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젤 워싱턴과 할리우드의 흑인 배우들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  2018.01.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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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젤 워싱턴(Denzel Washington)이 '트레이닝 데이'(Training Day, 2001)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은 2002년 시상식에서는 시드니 포이티어(Sidney Poitier, 1964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가 명예 아카데미상을 받았다. IMDb에서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흑인배우로 포이티어와 워싱턴이 1, 2위로 나온다. 모건 프리먼이 그 뒤다.

줄리아 로버츠가 남우주연상 수상을 발표하고 이어 단상에 올라 온 워싱턴은 수상 소감을 말하기 전에 "하루 저녁에 새 두 마리네요"라고 한 다음에 "40년 동안 포이티어의 발자국을 따라다녔는데 같은 날 같은 상을 받았습니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는 포이티어를 바라보면서 "“앞으로도 항상 당신의 뒤를 따라갈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트로피를 높이 올려보였다. 배우로서 정상에 오른 순간 겸손하게 선배를 더 치켜세워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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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이티어도 나중에 한 인터뷰에서 그 순간이 매우 자랑스럽고 고마운 특별한 순간이었다고 회고했다. 흑인 배우로서 자신이 미처 닿지 못한 곳까지 워싱턴이 닿았고 바로 그 날 저녁 워싱턴이 포이티어 자신의 배우 인생을 멋지게 마무리해 주었다는 것이다. 믿음직하고 자기보다 나은, 그리고 자기를 여전히 우러러보면서 앞으로도 존경하겠다고 공언하는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주는 것 같은 그런 기분이었을 것이다.

워싱턴은 매우 이지적인 배우다. 독서량이 많다. 학교 때 언더우드라는 이름의 교사가 매일 뉴욕 타임즈를 꼭 읽으라고 가르쳤고 당시 24세였던 그 교사의 영향으로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의 작가)를 포함해서 무수히 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워싱턴은 오프라 윈프리 쇼에서 61세의 언더우드씨와 거의 40년 만에 감격의 재회를 한다. 옛 제자를 만난 스승은 가장 먼저 "우리는 자네가 너무 자랑스럽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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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레이닝 데이' 외에도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영광의 깃발'(Glory, 1989)이 있다. '말콤 X'(Malcolm X, 1992), '필라델피아'(Philadelphia, 1993) 도 다 수작이다. 혼자서 세상을 바로잡는 심판자 역할을 한다는 '더 이퀄라이저'(The Equalizer, 2014)와 전직 최정예 CIA 요원이 범죄자로 쫒긴다는 '세이프 하우스'(Safe House, 2012)도 재미있는 영화다.

개리 올드만과 함께 나온 '일라이'(The Book of Eli, 2010)에서는 지구 문명 멸망 후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성서(맹인용이다)를 회수하는 솔로 전사로 나온다. 최근작으로는 '펜스'(Fences, 2016)가 있다. 자신이 감독하고 주연했는데 아카데미 작품상,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94%다.

워싱턴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방문했을 때 투투 주교와 아침을 같이하고 넬슨 만델라 대통령과 점심을 같이 하기도 했다. 만델라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만델라를 집에 초대했는데 미처 초대를 받지 못한 이웃 실베스터 스탤론이 워싱턴의 집 대문 앞을 기웃거리는 것이 발견되어 대통령 경호원 한 사람이 "록키가 밖에 있는데요"라고 알렸고 그 때 워싱턴이 스탤론을 안으로 들어오게 했다는 일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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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드 걸 출신 할리 베리(Halle Berry)의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 무대는 눈물바다였다.

베리는 '몬스터 볼'(Monster’s Ball, 2001)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아직까지 유색인종 여배우로서는 유일한 주연상 수상자다. 베리는 수상 소감에서 "이 순간은 저 자신보다 훨씬 더 큰 순간입니다"라고 말하고 유명 흑인 여배우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 외에도 이름 없는 수많은 유색인종 여배우들.. 이제 문이 열렸고 기회가 옵니다"라고 울먹였다.

할리우드에서 흑인 배우들이 전반적으로 차별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국 사회 전반에서와 마찬가지다.

그러나 윌 스미스(Will Smith) 같은 경우는 예외다. 몸값이 가장 비싼 배우 중 한 사람이다. 뉴스위크지가 윌 스미스를 할리우드에서 가장 파워 있는 배우라고 평가한 적도 있다. 원래 래퍼였던 스미스는 11편의 영화가 연속으로 1억5000만 달러를 넘는 흥행을 한 유일한 배우다.

스미스는 무하마드 알리의 이야기 '알리'(Ali, 2001)와 진정한 아빠의 모습을 실제 아들과 함께 보여준 '행복을 찾아서'(The Pursuit of Happiness, 2006) 두 영화로 각각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진 해크만과 같이 나온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Enemy of the State, 1988)도 아주 재미있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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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가수 출신 제이미 폭스(Jamie Foxx)는 레이 찰스의 전기 영화 '레이'(Ray, 2004)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폭스도 상을 받고 시드니 포이티어에게 특별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디캐프리오, 사뮤엘 잭슨, 크리스토프 발츠와 함께 나온 '장고: 분노의 추적자'(Django Unchained, 2012)도 좋다. 폭스는 선조들이 고통을 당하고 죽임을 당했던 옛 농장에서 촬영을 하는 것이 심정적으로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폭스는 최근에 미담의 주인공이 되었다. 어느 날 저녁에 자기 집 앞에서 나는 소리에 밖으로 나간 폭스는 차 한 대가 전복되어 있고 안에 아직 사람이 타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운전자는 안전벨트에 묶여 빠져나오지를 못했다. 마침 뒤에 오던 차에 놀랍게도 가위가 있어서 벨트를 자르고 무사히 사람을 구해낸 것이다(나도 차 운전석 옆에 항상 가위를 둔다. 비상시는 물론이고 여러 모로 요긴하다).

포리스트 휘터커(Forest Whitaker)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모든 사람들을 서로 연결시켜주기 위해' 배우가 되었다고 한다. 모두가 힘을 합하고 연결되게 해서 새로운 현실을 창조하는 것이 목표다.

휘터커는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 역을 한 '라스트 킹'(The Last King of Scotland, 2006)으로 아카데미, 골든 글로브, 영국 아카데상 모두를 휩쓸었다. 최근작으로 '버틀러: 대통령의 집사'(The Butler, 2013)가 있다. 부인역을 한 오프라 윈프리와 같이 나왔다. 34년 동안 8명의 대통령을 위해 백악관에서 버틀러로 일했던 실제인물을 연기했다.

큐바 구딩(Cuba Gooding, Jr.)은 여기서 백악관 집사장으로 나왔는데 '제리 맥과이어'(Jerry Maguire, 1996)에서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FX가 제작한 10부작 미드 'OJ 심슨'(The People v. O.J. Simpson, 2016)에서 OJ 심슨역으로 좋은 연기를 펼쳤다.

2009년판 기네스 북은 사뮤엘 잭슨(Samuel Jackson)을 가장 흥행에 성공한 배우로 꼽았다. 당시 68편의 영화에서 약 8조원의 흥행실적을 올린 것으로 나온다. 잭슨은 현재까지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후보에 올랐던 '펄프 픽션'을 포함해서 약 10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한 매우 친숙한 이미지의 흑인배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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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은 아카데미상 시상식이 흑인들에 의해 보이코트 된 해였다. 2015년에 이어서 2016년에도 단 한 사람의 유색인도 수상 후보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윌 스미스, 스파이크 리가 보이코트에 앞장섰고 많은 배우들이 동참했다. 그러나 사회자로는 흑인 코미디언 크리스 록이 선정되었고 록은 사퇴 압력을 받았다. 록은 결국 사회자 역할을 수행했는데 자신이 사퇴한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도 없고 어차피 누군가는 대신 사회를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유머를 실어 설명했다.

"아카데미 역사 상 흑인 후보가 한 사람도 없었던 때는 많습니다. 이번이 처음이 아니죠. 그러면 왜 이번에는 항의를 하냐고요? 예전에는 현실세계에서 항의할 것이 많아 바빴기 때문이죠. 우리는 항상 폭행과 박해를 당했습니다. 그러느라고 바빴어요."

록은 유색인종이 모든 배역을 다 맡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기회를 많이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시상식 오프닝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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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사회를 한 엘렌 드제너러스는 오프닝에서 "오늘 여러 가지 일들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가능성은 '노예 12년'(12 Years a Slave, 2013)이 작품상을 받게 되는 것이죠. 두 번째 가능성은 여러분 모두 인종차별주의자가 되는 것입니다"라고 해서 모두를 흐뭇하게 했다. 브래드 피트도 제작자로 참여한 '노예 12년'은 작품상을 받았고 제작자 겸 감독인 스티브 맥퀸은 작품상을 받은 영화의 최초 흑인 제작자, 감독이 되었다.

우리도 사회에서의 차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한다. 그러나 미국사회에서 특히 할리우드에서 유색인종으로 일하는 데서 겪는 차별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백인들보다 몇 배 더 열심히 일하고 모든 어려움을 견뎌내야 한다. 그래서 덴젤 워싱턴은 차세대 흑인 배우들과 영화 지망생들에게 할리우드의 신예 흑인 감독 배리 젠킨스가 20편이 넘는 단편영화를 제작한 후에야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인 '문라이트'(Moonlight, 2016)를 만들 기회를 얻었다는 것을 언급하면서 "절대로 포기하지 마라. 쉬운 것은 어려운 것보다 앞으로 나아가는 데는 더 해롭다"(Never give up. Ease is a greater threat to progress than hardship.)라는 좋은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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