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도시' 5년만 일찍 나왔으면 좋았을 액션 오락영화

[리뷰] 조작된 도시

전형화 기자  |  2017.02.03 10:17


게임 세계에선 최고수지만, 현실에선 백수. 전직 태권도 국가대표 출신이라지만 하루하루 PC방에서만 소일하는 청년. 그랬던 그가 살인 누명을 쓴다. 증거까지 완벽하게 조작됐다. 감옥에 끌려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그리고 탈옥해 범인을 찾는다. 흔하다. 흔한 이야기다. 박광현 감독은 이 흔한 이야기를 다르게 그렸다.

'조작된 도시'는 박광현 감독이 '웰컴 투 동막골' 이후 12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우여곡절도 많았다. 당초 박광현 감독은 조인성과 '권법'을 차기작으로 하기로 했지만 여러 사정 끝에 끊임없이 뒤로 밀렸다. 결국 다음 작품으로 '조작된 도시'를 꺼내 들었다. 쉽지 않았다. 게임 같은 설정과 이야기. 당시만 해도 모험에 가까운 지창욱이란 카드로 100억원을 들였다.

'조작된 도시'는 게임과 음모론을 바탕으로 가상의 세계를 쌓아올린 영화다.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간 남자가, 그곳에서 싸움 실력을 키운다. 감옥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조폭 두목을 때려눕힌다. 감옥에서 탈출한 뒤론, 얼굴도 모르던 게임 속 동료들의 도움으로 진실을 파헤쳐 간다.

재벌, 국회의원 등 사회 권력자들의 의뢰로 멀쩡한 사람들을, 특히 하루하루 힘겹게 보내는 청년들을, 살인자로 둔갑시키는 악당들. 주인공은 천재 해커지만 대인기피증으로 전화로만 대화를 나누는 동료, 도구 제작에 천재적이지만 일감 없다고 짤린 동료, 영화 특수효과 담당 신참, 지방대 교수 등과 힘을 모은다. 실체를 알아갈수록 적의 정체는 어처구니없고, 어마어마한 힘을 지녔다.

과연 남자는 복수에 성공하고 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조작된 도시'는 세계관이 곧 영화다. 시작부터 게임 장면을 실제처럼 구현한다. 목표를 위해 팀을 이끄는 리더. 최고 실력자지만 자신보다는 동료들을 우선하는 리더. 하지만 현실에선 그저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버리는 백수.

박광현 감독은 '조작된 도시'로 그런 의미 없는 나날이 의미 없지 않다고 말한다. 남들은 썩은 나무라고 하지만 썩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과정을 게임처럼, 혹은 만화처럼 스크린에 구현했다.

게임처럼, 만화처럼, 이란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는 뜻이다. 황당하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인과 관계가 허술하다는 뜻은 아니다. 상상력으로 구현한 세계란 뜻이다. '조작된 도시'는 작정하고 다른 세계다. 이 세계는 현실을 바탕으로 한 듯 하지만, 다른 세계다.

감옥도 실제라기보다는 게임 속 감옥 같다. 나락으로 떨어진 주인공의 수련을 위한 장소. 백수에서 절대 고수로 탈바꿈한 청년은 악당들과 10대 1쯤은 우습다.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어둠 속에서도 '데어데블'처럼 악당을 무찌른다. 개성 넘치는 동료들도 현실 속 존재라기 보다는 게임 속 캐릭터 같다. 각 능력이 특화된 캐릭터들. 현실에선 부적응자들. '조작된 도시'는 현실과 게임의 갭을, 그대로 영화로 갖고 와 하나의 세계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이 세계는 낯익고 낯설다. 흔한 이야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다.

악당의 존재도 분명하다. 게임 속 끝판왕이다. '다크나이트'의 투페이스이자 조커다. 메마른 감정에 적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흥분한다. 과장됐다. 과장된 캐릭터지만 '조작된 도시'라 가능하다. 전지전능하다. IT와 CCTV, 권력을 활용해 빅브라더로 세상을 조종한다.

이 악당을 무찌르는 이야기. 박광현 감독은 12년 동안 절치부심한 듯 쌓아온 상상력을 마음껏 구현하려 했다.

한 5년만 일찍 나왔다면 그 상상력은 절묘 할 법 했다. 게임 같은 악당은 '빅매치'에서, 어둠 속 액션은 '데어데블'에서, 감옥에서 힘을 쌓는 이야기들은 숱한 영화와 만화에서 이미 소개됐다.

도시를 질주하는 카체이싱과 수많은 맨몸 액션으로 영화를 가득 채웠지만, 느리다. 빠르게 빠르게 컷을 쪼개는 요즘 액션 리듬에 비해 느리다. 올드하다. 느린 게 나쁜 게 아니라 평범하게 올드하다. 이 액션의 리듬은, 감정선의 느린 리듬과 더해져 '조작된 도시'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영화로 만들었다.

특히 악역에 집중하지 못한 게 아쉽다. 배우의 탁월한 연기에도 불구하고, 악에 집중해 힘을 싣기보다는 주인공의 감성만 쫓아간다. 악이 주목받고 악에 힘을 쏟아야, 최후의 최후가 돋보일 텐데, 악이 돋보여야 할 때도 얼굴 클로즈업이 적다. 주인공 지창욱 클로즈업이 더 많다. 때문에 상대적으로 악이 나약해졌다. 영화의 힘이 중후반 빠지는 이유기도 하다.

주인공이 힘을 쌓는 걸 여실히 보여줘야 했을 감옥 장면도 시간 탓인지, 아쉽다. 백수에서 전사로 거듭나는 모습이 제대로 쌓이지 않으니, 절정고수로 변신이 뜬금없다.

박광현 감독은 너무 오랜만에 나왔다.

주인공을 맡은 지창욱은 액션을 훌륭하게 소화했다. 액션배우로 기대할 만하다. '조작된 도시'는 포스터에도 등장하지 않는 두 배우가 영화를 땅에 붙였다. 오정세와 김상호. 두 배우는 자칫 허공으로 떠버릴 수 있었던 '조작된 도시'란 세계를, 온전히 땅에 붙도록 만든 장본인들이다.

'조작된 도시'는 흔하지만 새롭다. 뻔하지만 다르다. 낯익지만 낯설다. 이런 탓에 당혹스럽거나 반가울 법하다. 박광현 감독을 기다렸던 팬들이라면, 12년의 공백이 아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할 것 같다.

2월9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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