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윤호의 MLB산책] 테임즈의 어마무시한 복귀..KBO서 뭘 배웠길래

장윤호 기자  |  2017.04.28 08:00
테임즈./AFPBBNews=뉴스1 테임즈./AFPBBNews=뉴스1


“난 매일 여기에 있을 것이다. 내겐 (도핑검사에 필요한) 피와 소변이 얼마든지 많이 있다” (“I’ll be here every day. I have lots of blood and urine”)

올 시즌 메이저리그 개막과 함께 혜성처럼 나타나 역대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에릭 테임즈(밀워키 브루어스)의 인터뷰 발언이 미국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적응에 실패한 뒤 지난 3년간 태평양 건너편 한국에 ‘유배’됐다가 돌아온 그가 배리 본즈와 비교될 만큼 눈부신 성적을 올리자 여기저기서 ‘약물 의혹’이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에 대한 그의 답변이다. 의혹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 반발하거나 억울해하는 대신 반대쪽 입장이었다면 자신도 의심을 했을 것이라면서 언제든지 도핑 테스트를 받겠다는 당당한 자세를 ‘내게 피와 소변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고 재치 있게 표현한 것이 큰 공감을 얻으며 그에 대한 호감을 증폭시키고 있다.

테임즈는 지난 3년간 한국프로야구(KBO)를 지배하는 동안 여러 차례 약물검사를 받았지만 한 번도 양성반응을 보인 적이 없었다. 또 메이저리그에 와서도 시범경기 때 한 번, 그리고 정규시즌 들어 벌써 두 번 이상 ‘무작위’ 검사의 대상이 됐다. (메이저리그는 노사협약에 따라 약물 검사 대상자가 ‘무작위’로 선정되기로 되어 있지만 테임즈가 시즌 개막 한 달도 안 돼 벌써 두 번이나 테스트를 받은 것이 무작위로 이뤄진 우연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 미국 무대에선 철저한 무명이었던 그가 한국에서 3년을 보내고 돌아온 뒤 갑자기 본즈나 베이브 루스급이 아니라면 상상하기도 힘든 ‘어마무시’한 스타트를 끊자 약물 사용에 대한 의심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테임즈 자신조차도 “난 사실 (4년 만에 메이저리그에 복귀한) 이번 시즌에 무슨 기록을 깨겠다던가 하는 목표는 전혀 없었다. 그냥 한국에서 배운 것은 살려서 내가 이곳에서 버틸 수 있는지를 알아보겠다는 생각뿐이었다”면서 “지금 같은 결과는 내 자신에게도 쇼킹한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약물사용을 의심하는 것을 이해한다”고 말한 뒤 원한다면 언제든지 도핑테스트에 응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겐 피와 소변이 얼마든지 있다”는 말로 표현한 것이다. 미 언론들은 그의 이 발언에 대해 ‘메이저리그 사상 최고의 인터뷰 코멘트’라는 찬사까지 보낼 정도다.

타석의 에릭 테임즈 /AFPBBNews=뉴스1 타석의 에릭 테임즈 /AFPBBNews=뉴스1


올해 테임즈의 출발은 역대 최고의 스타트 기록을 갈아치울 기세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밀워키가 23경기를 치른 가운데 테임즈는 홈런 11개를 때려 아직 3경기를 더 남겨놓고 이미 구단의 4월 최다홈런 신기록을 수립했다. 그가 때린 홈런 11개는 메이저리그 전체 1위일 뿐 아니라 보스턴 레드삭스 선수 전체가 시즌 첫 20경기에서 뽑아낸 홈런 합계와 같은 것이다. 그는 또 남은 3경기에서 홈런 3개를 더 보탤 수 있다면 지난 2006년 알버트 푸홀스와 2007년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세운 메이저리그 4월 최다홈런기록(14개)과 타이를 이루게 된다.

지난해 밀워키에서 41홈런을 때려 내셔널리그 홈런왕에 올랐으나 시즌 종료 후 방출된 크리스 카터처럼 ‘모 아니면 도’ 식으로 홈런만 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테임즈는 타격(0.370), 출루율(0.489), 타점(19), 득점(27), 안타(27), 볼넷(16), 장타율(0.904), OPS(1.395)에서 모조리 팀내 1위를 달리고 있고 메이저리그 전체에서도 이 모든 부문에서 최상위권에 올라있다. 올 시즌 타격 슬래시라인 0.432/0.553/0.824에 7홈런, 22타점이라는 눈부신 스타트를 끊은 워싱턴 내셔널스의 슈퍼스타 브라이스 하퍼조차 혜성처럼 나타난 테임즈에 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미 언론들은 지금 약물의 도움이 아니라면 어떻게 한때 메이저리그에서 실패했던 선수가 이처럼 어마어마한 ‘괴물타자’로 변신해 돌아왔는지 그 이유를 찾는데 열중하고 있다.

우선 전문가들은 테임즈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던 것처럼 난데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선수가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다. 테임즈는 남가주 LA 근교 말리부에 위치한 명문 페퍼다인 대학을 거쳐 지난 2008년 드래프트에서 토론토 블루제이스에 7라운드에 지명됐던 유망주였다. 당시 그를 발굴한 토론토의 스카우트 존 랄론드는 “그의 타격을 보는 순간 나는 내가 (장래의) 메이저리그 타자를 보고 있다고 확신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토론토의 J.P. 리시아디 단장에게 “그를 한 번 믿어보라”고 강력 추천했고 토론토는 그를 7라운드에서 뽑았다. 리시아디 단장은 “내가 비디오로 보기엔 테임즈가 유연성이 없어 보여 그(랄론드)에게 계속 ”테임즈에 대해 확신하느냐“고 물었는데 그 때마다 그는 ”그의 스윙을 봤다. 파워를 봤다“고 말하곤 했다고 밝혔다.

테임즈의 홈런 세리머니./AFPBBNews=뉴스1 테임즈의 홈런 세리머니./AFPBBNews=뉴스1


하지만 테임즈는 토론토에서 그 잠재력을 펼칠 기회를 얻지 못했다. 2011년과 2012년 총 141경기에 나섰으나 한 번도 주전급으론 오르지 못했고 결국 그는 2012년 7월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됐다가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거쳐 한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이후 3년간 NC 다이노스에서 타율 0.349에 124홈런, 382타점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올리며 KBO를 지배한 뒤 지난 오프시즌 밀워키와 3년 1,600만달러 계약을 맺고 빅리그에 복귀했다.

한국에서의 활약에 힘입어 빅리그에 재도전할 기회를 잡았고 이번엔 제대로 기회를 얻고 있다는 것이다. 리시아디 단장은 “너무나 많은 선수들이 타석에 나설 기회가 있으면 성공할 잠재력이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다”면서 “테임즈처럼 열심히 노력하고 인성도 뛰어난 선수에게 이런 결과가 온 것을 기뻐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그렇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하지만 단순히 기회를 얻었다는 것만으론 테임즈의 엄청난 급부상을 설명할 순 없다. 또 다른 큰 차이점은 그가 3년간 KBO에서 뛰면서 과거의 그와는 전혀 다른 타자로 진화해 돌아왔다는 사실이다.

토론토 시절 테임즈는 엄청난 파워를 지녔지만 타석에서 자제력 없이 과격하게 스윙을 하는 타자였다. 아무리 파워가 좋아도 아무 볼에나 방망이가 나가니 성적이 좋을 리 없었다. 하지만 3년간 KBO에서 뛴 경험은 그를 완전히 다른 타자로 변신시켰다. 메이저리그 투수들만큼 빠른 볼을 던지지는 못하지만 정교한 제구력과 함께 온갖 종류의 변화구를, 메이저리그 투수들과는 전혀 다른 패턴으로 뿌리는 KBO 투수들을 상대로 테임즈는 인내심과 함께 스트라이크에만 스윙을 하는 법을 배웠다. 토론토 시절 변화구를 파악하지 못해 무작정 방망이를 휘둘렀고 스트라이크존을 살짝 빠지는 유인구에 어김없이 스윙이 나왔던 그가 KBO를 거치면서 타석에서 대응하는 법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다.

팬그래프의 통계는 바로 이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테임즈가 지난 2011년과 2012년 토론토에서 뛸 때 그는 스트라이크존 밖으로 들어온 볼에 대해 각각 36.8%와 35.6%나 방망이를 휘둘렀다. 그런데 올해 그는 볼에 대한 스윙 비율이 19.8%에 불과하다. 스트라이크에만 배트를 내는 확률이 훨씬 높아진 것이다. 또 테임즈는 거의 60%의 타구를 끌어당기고 있는데 이는 토론토 시절 42%와 31%보다 훨씬 높아진 것이다. 더구나 그는 올해 90번의 타석에서 시속 96마일짜리 패스트볼에서 시속 72마일짜리 커브볼까지 다양한 구질과 구속의 공을 어려움 없이 때려내고 있고 많은 타구가 오른쪽으로 가긴 하지만 11개의 홈런 가운데 5개를 한복판이나 왼쪽으로 보내는 등 모든 필드 쪽으로 장타를 보내는 완전한 타자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모두 테임즈가 현재의 엄청난 페이스를 계속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예로 지난 2006년 시즌 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무명의 1루수 크리스 셸턴(당시 25세)를 들고 있다. 셸턴은 그해 개막전에서 홈런 2방을 친 것을 시작으로 10월 한 달 간 홈런 10개와 타격 슬래시라인 0.326/0.404/0.783의 맹타를 휘둘렀지만 그 후 페이스가 뚝 떨어져 7월말에 마이너로 강등됐고 다시는 메이저리그에서 레귤러 선수로 뛰지 못했다고 한다. 그들의 결론은 테임즈의 빠른 출발에 대해 너무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것이다. 그가 배리 본즈가 될 수도 있고, 크리스 셸턴이 될 수도 있지만 현실적으론 그 중간 어디쯤에 자리를 잡을 것이라는 것이다.

밀워키의 테임즈가 심상찮다./AFPBBNews=뉴스1 밀워키의 테임즈가 심상찮다./AFPBBNews=뉴스1


물론 메이저리그에 갓 올라와 잠깐 뜨거웠다가 금방 제자리를 찾아간 선수(셸턴)와 빅리그에서 실패를 경험한 뒤 KBO에서 완전히 다른 타자로 진화해 돌아온 테임즈를 비교하는 것은 지나친 느낌이다. 지금 테임즈의 타격을 보면 잠깐 반짝한 뒤 스러질 셸턴같은 선수는 전혀 아니다. 물론 그렇다고 시즌 77개의 홈런을 때리는 현재의 어마무시한 페이스를 끝까지 이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다. 과연 테임즈가 뜨거운 스타트에 버금가는 지속능력과 피니시를 보여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한국과의 인연으로 인해 많은 한국 팬들이 테임즈에 대해 뜨거운 응원을 보내고 있지만 메이저리그에서 제대로 된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마이너에서 맴돌고 있는 수많은 미국 선수들도 올해 테임즈를 지켜보면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고 그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테임즈의 성공으로 인해 미국 팬들은 물론 장차 테임즈의 발자취를 따라가길 원하는 미국의 다른 선수들에게 KBO리그가 계속 소개되고 있는 것도 우리로선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미 NC에서 뛸 때 사용됐던 테임즈의 홈런송은 유투브를 통해 미국팬들에게도 소개됐다. USA투데이는 “이 기가 막히게 귀에 쏙 들어오는 테임즈의 홈런송이 밀러파크에 울려 퍼질 날이 멀지 않았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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