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훈정 감독, '브이아이피' 논란에 답하다 (인터뷰, 스포有)

전형화 기자  |  2017.08.24 11:44
박훈정 감독/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박훈정 감독/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영화 '브아이아피' 반응이 뜨겁다. 호불호가 수박 쪼개지듯 갈리면서 SNS와 여러 영화 전문 사이트에서 논쟁이 뜨겁다.

'브이아이피'는 '신세계' '대호' 박훈정 감독의 신작. 북에서 넘어온 고위인사가 유력한 연쇄살인 용의자로 지목되면서 그를 잡으려는 경찰과 사건을 덮으려는 국정원 간의 갈등을 그린다.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이종석 등이 출연했다.

'브이아이피'는 지난 23일 올해 청소년관람불가 영화 오프닝 기록을 세우며, '택시운전사' '청년경찰'을 제치고 박스오피스 1위로 출발했다. 박훈정 감독의 신작에 호화 출연진에 대한 관심이 컸다. 하지만 살인 표현 수위, 여성 캐릭터 묘사 등을 놓고 여러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묘사가 불쾌하다는 반응과 박훈정 감독의 문제작이란 반응 등 극과 극으로 갈렸다.

박훈정 감독을 만났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대호' 끝나고 '브이아이피' '블루핼멧' '마녀', 이렇게 시나리오를 3편 썼다. 그 중에서 '브이아이피'를 차기작으로 선택한 이유는.

▶두 곳의 투자배급사가 3편을 모두 하겠다고 했다. '신세계' '대호' 등을 NEW와 계속 해서 이번에는 워너브라더스 코리아와 해봐야겠단 생각을 했다. NEW에서 나와 호흡을 맞췄던 친구가 워너로 이적한 것도 영향을 줬다.

3편 중 왜 '브이아이피'를 먼저 했냐면 '대호'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다. '대호'는 작업을 하면서 자꾸 내가 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긴 했지만 힘들었다. 버겁고. 그래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을 하자란 생각을 계속 했다. 그래서 '브이아이피'를 선택했다.

-시나리오에선 김명민이 맡은 열혈형사는 사투리를 진하게 쓰는 전형적이면서도 과한 캐릭터였다. 그런데 김명민이 맡으면서 톤이 다운됐다. 거의 모든 주요 인물들이 시나리오보다 과하지 않고 두드러지지 않게 만들었는데. 캐릭터 무비가 아니란 걸 강조한 느낌인데.

▶캐릭터 설정이 과하게 보이지 않았으면 했다. 영화 중심이 사건이지 캐릭터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배우들이 많은 걸 준비하면 최대한 빼자, 덜어내자고 했다. 사건에 휘말리면서 캐릭터들이 떠밀려 가는 듯한 느낌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반면 이종석이 맡은 북에서 넘어온 VIP는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좀 더 세심하게 가다듬은 것 같던데. 이종석이 어떻게 웃는지까지 매번 정확하게 디렉션을 했다던데.

▶이런 장르에 사이코패스가 참 많이 등장한다. 거의 다 캐릭터들이 비슷하다. 어떻게 다르게 보여야 할지 이 영화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고민이 많았다. 특히 이종석이 많았다. 연출부에선 이종석을 머리를 아예 짧게 만들자, 아니 오히려 더 길게 만들자, 이렇게 외모에 대한 고민까지 했다.

하지만 난 이종석 만큼은 고민이 안 됐다. 기존에 이종석이 보여준 그 이미지로 사이코패스를 연기하면, 그것 자체만으로도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부러 준비를 해오면 그렇게 하지 말라고 했다. 대신 톤 조정을 영화에 맞게 하려 했다.

-이유 같은 건 없는 그야말로 밑도 끝도 없는 사이코패스인데.

▶이종석에게 너는 충분히 다르게 보일 것이라고 했다. 왜냐면 다른 영화들 속 사이코패스와는 태생이 다르니깐. 상황도 성장배경도 태생도 다르다. 무슨 완전 범죄 같은 걸 준비하는 것도 아니다. 괴물로 태어났고, 배경이 그를 더욱 큰 괴물로 만들었으니깐. 그래서 이종석에게 "너는 그냥 그런 것"이라고 했다.

-건드릴 수 없는 사이코패스를 그리기 위해 북에서 온 고위인사란 설정을 가지고 왔나, 아니면 북에서 온 고위인사를 담는 과정에서 사이코패스란 설정을 넣었나. 전자냐, 후자냐에 따라 출발점이 다를 텐데.

▶시스템이 어찌할 수 없는 사이코패스를 그리고 싶었다. 여느 영화라면 사이코패스를 시스템에서 제거를 해야 한다. 그 과정을 그리고. 그런데 '브이아이피'는 그렇지 못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귀순자를 전제조건으로 한 것이다. 고위 귀순자가 기획귀순을 한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연쇄살인범이라면, 각 권력기관들이 각자의 이권에 따라 충돌이 벌어지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보니 여느 연쇄살인범이 등장하는 영화와 달리 대리 만족의 서사가 없다. 통쾌함도 없고 마지막까지 답답한 느낌이 계속되는데. 결국은 남과 북, 어느 쪽도 시스템으론 범죄자를 처단하지 못한다는 건데.

▶결말을 통쾌하다고 보는 분들도 있고 답답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다. 둘 다 맞다고 생각한다. 남과 북의 시스템이 무너지고 제 기능을 못한다. 마지막에 뭔가 하려 해도 이미 너무 늦었다. 뭔가를 하려는 이도 결국은 시스템을 마비시킨 주역이니깐. 통쾌함이 덜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마지막에 그의 얼굴을 통해 피곤하고 지치고 회한이 담긴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이종석과 박훈정 감독/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이종석과 박훈정 감독/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살인 수법의 수위, 여성 캐릭터의 묘사 등이 영화에 짙게 불쾌함을 드린다. 초반에 등장하는 이 불쾌함이 영화 전반에 깔리는데. 꼭 그렇게까지 했어야 했나.

▶사실 표현수위는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영화 전체를 놓고 볼 때 이종석이 하는 행동이 악마적이란 걸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걸 빼면 이야기를 끌고 가는 동력이 약해질 것이라 생각했다. 편집 과정에서 그런 장면을 빼기도 했다. 그랬더니 그냥 철부지 망나니로 보이더라. 영화 전체를 밀고 나가는 에너지가 약해지더라. 그래서 연출적으로 그 장면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그 장면을 어떻게 관객이 받아들일지에 대해 고민했다. 불편할 것이라 생각했다. 특히 여성관객은. 그런데 이 정도 일지는 몰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의 반응이다.

-그런 부분을 받아들인다면 '브이아이피'를 따라가며 톤앤매너에 동의하게 되지만 받아들이지 못하면 자칫 불쾌함만 남을 수 있는데.

▶반응은 다 다를 수 밖에 없다. 다만 이런 생각은 했다. '신세계'를 만들 때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반응 중 하나가 조선족에 대한 묘사였다. 조선족을 그리 묘사한 데 대해 외국인 노동자 혐오를 드러낸 게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래서 영화에서 사회적인 약자를 묘사할 때는 더 조심하고 신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브이아이피'를 할 때도 일단 성별로 볼 때 내가 피해자들과 같은 성별이 아니기에 더 고민하려 했다. 그럼에도 이런 장르 영화에서, 더욱이 범죄자가 이미 잡힌 상황에서, 영화에 긴장을 더하려면 그런 장면이 연출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표현의 수위와 불쾌하다거나 배려가 없다는 그런 반응들에 대해선 당연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처음부터 고민과 염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범죄영화를 만들 때 영화적인 리얼리티에 제한을 둬야 할지는 고민이 계속 된다. 여성 캐릭터에 대한 묘사는 앞으로도 계속 공부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전작들에서도 여성 캐릭터를 남성 캐릭터에 비해 입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다.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한 것 같다.

-이종석이 마지막 즈음에 다시 경찰에 체포될 때 스너프 필름을 보여준다. 클로즈업을 선호하는 박훈정 감독이 일부러 그 장면은 거리를 뒀다. 그럼에도 초반의 잔상이 있기에 불쾌함이 이어지는 요소이기도 한데.

▶그 장면은 이종석을 둘러싼 사람들의 반응을 보여주고 그 다음에 그걸 보는 이종석의 얼굴을 확인하는 게 목적이었다. 경찰, 국정원, CIA 등 여러 권력기관들이 범죄의 현장을 목도하고 난 뒤의 반응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드러나는 범죄자의 민낯을 보여주려 했다. 그래서 그런 반응들이 드러내게 하는 장치를 둔 것이다. 그럼에도 최소화해서 가급적이면 리액션들로만 보여주려 했다.

-이종석과 일당들이 악행을 저지를 때 다 벗고 있는데 이종석만 끝까지 벗기지 않은 이유는.

▶이종석 엉덩이가 나오면 더 흥행이 될 것이란 소리가 있긴 했다. 그런데 영화와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신분상으로도 아랫것들과 같이 벗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이종석이 마지막에 김명민이 이야기하는 어떤 것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니깐.

-'브이아이피'와 '신세계'를 많이 비교하곤 한다. 박훈정 감독의 대표작이자 범죄

영화라 당연한 것이긴 하다. 그런데 '신세계'는 캐릭터 무비인 반면 '브이아이피'는 사건이 중심이다. '신세계'는 인물들의 위기로 긴장감을 몰고 간 반면 '브이아이피'는 힘의 우위가 뚜렷한 조직 간의 힘겨루기라 긴장의 밀도가 다를 수 밖에 없는데. 사실 '브이아이피'는 처음부터 긴장의 밀도를 높이기가 쉽지 않은 영화이기도 하다. 범인은 이미 잡혔고. 그 범인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중심인 영화니깐.

▶맞다. '신세계'는 캐릭터들의 위기가 있었던 반면 '브이아이피'는 그게 없다. 각 인물들이 힘 있는 조직들을 대변하니깐. '브이아이피'는 범인도, 범행도, 전부 공개하고 시작한다. 그래서 영화의 밀도를 이 범인을 어떻게 처리할까, 누가 그 범인을 손에 넣게 될까, 이 힘겨루기는 어떻게 될까, 이런 고민들로 밀고 가려 했다. 경찰과 국정원, 두 조직은 분명히 힘의 우위가 있다. 그래서 두 조직의 알력에선 무게추가 한쪽으로 내려간다. 그런데 제3의 조직이 개입해 나중에 두 조직의 균형이 대등하게 된다. 그러다가 두 조직이 다 감당할 수 없는 큰 힘을 가진 또 다른 조직이 등장한다. 이렇게 철저하게 힘을 갖고 있는 조직들의 알력으로 긴장의 밀도를 높이려 했다.

-그런데 국정원 요원으로 등장하는 장동건을 찌든 직장인처럼 묘사했다. 그래서 국정원이 힘으로 찍어누르는 게 아니라 중간에서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인물로 그렸다. 온도를 더 끌어올릴 수도 있었을텐데.

▶아마도 실제 국정원 직원 대다수가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럴 뿐더러 이 기획귀순은 국정원 주류가 저지른 게 아니다. 장동건과 박성웅, 국정원의 곁가지가 저지르는 일이다. 그래서 국정원으로선 회사가 책임지는 게 아니라 곁가지들이 조용히 처리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해야 힘의 우위가 분명한 국정원이 경찰을 위에서 찍어내리는 구도가 아니게 된다. 꼴통인 경찰이 등장하는 것도 그런 긴장감을 반대로 더하는 것이고.

또 권력을 한껏 부리는 여느 국정원 요원처럼 장동건을 묘사했다면 너무 전형적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보여지길 바랐다. 위와 아래에서 모두 스트레스를 받는 인물. 본인의 잘못으로 인한 딜레마로 고민하는 인물. 원죄를 갖고 있는 인물로 그리려 했다.

박훈정 감독과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박훈정 감독과 장동건, 김명민, 이종석/사진제공=워너브라더스 코리아


-프롤로그, 용의자, 공방, 북에서 온 귀빈 VIP, 에필로그 등 5개의 챕터로 나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인물들의 챕터까지 포함해 9개였다. 현재 버전은 인물들로 챕터를 나누지 않고 사건으로 챕터를 나눴다. 이런 플롯 구성이 여느 영화들과 사뭇 다른데.

▶그렇다. 챕터를 나눈 걸 불편하게 여기는 분들도 있는 것 같다. 보통 챕터를 나누는 영화일 경우 챕터마다 시점이 바뀐다. 그런데 '브이아이피'는 사건이 바뀔 때 챕터를 나눴다. 원래는 이야기한 것처럼 인물들의 시점을 포함해서 9개 챕터였다. 그렇게 편집을 했더니 러닝타임이 처음에는 2시간 55분이 나오더라. 챕터를 그대로 살리면서 편집을 다시 해도 2시간 30분이 나왔다.

그래서 어차피 '브이아이피'는 캐릭터 무비가 아니라 사건 중심인 영화니 사건별로 편집을 하자고 결정했다.

-전작들에 비해 클로즈업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인물 중심이 아니라 사건 중심이기 때문인가.

▶그렇다. 되게 (카메라를) 땡기고 싶었지만 인물과 거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결정적인 장면에 슬로우를 걸었다. 악센트를 넣고 싶었던 것인가.

▶그렇다. 악센트를 넣고 싶었던 것도 있고, 호흡에서 필요했다. 두 공권력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걸 드러내고 싶었다.

-장동건의 아파트 액션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신세계' 엘리베이터 액션 같은 시그니처로 기억될 것 같지 않은데.

▶아마 두 번 보여줘서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도 하고 '신세계'는 칼이고, '브이아이피'는 총이다. 칼과 총 액션 차이도 있는 것 같다.

-각 영화들마다 인상적인 대사들이 있었는데. 그런데 이번에는 말맛이 살아나는 대사가 적다. 역시 캐릭터 무비가 아니라 사건 중심이어서 그런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그런 걸 염두에 두진 않는다. 다만 관객이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캐릭터 무비가 아니라는 점이 영향을 준 것 같다.

-차기작 '마녀'를 9월에 바로 촬영에 들어가는데. 왜 이렇게 빨리 가나. '마녀'는 여성 원톱 액션영화인데. 사실 소개된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데 아직 공개되지 않은 그 안의 설정들은 '브이아이피'처럼 새로운데.

▶원래는 '브이아이피'를 6월 개봉을 염두에 뒀다. 개봉이 8월로 바뀌면서 그렇게 됐다. '마녀'는 여성 중심 서사인데 공부를 많이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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