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전의 양상문, 뚝심만큼 빛났던 승부수들

잠실=한동훈 기자  |  2016.10.25 06:00
LG 양상문 감독. LG 양상문 감독.


무득점으로는 이길 수 없다. 하지만 무실점이면 지지 않는다. 역사에 남을 잔루 파티 속에서도 양상문 LG 감독은 냉정했다. 뚝심 속에 숨겨왔던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사실상 용병술만으로 이길 수 없는 경기를 잡아냈다.

잔루 만루 5차례, 잔루 19개. 그 흔한 폭투나 어정쩡한 내야 땅볼도 없었다. 그나마 잘 맞은 타구는 거짓말 같은 호수비에 걸렸다. 사사구 16개를 남발한 NC도 이길 자격은 없었지만 그 와중에 1점 밖에 못 낸 LG는 더더욱 대책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LG는 11이닝을 1실점으로 버텼다. 결국 1점을 먼저 낸 건 LG였다.

▲5회초 2사 만루 나성범 타석, 류제국 강행돌파

순항하던 류제국이 1-0으로 앞선 5회초 갑자기 흔들렸다. 2사 1루서 박민우, 이종욱에게 연달아 몸에 맞는 공을 줬다. 주무기인 커터를 몸쪽에 붙이려다 빠진 듯이 보였다. 투구수도 100개를 향해 가고 있었다. 힘이 떨어져 가는 상황에 심지어 다음 타자는 나성범. 누가 봐도 교체 타이밍이었고 어김 없이 강상수 투수코치가 마운드에 올라갔다. 하지만 강 코치는 류제국 정상호 배터리와 몇 마디를 나눈 채 그대로 내려갔다. 류제국은 2사 만루서 나성범을 2루 땅볼로 막은 뒤 6회에도 올라와 아웃카운트 2개를 책임졌다.

나성범이 플레이오프서 아무리 죽을 쑤고 있다지만 올 시즌 류제국에게는 8타수 5안타 2홈런으로 강했다. LG 불펜에는 진해수, 윤지웅, 봉중근 등 쌩쌩한 좌완이 대기 중이었다. 그럼에도 이날 나성범을 삼진, 뜬공 처리한 류제국을 믿었다. 이 순간에 좌완 불펜을 아꼈고 진해수는 7회에 나와서 두 타자, 봉중근은 9회에 나와서 한 타자를 잡았다. 5회부터 좌완 카드를 소진했다면 7회나 9회에 반드시 더 큰 위기를 겪었을 게 틀림없다.

구원 등판하는 소사. 구원 등판하는 소사.


▲3차전 승리를 부른 신의 한 수, 테임즈 타석에 소사

진해수의 다음 투수가 소사가 나왔다. 소사가 불펜의 문을 열고 나오자 잠실구장은 술렁였다. 1-1로 맞선 7회초 진해수가 1사 후 이종욱에게 안타를 맞긴 했지만 나성범을 삼진으로 잡아 별다른 위기상황은 아니었다. 하지만 2사 1루 테임즈 타석에 LG는 투수교체를 단행한다. 만에 하나 진해수가 테임즈를 막지 못했을 경우, 주자 2명을 두고 이호준을 상대했어야 하는데 이 씨앗을 애초에 뽑아버린 것이다. 소사는 테임즈에게 삼진을 빼앗아 가볍게 이닝을 마친 뒤 9회초 1사까지 버텼다.

양 감독은 3차전 승리 후 "테임즈가 2경기 밖에 하지 않아서 소사의 빠른 공에 타이밍이 늦을 것으로 봤다"고 밝혔다.

▲11회초 대수비 안익훈, 11회말 오지환 강공

11회까지의 투수 운용은 '장군'을 놓기 위한 밑그림이었다. 마무리 일격은 대수비 안익훈과 오지환의 강공으로 완성됐다.

11회초 중견수 대수비로 투입된 안익훈은 평생 자료화면으로 간직할만한 그림같은 수비로 LG를 구했다. 2사 1, 2루서 나성범의 싹쓸이 성 타구를 한낱 뜬공으로 둔갑시켰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던 마무리 임정우는 머리를 감싸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무겁게 가라앉았던 잠실야구장의 분위기는 한순간에 달아올랐다. 간신히 실점을 면한 LG였지만 마치 역전 적시타라도 때린 듯한 분위기였다. 양 감독은 경기 후 "결정적인 타구가 나올 것 같았다"며 투입 이유를 밝혔고 "오늘(24일) 경기의 히어로"라 칭찬했다.

안익훈. 안익훈.


여기까지는 '지키기'였다. LG의 공격은 10회까지 '빵점'이었다. 만루 기회가 무려 6차례였는데 1점밖에 내지 못했다. 사실 6번 중 5번은 2사 만루였고 8회 무사 만루에는 4번 타자 히메네스 타석이었다. 벤치가 개입할 여지는 없었다.

속만 썩던 벤치는 11회말 드디어 비장의 한 수를 뒀다. 단 1점이 필요했던 1-1로 맞선 11회말 무사 1루에서 번트를 지시하지 않았다. 8회말 무사 1, 2루 박용택에도 번트 사인을 냈던 LG 벤치는 11회말 무사 1루서 오지환에게 그냥 맡겼다.

오지환이 희생번트를 댔다면 1사 2루서 채은성, 황목치승, 정상호, 김용의로 이어지는 타순이었다. NC가 채은성을 거르고 1사 1, 2루를 만들어놓고 이들을 상대했다면 LG가 1점을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즉, 1사 1, 2루에서 대타를 쓸 바에 오지환을 믿는 쪽이 더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이다. 오지환은 중전안타로 벤치의 계산에 응답했고 무사 1, 2루를 만들었다. LG는 여기서 번트를 댔다. 황목치승 타석에 대타 양석환은 1사 1, 2루가 아닌 1사 2, 3루의 훨씬 편한 상황에 들어왔다. 그리고 1사 1, 2루였다면 유격수 땅볼이 됐을 타구로 LG는 3차전의 승리자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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