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언플의 정석 : 김광현과 오지환, 무엇이 달랐나

한동훈 기자  |  2019.11.27 19:56
김광현(왼쪽)-오지환. /사진=OSEN 김광현(왼쪽)-오지환. /사진=OSEN
'맹인모상(盲人摸象).'


시각장애인이 코끼리를 만지고는 서로 다르게 설명한다는 사자성어다. 상아를 만진 이는 코끼리가 무와 같다고 했고, 꼬리를 만진 사람은 코끼리가 동아줄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석가모니가 해탈에 이르기 직전의 깨달음을 소개한 '대반열반경'에 등장한다.

이는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도 적용된다. 정보와 진실에 직접 접근하기 어려운 독자들은 대부분의 소식을 언론을 통해 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디어는 여론전의 도구로 종종 활용된다. 이를 흔히 언론플레이, 줄여서 ‘언플’이라 부른다. 자신에게 유리한 내용과 상황을 선택하고 노출시켜 대중의 지지와 동조를 이끌어낸다.

최근 스토브리그에 돌입한 프로야구에서도 치열한 여론전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김광현(31)은 언플을 통해 목적을 이뤘다. 소속팀 SK의 해외진출 허락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메이저리그에 꼭 가고 싶다'는 취지의 언론 인터뷰를 진행했다.

김광현과 SK는 사실 프리미어12가 끝난 뒤 구체적인 논의을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김광현이 미디어를 이용해 선수를 쳤다. SK는 순식간에 쿨하지 못한, 선수 앞길을 막는 구단이라는 비난을 뒤집어 써야 했다. 이후에는 알려진 대로 SK가 메이저리그 도전을 허락했다.

반면 FA(프리에이전트) 협상을 벌이고 있는 오지환(29) 측은 소속팀 LG의 여론 선점으로 코너에 몰렸다. 차명석(50) LG 단장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하는 모양새다.

차 단장은 FA 시장이 열린 직후부터 미디어를 통해 “오지환이 꼭 남아줬으면 좋겠다, 오지환을 반드시 잡겠다”고 공언했다. 이후 현재 상황은 어떤가. 오지환 측이 과도한 요구를 하는 탓에 협상에 진전이 없다는 쪽으로 여론이 형성돼 있다.

사실 따지고 보면 두 사례에서 애당초 ‘갑(甲)’은 김광현과 LG 구단이라 볼 수 있었다. SK는 권한을 지니기는 했으나, 막무가내로 잔류를 결정했다면 얻을 게 하나도 없었다. 여론 역풍은 물론 크게 실망한 김광현이 2020시즌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조차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 LG도 오지환이 타 팀 이적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알고 있었다.

결국 칼자루는 김광현과 LG가 쥐고 있었지만, 그들은 '을(乙)' 포지션을 선점해 여론을 끌어들였다. 그리고 이에 힘입어 둘 모두 ‘갑’의 위치를 오히려 더욱 확고하게 지켜낼 수 있었다.

차명석 LG 단장.  /사진=OSEN 차명석 LG 단장. /사진=OSEN
특히 오지환의 경우 차명석 단장의 ‘50억 프레임’에 갇혀 손발이 묶인 셈이 됐다. 차 단장은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타 구단이 오지환을 데려가려면 50억원은 써야 할 것"이라 말했다.

이는 LG가 오지환에게 50억원을 제시하겠다는 뜻이 아니었다. 타 팀에서 오지환을 영입할 경우 보상금(오지환의 올 시즌 연봉 4억원의 최소 200%)을 내야 하므로, 8억원을 더 얹으면 50억원 정도는 되리라는 셈법에서 나온 숫자다. LG는 최대 40억원 정도를 염두에 두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는 뜻하지 않게 독자들 사이에서 '오지환이 최소 50억원을 원한다'는 프레임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설상가상으로 오지환 측의 6년 또는 최대 8년짜리 초대형 계약 요구설 등 선수가 너무 욕심을 부린다는 소문도 급격하게 확산돼 비난의 표적이 됐다. 그나마 초기에 오지환을 너무 섭섭하게 대우해선 안 된다던 LG의 팬덤조차 돌아설 지경이다.

이 과정에서 오지환 측은 방어에도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선수가 50억원을 요구하지 않았다”는 등의 해명은 없었다. 에이전트가 개인 SNS를 통해 계약 기간 6년을 제시했다고 알린 것이 전부였다. 그는 굳은살로 뒤덮인 손바닥 사진과 함께 감정에 호소했다. 프로답지 못한 대처였다.

상황이 반대였다면 어땠을까. 김광현과 LG가 코끼리의 ‘상아’를 보여주기 전에 SK와 오지환이 ‘꼬리’를 먼저 꺼냈다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아군이 많았을 것이다. SK는 에이스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먼저 나서서 대립각을 세우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이해된다. 아직 협상이 진행 중인 오지환 측은 어떤 반전 카드를 가지고 있을지 관심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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