횟수가 40번이면, 피닉스는 70~80번이었다. 그것은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고, 내가 원하는 농구 스타일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도자로 돌아온다면, 댄토니 감독의 전술을 한국에 맞게 배워오고 싶다. 다이나믹하게, 재미있게 하는, 팬들이 즐거워하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그리고 선수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 이것이 가장 중요하다.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주희정. /사진=KBL 제공 은퇴 기자회견에 나선 주희정. /사진=KBL 제공


- 돌아가신 할머니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너무나 감사하다. 그 어려운 와중에, 지병이 심각하신 상황에서도 손자 하나 잘 키우기 위해 고생을 너무나 많이 하셨다. 효도다운 효도를 못해드린 것 같다. 죽을 때까지 가슴이 아플 것 같다. 할머니를 늘 생각한다. 매 경기마다 마음 속으로 할머니께 이기게 해달라고, 도와달라고 빌었다.

나는 할머니께 잘해드린 것이 없는 것 같은데, 내 이익만 생각하고, 이기고 싶은 마음에 그렇게 빌었다. 이 자리에 오니, 그 자체도 너무나 죄송한 마음이 든다. 늘 보고 싶다. 이제는 할머니 얼굴을 생각을 하면,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매일 보고 싶다. 매 경기 기도했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나중에라도 내가 못다한 것을 갚고 싶다. 사람은 언젠가는 하늘나라로 간다. 나중에 나이 들어서 할머니 곁으로 간다고 하면, 그때 정말 잘해드리고 싶은 마음 뿐이다.

- 선수로 뛰면서 이루지 못한 것이 있는지?

▶ 원없이 한 것 같다. 이제 목표가 새롭게 생겼다. 기록적인 면에서는, 트리플 더블을 10번 채우고 은퇴하겠다고 말했었는데 못 이뤘다. 사실 1000경기에 나갈 것이라는 꿈도 꾸지 못했다. 900경기에서 1000경기 목표를 달성하니, 이것을 넘어 NBA 선수들의 기록도 깨고 싶었다. 달성하지는 못했다. 아쉬움보다, 미련이 남는 것 같다.

- KBL이 계속 위기다. 남기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

▶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주신다면, 농구가 더 발전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선수들이 재미있는 경기를 하면서 팬들의 눈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그러면 한국 농구가 더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선수들도 발전할 것이라 생각한다.

이기는 것이 첫 번째지만, 이기기 위해서 개인적으로 훈련을 하고, 개인 기량을 향상시켰으면 한다. 그러면 개개인의 선수들 덕분에 팬들도 더 많아질 것이고, 재미있는 경기를 할 것 같다. 나아가 이기는 농구를 하면 팬들이 더 찾아올 것이다. 이를 통해 한국 농구가 위기에서 조금씩 벗어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 기억에 남는 선수, 호흡이 잘 맞았던 선수를 꼽는다면?

▶ 나래 시절 제이슨 윌리포드와 삼성에 있을 때 맥클래리, 안양 시절 챈들러, 얼마 되지 않았지만 라틀리프가 기억에 많이 남을 것 같다. 이 친구들과 재미있는 플레이를 했던 것 같다.

- 향후 구체적인 계획은?

▶ 아직 구단과 상의한 것이 없다. 차차 하나씩 준비해 나갈 것이다. 당분간은 아이들과 즐길 것이다. 막내 아들이 상당히 농구를 좋아한다. 챔프전이 끝나서 NBA를 집에서 계속 시청하고 있다. 아직 1학년이지만, 재미있게 농구를 할 생각이다.

아들이 지금도 농구선수가 꿈이라고 늘 이야기하고 조른다. 나는 굳건히 반대를 하고 있다. 아들에게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도 꿈이 변하지 않으면 키워주겠다고 했다. 아빠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 되고, NBA라는 큰 무대까지 진출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할 생각이다. 아들과 재미있게 농구하면서 여가생활 즐기려고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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