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종의 추임새] '큰절·예우' 그리고 '한국말'이 이렇게 멋진 적 있었던가

김우종 기자  |  2018.01.23 06:00
정현이 경기 후 큰절하는 모습 /AFPBBNews=뉴스1 정현이 경기 후 큰절하는 모습 /AFPBBNews=뉴스1


'설마 일 내나' 1세트 초반만 해도 '설마', '설마' 했다. 1세트 초반, 정현은 무서운 기세로 앞서갔다. 그렇지만 '명불허전' 전 세계랭킹 1위 조코비치도 만만치 않았다. 6-6 타이브레이크 대접전. 타이브레이크 포인트 3-3 상황서 결국 정현이 내리 득점에 성공했다. 1세트 7-6 승리.

이어진 2세트에서도 정현과 조코비치는 마치 용과 호랑이가 뒤엉켜 싸우듯 힘차게 자웅을 겨뤘다. 이번에도 기세는 정현이 앞섰다. 한 고비를 넘기고, 또 다른 고비를 넘겼다. 결국 2세트도 정현이 가져갔다. 7-5 승리.

수세에 몰린 조코비치는 점차 전의를 상실하는 듯 보였다. 마치 과거 자신을 보는 듯한 정현이라는 젊은 호랑이의 기세에 천하의 조코비치도 고개를 떨어트렸다. 3세트 역시 6-6 동점으로 흐르며 타이브레이크로 돌입했다. 타이브레이크 점수 4-3으로 앞선 상황서는 정현의 환상적인 패싱샷이 조코비치의 코트 오른편을 관통했다. 그리고 6-3으로 앞선 상황서 조코비치의 범실이 나왔다. 경기 종료. 세트스코어 3-0 완승.

정현이 22일 호주 멜버른파크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펼쳐진 2018 호주 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3-0(7-6<4> 7-5 7-6<3>)으로 승리했다. 세계랭킹 58위가 한때 세계랭킹 1위이자 현재 세계랭킹 14위 조코비치를 물리친 대이변이었다.

시계를 되돌려 2016년 호주오픈 1차전. 당시 정현은 1회전에서 평소 동경했던 '우상' 조코비치를 만났다. 세계 최강 조코비치에게 정현은 적수가 되지 못했다. 세트 스코어 0-3 완패. 정현은 조코비치라는 단단한 벽을 실감한 채 다음을 기약했다.

그리고 마침내 이날 자신의 우상이었던 조코비치를, 그것도 세트 스코어 3-0으로 완벽하게 제압했다. 그래서였을까. 3-0 승리가 확정된 순간. 정현은 앞서 언제 포효했냐는 듯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네트 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이윽고 둘이 손을 맞잡았다. 한때 우상이었던 조코비치를 향한 예우였을까. 격한 세리머니는 없었다.

한국 테니스 사상 첫 4개 메이저 대회 8강 진출 쾌거였다. 정현은 조코비치와 인사를 나눈 뒤 플레이어 박스를 향해 걸어갔다. 무릎을 꿇은 정현은 가족과 관중들을 향해 넙죽 큰절을 했다.

그리고 하이라이트 순간이 찾아왔다. 장내 아나운서가 정현과 즉석으로 코트 인터뷰를 진행했다. 정현은 유창한 영어로 자신의 기분과 승리 소감을 침착하게 전달했다. 정현은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 기쁘다. 조코비치와 경기를 하게 돼 영광이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어릴 적 조코비치의 앵글샷을 따라하려고 했다. 그는 나의 우상이었다"고 감격한 뒤 "난 조코비치보다 어려서 2시간이나 더 경기할 준비도 돼 있었다"며 재치 있는 답변을 남기기도. 정현은 "꿈이 현실이 됐다"면서 "이제 충분히 잠을 잔 뒤 수요일에 열리는 8강전을 대비하겠다"고 각오를 남겼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장내 아나운서가 뜻밖의(?) 기회를 부여했다. '한국서 응원하고 있는 팬들에게 인사를 해 달라'는 제안이었다. 다른 나라 말이 아닌 한국 말로…. 순간 장내 여기저기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현은 예상 못한 듯 "한국말로?"라고 영어로 되물었다. "마이크를 가져가라"는 장내 아나운서의 멘트가 되돌아왔다. 정현이 웃으면서 마이크를 잡았다.

"일단…" 정현의 한국말이 로드레이버 아레나를 휘감았다. "지금 한국에서 실시간으로 보고 계신 팬 분들". 한국말이 계속 이어졌다. "늦은 시간까지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하고. 아직 경기 안 끝났으니까, 수요일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계속 응원해주세요. 감사합니다" 한국말로 인터뷰를 마치고 코트를 떠나는 그의 뒤를 향해 뜨거운 박수가 계속 쏟아졌다.

포효하는 정현 /AFPBBNews=뉴스1 포효하는 정현 /AFPBBNews=뉴스1


승자 정현을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는 조코비치(오른쪽) /AFPBBNews=뉴스1 승자 정현을 향해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는 조코비치(오른쪽) /AFPBBNews=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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