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뮤지컬 '웃는남자', 블록버스터 뮤지컬 그 위용과 과제

김현록 기자  |  2018.08.03 14:00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를 대표하는 문구는 빅토르 위고의 원작소설 '웃는 남자'에서 따온 것이다. 기묘하게 찢긴 입 때문에 '웃는 남자'로 불린 젊은 광대의 이야기는 창작 뮤지컬로 새로 태어나 한국에서 초연 중이다. '마타하리'에 이어 2번째 대형 창작뮤지컬을 선보이는 EMK뮤지컬컴퍼니는 5년의 제작기간, 175억원의 제작비를 들여 호화로운 무대를 꾸몄다. 화려한 캐스팅과 아름다운 넘버, 시선을 사로잡는 무대에서는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위용이 제대로 느껴진다. 하지만 그에 가려진 아쉬움도 있다.

17세기 후반, 귀족들 사이에 기형 인물들이 등장하는 이른바 괴물쇼(freak show)가 유행했고, 콤프라치코스라는 범죄집단은 멀쩡한 어린이들을 납치해 기형으로 만들어 팔아넘기는 추악한 범죄를 저질렀다. 프랑스 작가 빅토르 위고는 1869년 원작 '웃는 남자'를 통해 이를 고발했다. 뮤지컬 '웃는 남자'의 주인공이 바로 그 피해자다.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그웬플렌(박효신 박강현 수호)은 콤프라치코스에 의해 입이 귀까지 찢어져 기묘한 웃는 표정을 지니게 된 남자다. 눈보라 속에 홀로 버려진 어린 그웬플랜은 얼어 죽은 여자의 품에 안겨 우는 아기를 발견하고 도움을 청한다. 떠돌이 약장수 우르수스(정성화 양준모)는 인간을 혐오하지만 찢긴 입의 그웬플렌과 눈먼 아기에게 데아(민경아 이수빈)라는 이름을 붙여 거둬 자식처럼 키운다. 시간이 흘러 우르수스는 둘의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앞세워 유랑극단을 열고, 늘 웃고있는 얼굴 덕에 그윈플렌은 유명한 광대가 된다. 한편 정략 결혼을 앞두고 짜릿한 일탈을 꿈꾸던 앤 여왕(이소유(이정화) 김나윤)의 이복동생 조시아나 공작부인(신영숙 정선아)은 그웬플렌에게 매료되고 만다. 생전 처음으로 조시아나의 구애를 받게 된 그웬플렌은 그만 마음이 흔들리고 우르수스와 데아는 그런 그웬플렌을 걱정한다. 그러던 중 감옥으로 끌려간 그웬플렌은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다.

화려한 배우군단과 압도적인 무대는 '웃는 남자'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다. 박효신 박강현과 함께 주인공 그웬플렌을 연기한 수호는 기대한 이상의 캐릭터 소화력을 보였다. 노래도 몰입력도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붙는 모습. 풋풋한 소년의 이미지를 바탕에 두고 능청스러운 광대이자, 그로테스크한 매력남, 아름다운 사랑의 주인공인 그웬플렌을 그려내며 매력을 드러냈다. 능청스러운 '츤데레' 우르수스가 된 정성화는 역시 이 방면의 1인자. 카리스마 넘치는 귀족부인 정선아 등도 연기력과 노래솜씨를 대번에 과시했다. 유랑극단 단원과 귀족집단을 오가는 앙상블도 흠잡을 데가 없다.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배트맨' 속 조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는 그웬플렌의 찢긴 입은 포스터와 가림막은 물론이고 무대 곳곳에서 재현되며 눈길을 사로잡는다. 폭풍우에 삼켜지는 배, 그웬플렌의 상처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가시덤불 터널, 겹겹의 곡선으로 만들어진 붉은 의회 등 손에 꼽기 어려울 만큼 인상적인 무대와 세트, 의상이 즐비하다. 바이올린 연주자를 직접 무대에 올린 아이디어도 기발하면서 효과적이다. 힘을 준 넘버들이 많지만 2막의 '눈물은 강물에'를 놓치지 마시길. 아름다운 선율에 따스한 정서가 더해진 고운 노래는 물론이요, 무대 위에서 직접 물을 튀겨가며 선보이는 디테일을 보면 틈새에 낀 곡에도 공을 아끼지 않은 블록버스터 뮤지컬의 힘을 새삼 실감할 수 있다.

원작의 방대한 서사를 세련된 비유와 압축으로 살려낸 화려한 무대, 아름다운 노래에 2시간이 훌쩍 흐른다. 다만 주제의식이기도 한 캐치프레이즈를 제대로 대변했는지에는 의문이 남는다. 팍팍한 요즘의 대한민국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한 "부자들의 낙원은 가난한 자들의 지옥으로 세워진 것이다"라는 메시지가 격정적 서사와 비극으로 드러나길 기대했지만, 흥청거리는 부자들의 낙원이 실감나는 반면 가난한 자들의 지옥은 뜻밖에 말랑하게 다가온다고 할까. 핵심 대사마저 정작 무대에선 그다지 강렬하지 않다. 때문에 지옥 같은 현실을 웃으며 버텨야 하는 웃는 남자의 비극적 아이러니는 물론 그 위에 꽃핀 아름다운 러브스토리에도 힘이 덜 실린다. 재연을 통해 어떻게 변모할지가 더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뮤지컬 '웃는 남자'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오는 8월 26일까지 월드프리미어로 공연한 후 9월 4일부터 10월 28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관객들과 다시 한 번 만난다.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뮤지컬 '웃는남자' / 사진제공=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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