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 현장] ⑥ MLB 구단들은 왜 매년 수십억씩 기부할까

피닉스·LA(미국)=한동훈 기자  |  2018.11.23 06:00
애리조나 피닉스의 어린이 병원을 방문한 아치 브래들리와 제이크 램. /사진=다이아몬드백스 제공 애리조나 피닉스의 어린이 병원을 방문한 아치 브래들리와 제이크 램. /사진=다이아몬드백스 제공
한국 프로스포츠, 나눔 활동의 나아갈 방향


국내외를 막론하고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들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필요성은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구단들이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운영되고 있기에 이런 요구는 더욱 강해지는 추세다. 프로 스포츠 구단과 선수의 사회 공헌 활동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다. '하면 더 좋은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 됐다.

프로 스포츠 역사가 상대적으로 짧은 국내 구단들도 이를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해외 명문 구단들과 비교하면 아직 질적, 양적 측면에서 갈 길이 먼 것이 사실이다. 스타뉴스는 미국·영국·독일·일본 등 스포츠 선진국들과 국내 구단의 사회 공헌 활동을 현장 취재해 한국 프로스포츠에서 나눔 활동의 나아갈 방향을 8회에 걸쳐 연재한다.

① '축구 중심' 독일·영국 구단, 사회 공헌도 '톱 클래스'

② '어린이·실업자에게 저녁 한 끼를' 스코틀랜드 셀틱의 창립 목적

③ 일본 감바 오사카, 지역 사회의 '해결사'

④ '아이 행복 우선' 일본 비셀 고베의 사회공헌

⑤ MLB '저연봉자' 최지만 "나눌 수 있을 때 나눠야죠"

⑥ MLB 구단들은 왜 매년 수십억씩 기부할까

오프시즌에도 계속되는 다이아몬드백스의 커뮤니티 프로그램. /사진=한동훈기자 오프시즌에도 계속되는 다이아몬드백스의 커뮤니티 프로그램. /사진=한동훈기자
애리조나, 사회 공헌은 빅리그 최상위권

사막의 방울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는 그야말로 불모지에서 맨손으로 오아시스를 일궈냈다.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늦게 창단한 다이아몬드백스는 올해 누적 기부액 6000만 달러(약 678억원)를 돌파했다. 애리조나에 연고를 둔 프로 구단 중 1위다. 다이아몬드백스가 1998년 출범한 어린 팀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더욱 놀랍다.

애리조나 피닉스에는 프로풋볼(NFL)과 농구(NBA), 아이스하키(NHL)까지 인기 스포츠가 모두 몰려 있다. 4대 스포츠를 모두 보유한 도시는 미국에서도 13개뿐이다. 여기서도 가장 역사가 짧은 다이아몬드백스가 사회공헌에 앞장서고 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작 20년이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내에서도 최상위권이다. 빅리그 30개 구단이 사회 공헌 활동에 쓰는 돈은 한 해 평균 150만 달러를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 다이아몬드백스는 연간 300만 달러를 지역 사회에 쏟아부었다. 평균보다 두 배를 웃돈다. 다이아몬드백스는 2016년에는 327만 달러(약 37억원)를 썼다. 그 해 기부액은 메이저리그 3위였다. 뉴욕 양키스, LA 다저스 등 빅마켓 구단들을 제쳤다.

커뮤니티 프로그램은 사실 재정적으로 보면 지출뿐이다. 사회에 환원한다는 좋은 의미이지만 그저 요식행위나 팬서비스 정도로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이아몬드백스가 이 부분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이아몬드백스의 지역사회활동 최고책임자 데비 카스탈도 부사장은 스타뉴스와 인터뷰에서 "리더가 되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그저 인기 구단, 혹은 야구를 잘 하는 팀이 아닌 지역 사회를 이끄는 하나의 브랜드로 우뚝 서길 바라는 것이다.

다이아몬드백스 파운데이션은 1997년 설립됐다. 야구단 창단보다 1년 빠르다. 구단 탄생 시점부터 이미 사회 환원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이야기다. 카스탈도 부사장의 말이 그저 나중에 갖다 붙인 미사여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2018년 현재는 무려 1130여 개에 이르는 세부 활동이 진행 중이다.

다이아몬드백스는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의 성공은 경기장 안에서의 승리뿐 아니라 지역 사회에 뿌리 내린 다이아몬드백스의 유산을 통해서도 확인 가능하다"고 소개한다. 단순히 야구단을 넘어 주민들과 함께 호흡하는 기업으로서 다이아몬드백스의 존재 가치를 강조한 것이다.

지역 경제 부활에 앞장

다이아몬드백스 파운데이션 중점 사업인 야구장 짓기 프로그램의 일환인 \'폴 골드슈미트\' 구장. /사진=다이아몬드백스 제공 다이아몬드백스 파운데이션 중점 사업인 야구장 짓기 프로그램의 일환인 '폴 골드슈미트' 구장. /사진=다이아몬드백스 제공
다이아몬드백스는 2008년 커뮤니티 프로그램의 중요성을 새삼 절감했다. 당시 애리조나주가 경제 위기 직격탄을 맞았다. 카스탈도 부사장은 2008년을 이렇게 회상한다.

"애리조나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우리 가족들이 어려움을 겪기 시작했다. 51%의 아이들이 기아에 빠졌다. 매일 밤 저녁을 먹지 못하는 가구가 무려 5만 호에 달했다. 작은 시골 마을은 이보다 더 심각했다."

"다이아몬드백스 경영진은 애리조나 전역의 이웃과 팬들을 돕는 최전선에 서기로 뜻을 모았다. 'D-backs Give Back'이라는 슬로건이 탄생했고 지역 사회를 위해 노력하는 우리의 노력을 상징했다. 우리는 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전국적으로 평판이 훌륭한 파트너들을 모았다. 직원과 선수, 파트너와 우리 팬들이 하나가 돼 극복했다. 이는 우리 조직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가치다."

받은 만큼 돌려준다는 수준의 의식으로는 결코 발휘할 수 없는 추진력이다. 다이아몬드백스는 리더 역할을 자청했다. 카스탈도 부사장은 또 이러한 책임감이 결코 경기력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믿었다. 그녀는 "가시적인 최종 목표는 물론 우승일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필드의 안과 밖에서 누구보다 팬을 존중하며 최고의 기업 문화를 선도하고, 시민 참여와 기금 마련에 앞장서는 우리의 성과 또한 성공으로 평가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헌신이 곧 우승을 불러올 것으로 믿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LA 에인절스, 미래 위한 교육 투자

에인절스 프런트 오피스 입구에 커뮤니티 프로그램 일정이 붙어 있다. /사진=한동훈기자 에인절스 프런트 오피스 입구에 커뮤니티 프로그램 일정이 붙어 있다. /사진=한동훈기자
LA 에인절스는 뒤늦게 나눔 행진에 동참한 구단 중 하나다. 2004년에야 에인절스 파운데이션을 차렸다. 다이아몬드백스보다도 늦고 지역 라이벌인 LA 다저스(다저스 파운데이션·1995년 설립)보다는 10년 가까이 뒤졌다. 하지만 초기부터 장학금을 적극적으로 운용, 벌써 8기 졸업생을 배출했다.

다이아몬드백스가 '나를 따르라'고 외치는 선봉장이라면 에인절스는 공 하나 뒤로 빠뜨리지 않으려는 포수다. 에인절스 사무실에서 만난 구단 지역 사회 담당자 아담 칼리는 "어느 정도 규모를 갖춘 조직이라면 당연히 갖는 책임감이 있다"며 "우리가 무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지 않는다. 어떻게 더 나눌 수 있느냐를 고민한다"고 밝혔다.

에인절스가 교육에 투자하는 이유는 미래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칼리는 "에인절스 장학금으로 공부한 학생들이 어른이 되고 하나 둘 사회에 진출해 애너하임을 넘어 캘리포니아 전역에 퍼지길 기대한다"면서 "나눔을 받고 또 이를 다시 나눌 사람들로 꽉 찼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국 프로스포츠를 향한 조언

다이아몬드백스와 에인절스의 전문가들은 한국 스포츠를 향한 조언도 잊지 않았다. 에인절스는 일종의 팁을 줬다. 선수들의 관심사를 공략하라고 귀띔했다. 에인절스의 또 다른 담당자 아담 셰츠고는 "기틀이 다져지지 않았을 때에는 동기부여가 가장 중요하다. 선수들이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구단이 도와줘야 한다. 앨버트 푸홀스의 경우는 딸이 다운증후군이다. 푸홀스는 아예 다운증후군 어린이를 돕는 재단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다이아몬드백스는 단순 명료한 원칙을 제시했다. 카스탈도 부사장은 "먼저 제일 큰 도움이 필요한 곳을 찾는다. 관련자만이 아니라 조직원 전부가 해결 방안을 공유한다. 그리고 과감하고 관대하게 접근하라"고 다이아몬드백스 파운데이션의 철학을 공개했다. 특히 "팬들은 우리가 항상 정의롭길 바란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참전용사의 날 행사.  /사진=다이아몬드백스 제공 참전용사의 날 행사. /사진=다이아몬드백스 제공
기금을 위한 재원 조달 노하우도 중요하다. MLB 사무국과 연계한 전국적인 행사가 대표적이다. 재키 로빈슨 데이, 어머니의 날, 참전 용사의 날 등에는 전 구단이 스페셜 유니폼을 제작해 입는다. 이 유니폼들을 경매로 팔아 그 돈을 다시 사회에 환원한다. KBO리그의 경우 국군의 날이나 어린이 날 등은 10개 구단 각개전투다. 규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이제 걸음마 단계인 우리 프로 스포츠의 '나눔'이 가야 할 길을 두 구단은 명확히 보여준다. 최단기간에 봉사왕으로 등극한 다이아몬드백스, 출발점이 그나마 우리와 가장 가까운 에인절스는 롤 모델로 가장 적합하다. 왜 받은 것을 나누어야 하는지, 이들이 말하는 근원적인 동기를 가만히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본 콘텐츠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제작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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