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80년대 청춘의 문신-문제적 인간, 마이클 잭슨

강태규   |  2009.06.26 17:20


그는 분명 문제적 인간이었다.

1980년대에 마이클 잭슨이 없었다면 그 문화적 공백은 무엇으로 대체되었을까? 이러한 거대 담론의 화두가 전혀 부담스럽지 않은 것도 오로지 그가 보여준 가공할 만한 음악적 행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80년대의 청춘들에게 마이클 잭슨의 상륙과 바이러스 포진처럼 확산된 그의 음악과 춤은 경악 그 자체였다. 그러한 충격의 중심에는 '우리는 언제 저렇게 할 수 있나'의 부러움과 체념이 동시에 존재했을 것이다.

1984년 마이클 잭슨이 발표한 '스릴러'(Thriller)의 음반을 들으며 우리는 귀를 의심했고, 그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현란한 춤의 기술이 더욱 돋보였던 건 역시 음악의 퀄러티였다. 당시 MTV로 공개된 '빌리진'의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탄성을 안으로 삼켜야만 했다.

타이트한 검은 정장 차림의 마이클 잭슨의 등장에 숨을 죽였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디자인한 그 어떤 영상물보다 더 유려하게 파고드는 그의 독보적인 무대는 '4분의 미학'이라는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모자를 벗어 던지는 그의 가녀린 손끝의 자태에 쓰러지고, 두 다리를 엇박자로 휘저으며 무대를 뒤로 가로지르는 '문워크 춤'을 보며 탄식을 자아냈다. 그리하여 우리는, 또 세계의 젊은이들은 그를 세기의 영웅으로 인정했다.

당시 학창시절이었던 지금의 30, 40대들에게 학교의 복도는 통행로이기 이전에 문워크 춤을 연습하는 곳이었으며, 마이클 잭슨의 춤을 보고 배우는 추억의 공간이었다.

최근, 가수 비가 미국에 진출했을 때 현란한 춤사위를 연출하며 화제가 됐다. 그러한 비의 평가 중에는 '마이클 잭슨의 아류 정도'라는 언론의 폄하 발언이 있었다. 그 만큼 마이클 잭슨의 독보적인 무대 연출은 20년이 지나도록 깨어지지 않는 신화를 우회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으로 마이클 잭슨의 영향력은 우리 가요계에서도 비켜설 수 없는 숙명 같은 단서이기도 하다.

지금의 10, 20대들에게 그는 성형중독, 아동성추행 스캔들에 연루된 추억의 스타로 기억되겠지만, 그는 여전히 세기의 팝 황제, 마이클 잭슨이다. 그가 세운 기록들을 열거하는 일은 숨 막히는 드라마다. 1963년 잭슨파이브의 리드보컬로 나선 것은 5살 때의 일이었다. 소울트레인에서 브레이크댄스를 선보인 잭슨은 전세계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17세 때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5년 뒤, 22세의 잭슨은 'Off The Wall' 음반으로 1000만 장의 경이적인 판매량을 달성한다. 이때부터 세계 음악 지형도의 변화를 예고했다. 1984년 발표한 '스릴러'(Thriller)의 음반은 오늘 이 시간까지 1억개가 넘는 음반이 팔려나고 있는 중이다. 37주간 빌보드 차트 1위. 1주일 만에 100만장이 팔려나가는 금자탑을 세우기도 했다.

지난 25일(현지시간) 그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80년대 청춘들에게 마이클 잭슨은 음악쇼의 대명사였으며 가장 정복하고 싶은 아티스트였다. 그가 어둠속에서 다시 조명을 받으며 현란한 무대를 보여주지 못해도 아쉬울 것이 하나도 없다. 그의 독보적 무대는 이미 우리의 마음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이정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는 세상과 작별하면서 팬들에게 선물을 남겼다. 100여편의 미발표곡. 80년대 청춘의 문신으로 남은 마이클 잭슨의 부활을 꿈꾼다. 그는 들어낼 수 없고, 잘라낼 수 없는 시대의 가교였다.

<강태규 대중문화평론가. 문화전문계간지 '쿨투라' 편집위원. www.writerk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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