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모이' 엄유나 감독 "유해진, 귀한 마음 있는 귀한 배우" [★FULL인터뷰]

전형화 기자  |  2019.01.08 14:43
\'말모이\'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말모이'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비디오가게를 하고 싶을 정도로 영화를 좋아했다. 동국대 영화전공으로 들어갔다. '국경의 남쪽' 연출부로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추격자'는 스크립터로 참여했다. 늘 시나리오를 썼지만 생각보다 더 어렵단 걸 깨달았다. 한예종 시나리오 전공으로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그러다가 '택시운전사' 제작사 더 램프 박은경 대표와 인연이 닿았다. 마침 박 대표는 '택시운전사' 시나리오를 쓸 수 있는 작가를 찾고 있었다. 그렇게 '택시운전사' 시나리오 작가로 다시 영화계로 돌아왔다. 그리고 더 램프에서 '말모이'로 영화감독을 시작하게 됐다. 엄유나 감독(40). 그가 연출한 '말모이'는 결이 '택시운전사'와 닮았다. 둘 다 실화를 바탕에 허구를 덧댔다. 사람들이 힘을 모아 뜻을 이루는 이야기다. 9일 개봉하는 '말모이'는 우리말과 글을 쓸 수 없었던 1940년대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일자무식인 남자와 조선어학회 대표가 같은 목표를 갖고 나아가는 이야기다. 엄유나 감독의 이야기를 들었다.

-'말모이'는 어떻게 하게 됐나.

▶원래 액션영화를 연출할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다. 잘 안 풀리고 있던 와중에 박은경 대표에게서 '말모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표가 '말모이'와 관련된 영화를 계획하고 있었다. 교과서에서 배운 지식 말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사전을 만들기 위해 함께 한 게 머리에 남더라. 그래서 하게 됐다.

-이 이야기를 쓰면서 어떤 점을 담으려 했나.

▶내가 감동 받은 게 수많은 사람들이 조선어사전을 편찬하는 데 참여했다는 점이다. 이 사람들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이름이 남는 것도 아니고 대가도 없는데. 일제시대에 위험한 일이기도 했는데.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그래서 그런 마음을 따라가는 이야기로 만들자고 했다. 캐릭터들도 마음이 표현될 수 있는 인물로 만들려 했다. 일자무식에 사전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람과 고군분투하는 사람이 힘을 모아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로 꾸리려 했다.

-'말모이'와 '택시운전사'는 영화틀이 닮았다. 실화가 바탕이고, 시대극이고, 특히 마지막으로 향하는 구조가 닮았다. 물론 이 소재를 택하는 순간, 그런 틀은 피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한데. 적합하기도 하고.

▶시대극을 다시 하게 되면서 과연 닮았다는 걸 피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피하려고도 고민했고. 그러다가 '말모이'는 '말모이'고, '택시운전사'는 '택시운전사'라고 생각하게 됐다. (닮았다는 지적을)의식해서 가야 할 길을 주저하지 말자고 생각했다. 크게 신경쓰지 말자고 마음 먹었다.

-유해진이 맡은 일자무식인 김판수와 윤계상이 맡은 조선어학회 대표 류정환 이름은 각각 어떻게 지었나. 유해진 딸 역 이름인 순희도 영화의 주요 동력 중 하나인데.

▶우리말의 풍부한 자음을 이름에 쓰고 싶었다. 역할에 잘 어울리는 한편 그 시대에 존재할 법 하고, 성격을 보여줄 수 있는 이름. 무수한 후보를 놓고 고민했다. 그러다가 판수가 떠올랐다. 판수란 이름이 그 인물과 딱 맞는 것 같았다. 류정환은 이름에 바를 정(正)자를 넣고 싶었다. 방정환 선생과 이름이 같다는 건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인물은 그 시대의 지식인이면서 정의로운 모습을 이름에 담고 싶었다.

순희는 일단 '영자' '순자' '미자'처럼 '자'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의도적으로 피했다. 실제로도 일본식인 '자'자 들어가는 여자 이름은 그 시대 직후에 많이 지어졌다. 그 시대의 사진을 많이 보면서 그 시대에 많이 쓰인 예쁜 우리말 이름을 생각하다가 순희라고 지었다.

-보통 감독들이 처음으로 상업영화 연출을 하게 되면 여러 기술적 능력을 다 보여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카메라 워킹이나 무빙 등을 비롯해 구도에 편집 등등. '말모이'는 그런 점에서 욕심이 안 보인다. 투박하게 만들었는데.

▶욕심을 내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제작진과 우리 영화는 화려한 백화점이 아니라 사람들이 복작거리는 재래시장 같은 영화라고 다짐했다. 인물의 감정과 사람이 먼저인 게 이 영화의 색깔이다. 다른 게 두드러지는 걸 경계했다. 엄유나란 이름보다 '말모이'가 더 중요했다.

-유해진도 그렇고 윤계상도 그렇고, 엄유나 감독이 영화와 닮은 뚝배기 같은 사람이라고 입을 모으던데.

▶과찬이다. 준비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이야기 자체가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만드는 것인 만큼 이 영화를 만들면서 서로가 최소한의 것들을 지키자고. 그게 배려라면 배려고, 예의라면 예의고, 이해라면 이해다. 그래야 혹여 실수가 있더라도 서로 불안해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 영화에선 사실 내가 제일 불안했다.

엄유나 감독(가운데)이 윤계상, 유해진 사이에서 웃고 있다/사진=\'말모이\' 스틸 엄유나 감독(가운데)이 윤계상, 유해진 사이에서 웃고 있다/사진='말모이' 스틸


-왜 유해진이었나. 유해진을 시나리오 쓰면서부터 김판수 역에 염두에 뒀다던데.

▶이름없는 사람들의 귀한 마음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배우가 누구일까 생각했다. '택시운전사'를 같이 하면서 유해진이 귀한 마음을 갖고 있는 귀한 배우라고 생각했다. 거기에 우리말을 맛깔스럽게 전할 수 있는 배우여야 했다. 말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배우. 유해진이었다.

-왜 윤계상이었나. 감정을 발산하는 역인 판수와 달리 감정을 눌러야 하는 정환 역은 상대적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역할인데.

▶'말모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우연히 윤계상과 관련된 기사를 봤다. 그의 출연작들이 적혀있었다. 정말 다양한 영화, 어려운 작품들을 해왔더라. 그가 살아온 길이 그 작품들에서 드러나더라. 배우 윤계상이 보였다. 내가 생각하는 류정환은 조선어사전을 만들려 고군분투해온 사람이었다. 윤계상의 길과 닮았다고 느꼈다. 윤계상은 데뷔 20년차인 배우다. 이제 첫 영화를 하는 내가 뭘 안다고 연기를 이야기할 순 없는 일이다. 감정을 누르는 역할이라 윤계상이 정말 고민이 많았다. 그저 난 류정환이 윤계상과 닮았다고 생각했기에 본인의 모습에서 찾아보자고 이야기했다. 윤계상은 멋있다. 류정환도 멋있는 역할이다. 윤계상은 매 순간 절박하게 연기했고 성실하고 누구에게나 친절하다. 그런 모습을 잘 담아냈다. 현장에서도 모두 윤계상을 대표님이라고 불렀다.

-유해진의 아들 김덕진 역할의 조현도는 어떻게 찾았나. 딸 순희 역의 박예나와 함께 영화에 큰 감정을 불어넣는 배우들인데.

▶조현도는 원래 다른 역할로 오디션을 봤다. 그런데 본인이 덕진이를 해보고 싶다고 먼저 제안을 하더라. 준비를 해온 걸 했는데 너무 잘 하더라. 원래는 중요한 역이라 경험이 많은 친구를 해야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유해진과 많이 닮은 친구도 있었고. 그런데 조현도가 반듯하고 건강한 게 역할과 잘 맞다고 생각했다. 순희 역의 박예나는 때 묻지 않은 배우였으면 했다. 오디션 클립들을 봤는데 예나를 보는 순간 영화 속 순희가 있었다. 영화 속에서 드러내는 순희의 모습은 다 본인의 매력이다.

\'말모이\'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말모이'를 연출한 엄유나 감독/사진=김창현 기자


-시대극의 볼거리 중 하나는 미술이다. 조선어학회 사무실이 '말모이'의 주요 공간인데. 어떻게 만들려 했나.

▶사람 냄새 나는 공간이었으면 했다. 그리고 조선어학회인 만큼 한국적인 느낌이 났으면 했고. 실제 조선어학회 사무실도 한옥이었다. 시대극이니 고증이 중요했지만 그러는 한편 다양한 고간, 다 공존되는 느낌이 나길 바랐다. 그래야 그 공간을 지키는 느낌이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분법적인 구도인데다 전형적인데. 시대극에 다양한 인물을 담으려면 전형적이어야 쉽게 관객이 따라갈 수 있는 법이긴 한데.

▶나는 전형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양하되 복잡하냐면 그건 아니다. 인물들이 복잡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인물들이 궁극적으로 다 함께 가야하는 이야기이기에 다양하되 복잡해선 안된다고 생각했다. 또 '말모이'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 않은 분들을 그리는 터라 아무래도 조심스런 부분도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조선어사전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어쩔 수 없이 민족주의를 자극하는데. 이 소재를 택하는 순간 피할 수 없는 부분이고.

▶'말모이'에선 사람과 사람의 만남, 그리고 참여가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영화가 강요하거나 앞서서 주장하면 안된다고 생각했다. 민족주의에 대한 부분은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말과 우리글을 지키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니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대사가 문어체 같은 부분이 있다. 정환의 대사, 판수의 편지 같은 부분에서.

▶일단 정환의 대사는 의도적으로 문법에 맞도록 만들었다. 조선어사전을 만드는 조선어학회 대표니깐. 판수의 편지는 까막눈에서 막 글을 배운 어르신들이 쓰는 첫 편지 같은 느낌을 주려 했다. 누구누구 보아라. 이런 식으로.

-차기작은. 원래 준비했던 액션영화를 하나.

▶전혀 결정된 게 없다. 액션영화는 시나리오를 쓰다가 말아서 아직 잘 모르겠다. 액션영화이지만 결국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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