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으로 정치를 읽고 싶은 사람들..비밀은 드러난다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20.01.03 08:58


영화는 정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모양이다.

허진호 감독의 '천문'을 정치적으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천문'은 세종대왕과 장영실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다. 한석규와 최민식이 각각 세종과 장영실을 연기했다. 멜로 장인의 손길로 다듬은 영화라 이래저래 화제가 되고 있다. SNS에선 '천문'을 멜로영화로 규정하며 영화 속 둘의 관계를 알콩달콩하게 묘사하는 놀이문화가 한창이다.

이런 놀이와는 또 다르게 '천문'을 현 시국에 빗대 보는 사람들도 상당하다. 공지영 작가는 최근 자신의 SNS에 '천문'과 관련한 한 영화평을 올렸다. '천문' 속 세종대왕을 문재인 대통령으로, 장영실을 조국 전 장관으로 바라본 글이다. 아닌 게 아니라 '천문'을 그렇게 바라본 영화평이 적잖다. 진보라 자처하는 사람들뿐 아니다. 보수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천문'을 그리 읽었다는 평이 수북하다.

허진호 감독이 예언자가 아니니, '천문'을 만들면서 현 정국을 예단했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영화는 시대와 호흡하니 텍스트를 둘러싼 콘텍스트에서 현실을 읽어내는 건, 어디까지나 관객의 몫이다.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 하는 세상이니 옳고 그름으로 나눌 수는 없다. 영화는 제 자리에 있지만 보고 싶은 대로 보고 이용하고픈 대로 이용할 뿐이다. '기생충'이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것에서 리플리증후군을 연상한 정치인도 있는 마당이다.

우연의 일치지만 2019년에는 세종대왕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두 편 개봉했다. '천문'과 '나랏말싸미'다. 각각 다른 이야기를 다뤘지만 공통점이 있다. 우리 것을 만들려 하는 왕과 그것을 반대하는 신하들의 대립이 담겼다. 영화 속에서 결국 왕은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옳은 뜻을 이룬다.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에는 정조와 관련한 사극이 유독 많았다. '역린'을 비롯해 8편 가량의 영화가 정조 시대를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개혁을 꿈꿨지만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된 왕. 그 시대의 함의가 담긴 영화들이 많았다.

사극은 과거를 통해 현재를 담는다. 꼭 그럴 의도가 없었다고 하더라도 창작자에게 시대의 어떤 바람이 깃들어 만들어지곤 한다. 비판의 목소리를 우회적으로 담기도 한다. 중국에서 유달리 사극이 많이 만들어지고 많이 사랑받는 이유기도 하다.

정조와 세종의 이야기가 연이어 만들어진 건,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한 왕과 신하들의 반대를 무릎 쓰고 이뤄낸 왕의 이야기가 계속 만들어지는 건, 결국 시대의 반영이다.

한편으론 안이한 갈망이다. 왕 한 명, 위대한 리더 한 명에게, 세상을 바꿔 달라며 책임을 전가하고픈 욕망의 발현이다.

세월호가 가라앉은 그해에는 그 바다에서 승리한 해전을 그린 '명량'을 1761만명이 찾았다. '명량'의 완성도는 차치하고, 그 영화에는 이순신이란 리더와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 걸 알까 모르겄네"라는 백성들의 말이 같이 담겼다. 승리를 리더뿐 아니라 같이 고생하며 이룬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라 많은 공감을 얻었다. 그 바다에서 같이 싸워 이룬 승리를 체험시켰다. 보고 싶은 걸 봤을 뿐이지만 그렇기에 공감이 컸다.

결국은 공감이다. 사극에서 현실을 어떻게 읽어내든, 공감이 우선이다. '천문'을 정치적으로 읽든, 멜로로 읽든, 그 읽는 바가 공감이 어디까지 형성되느냐에 따라 생명력을 갖는다. 그렇게 생긴 생명력은 오롯이 영화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18대 대선 후보 시절 보고 눈물을 흘린 영화 '광해'는 1232만명이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당시 후보 시절 관람한 영화 '돈 크라이 마미'는 97만명이 봤다. 그 해 대선의 결과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승리였다. 읽고 싶은 욕망과 영화의 생명력은 별개의 것이다.

숨긴 것은 나타나고 비밀은 드러난다. 영화의 보편적 서사이자 인생의 진리다. 영화에서 정치를 읽든, 영화를 이용하고 싶든, 기다리면 숨긴 것은 나타나고 비밀은 드러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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