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 김의 MLB산책] 몰아닥친 오프시즌 한파..보라스, 떨고있나?

댄 김 재미 저널리스트  |  2018.01.23 08:21
스캇 보라스. /AFPBBNews=뉴스1 스캇 보라스. /AFPBBNews=뉴스1


지난 이십년 이상 MLB 오프시즌 스토브리그를 지배해온 슈퍼 에이전트 스콧 보라스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추운 겨울을 맞고 있다.

메이저리그 스프링 트레이닝 개막일이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왔지만 이번 오프시즌 꽁꽁 얼어붙은 프리에이전트(FA) 시장은 해빙의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있어 FA시장의 대어급 선수들을 독차지하다시피 한 보라스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보라스가 초조하거나 걱정하는 모습을 외부적으로 내비친 것은 아니지만 돌아가는 상황이 심상치 않아 아무리 보라스라도 이번엔 불안과 초조를 느끼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오프시즌에 FA시장에 나온 선수들 가운데 보라스의 고객은 제이크 아리에타, J.D. 마르티네스, 마이크 무스타카스, 그렉 홀랜드, 에릭 호즈머 등 총 19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1월 하순으로 접어든 현재 올해 보금자리를 찾은 선수는 콜로라도 로키스와 3년간 5천200만 달러에 계약한 구원투수 웨이드 데이비스 한 명 뿐이다. 이제 스프링 트레이닝 개막까지 채 4주도 남지 않은 사실을 감안하면 아무리 배짱 좋은 보라스라도 슬슬 마음이 급해지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사실 보라스의 고객들은 대부분 각 포지션에서 최고 대어들로 FA시장에서 영입경쟁의 대상이 됐을 선수들이기에 이번 겨울 같은 고전은 ‘이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번 겨울 스토브리그는 근래 그 어느 해와도 비교할 수 없는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아무리 FA시장을 지배해온 보라스라도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에릭 호스머. /AFPBBNews=뉴스1 에릭 호스머. /AFPBBNews=뉴스1


지난해 월드시리즈 종료 후 현재까지 FA시장에서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한 선수는 총 53명이다. 그런데 이중 2년 이상 다년계약을 얻은 선수는 35명에 불과했으며 나머지 18명은 1년 계약이었다. 4년 이상의 장기계약을 받아낸 선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카를로스 산타나가 필라델피아 필리스와 3년간 6천만 달러에 계약한 것이 이번 오프시즌 최고 계약이다.

특히 4년 이상 계약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말해주듯 모든 팀들이 장기계약을 내주는 것을 꺼려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필리스 역시 산타나와의 계약협상에서 기간을 3년으로 제한하는 대신 평균연봉을 올리는 방법으로 협상에 타결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보라스는 아직도 6~7년의 장기계약이 효과적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지만 이미 장기계약의 폐해를 체험한 구단들에겐 전혀 먹히지 않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럼에도 보라스는 아직까지는 자기가 관리하는 톱 FA스타들의 계약에서 종전과 같이 평균 5년 이상의 장기계약 요구를 고수하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문제는 팀들이 예년과는 달리 그런 요구에 쉽게 굴복하지 않고 있어 양측간에 누가 먼저 움찔하느냐는 ‘치킨게임’식 대치상태가 길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이번 FA 클래스 가운데 최고의 거포로 꼽히는 J.D. 마르티네스(30)다. 은퇴한 데이빗 오티스의 공백을 메우지 못해 고전했던 보스턴 레드삭스는 마르티네스의 파워가 절실하게 필요한 팀으로 FA시장이 열린 시점부터 마르티네스의 유력한 행선지로 꼽혀 왔다. 확인된 사실은 아니지만 보스턴이 마르티네스에게 5년간 1억2천500만 달러를 제시했다는 설과 총 규모 1억 달러 내외의 오퍼를 했다는 보도가 나온 바 있다.

문제는 이 정도 오퍼가 보라스의 눈높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이다. 마르티네스를 이번 FA 클래스 가운데 ‘킹콩’이라고 표현했던 보라스는 오프시즌 초반 마르티네스의 몸값으로 7년간 2억1천만 달러를 협상의 출발점을 제시한 바 있다. 그런데 정작 오퍼는 그 반 토막에서 시작됐으니 천하의 보라스가 선뜻 협상을 진행시킬 리 없다. 물밑대화는 이어가고 있지만 전혀 협상이 앞으로 나아가는 분위기가 아니다.

최상위 FA로 평가받는 J.D. 마르티네스. /AFPBBNews=뉴스1 최상위 FA로 평가받는 J.D. 마르티네스. /AFPBBNews=뉴스1


물론 보라스가 이런 상황을 만난 것은 처음이 아니다. 전혀 마켓이 있어 보이지 않는 선수를 가지고 협상을 질질 끌다가 끝내는 대박 계약을 터뜨린 것이 수차례 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지난 2012년 프린스 필더 계약이다. 필더의 높은 요구액과 수비적 핸디캡으로 대부분 팀들이 계약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자 보라스는 단장들을 건너뛰고 구단주들을 직접 공략하는 작전을 취했고 당시 83세로 죽기 전에 월드시리즈 우승을 갈망했던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구단주 마이크 일리치를 설득, 9년간 2억1천40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대박계약을 성사시켰다. 당시 필더가 계약서에 사인한 날짜는 그해 1월26일이었다. 당시 디트로이트의 간판 슬러거중 하나였던 빅터 마르티네스가 그해 1월 무릎부상으로 시즌 아웃된 것도 보라스를 도왔다.

그런 전례도 있기에 이번에는 극적인 막판 뒤집기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지만 현재 분위기론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우선 마르티네스의 마켓이 극히 한정돼 있고 무엇보다도 예전보다 훨씬 똑똑해진 MLB 구단들이 보라스의 작전에 쉽게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마르티네스가 갈만한 팀이 별로 없다는 것이 문제다. 마르티네스는 메이저리그에서 첫 손 꼽히는 슬러거지만 요구하는 몸값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 그의 시장을 제한하고 있다. 현재 메이저리그에서 2억달러는커녕 1억달러가 넘는 계약을 내줄 수 있는 구단은 한손으로 꼽을 정도인데 이 가운데 마르티네스 같은 거포가 절실하게 필요한 팀은 보스턴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정도밖에 없다. 그런데 샌프란시스코는 트레이드 시장에서 에반 롱고리아와 앤드루 맥커천을 영입하며 사실상 마르티네스 영입전에서 발을 뺀 상태다.

결국 이제 남은 팀은 보스턴 하나뿐이고 보스턴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보스턴은 1억달러 정도의 오퍼를 한 상태에서 계속 물밑대화를 이어가고 있으나 보라스의 요구수준과 타협할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마르티네스가 절실하게 필요한 것 사실이지만 필요이상의 액수를 지불할 필요는 없다는 자신감이 느껴진다. 아무리 보라스라도 자신의 카드 패가 완전히 읽혀진 상황에서 얼마나 힘을 쓸 수 있을지 의문이다.

제이크 아리에타. /AFPBBNews=뉴스1 제이크 아리에타. /AFPBBNews=뉴스1


지금 보라스의 선수들 상당수는 초반에 자신들이 깔아놓은 이런 트랩에 걸려 있다. 초기 협상과정에서 워낙 요구조건을 세게 불렀는데 이에 많은 팀들이 아예 영입전에서 발을 빼고 트레이드 시장 쪽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MLB닷컴에 따르면 마이크 무스타카스의 경우도 초반에 여러 팀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그의 요구조건을 듣고 나서 대부분 방향을 틀었다. 더구나 시즌 중반에 트레이드된 마르티네스와 달리 무스타카스는 캔자스시티의 퀄리파잉오퍼를 거부하고 FA로 나섰기에 그와 계약하는 팀은 요즘 가치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신인 상위 지명권을 잃게 되는 것이 더욱 그의 입지를 좁게 하고 있다.

결국 예년처럼 계속 고집을 부리다간 자칫하면 선수가 무계약 상태로 시즌 개막을 맞아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되는 비상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보라스가 쉽게 백기투항을 할 리는 없지만 올 겨울 FA 시장 상황이 결코 만만치 않다는데서 고민이 깊어질 전망이다. 특히 시간이 지날수록 팀보다는 선수들이 더 불리할 것은 분명해 과연 보라스가 이런 곤란한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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