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말싸미' 10억 보험 들고 촬영한 사연..역사왜곡 논란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19.08.01 11:45


'나랏말싸미'(감독 조철현)는 한글 창제와 관련한 이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입니다. 세종대왕이 한글 창제를 기획하고 지휘한 공이 있고, 유교 나라 조선에서 천대받던 불교의 신미 스님이 한글을 만든 공이 있으며, 세상에 널리 퍼지게 한 공은 소헌왕후에게 있다는 내용입니다. 이설에 영화적 상상력을 더해 만든 것입니다.

분명 이설입니다. 훈민정음은 세종대왕이 창제했다는 게 정설이죠. 이설을 전면에 내세웠으니 반발이 심합니다. 상식을 배반하면, 상식의 분노가 뒤따르는 법입니다. 더욱이 세종대왕은 한국역사의 슈퍼스타요, 초인왕이니 분노가 상당합니다.

저마다 떳떳한 주장들을 내세웁니다. 상식에 기반한 떳떳한 주장들입니다. 다른 주장이나 생각이 끼어들 틈조차 없습니다. 그저 떳떳한 말만이 옳은 주장일 뿐입니다. '나랏말싸미'는 떳떳한 말들에 둘러싸인 것 같습니다. 영화 속 세종대왕의 처지와 비슷합니다.

'나랏말싸미'에서 왜 중화의 문자인 한자를 두고 오랑캐나 만드는 새로운 문자를 만드냐는 신하들의 반대에 부딪힌 세종대왕은 "너희들의 떳떳한 말을 들어주지 못해 내가 부끄럽다. 너희는 너희의 일을 해라. 나는 나의 일을 하겠다"고 말합니다. 어쩌면 이 영화의 슬픈 운명일지 모릅니다.

떳떳한 주장들을 논박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저 다른 걸 틀리다고만 이야기하는 세태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영화의 본령은 볼거리입니다. 볼거리에 생각할 거리, 즐길 거리를 담는 것입니다.

'나랏말싸미'에는 귀한 볼거리들이 담겼습니다.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곡성 태안사 등 아름다운 사찰들이 두루 소개됩니다. 그중 백미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합천 해인사 장경판전입니다. 해인사 장경판전을 상업영화에 담아낸 건 '나랏말싸미'가 처음입니다. 앞으로도 쉽지 않을 듯합니다.

제작진은 팔만대장경이 극 중에서 훈민정음과 연결고리가 있다고 판단했기에 장경판전을 영화 속에 담아내려 공을 들였습니다. 6개월에 걸쳐 문화재청과 해인사 등을 설득했습니다. 국보일 뿐 더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만큼 촬영 허가가 나기까지는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해인사 측에선 영화의 취지에는 공감 하지만 과거 장경판전을 담으려 했던 일부의 행태에 실망이 적잖은 터라 망설임이 컸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바닥에 침을 뱉은 사람도 있었다는군요.

해인사는 아니지만 어떤 사극은 사찰에서 책을 쓰는 내용이라고 허가를 내줬더니 개봉한 영화가 엉뚱한 내용이어서 난리가 난 적도 있었으니 이런 경계는 당연합니다. 해인사로선 팔만대장경을 보존해야 하는 입장이니 더욱 당연하구요.

그리하여 해인사 쪽에선 '나랏말싸미' 제작진에게 10억원의 보험을 들어온다면 허가해 주겠다고 했답니다. 한 시간 동안 촬영하는데 조금이라도 흠집이 나면 보상을 해줘야 한다는 조건이었답니다. 사실상 거절의 뜻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간 해인사에서 장경판전의 보험을 들려 했지만 한국 보험회사에선 보물의 가치를 책정할 수 없다며 고사해왔기 때문이랍니다.

지성이면 감청일까요. 제작진은 백방의 노력 끝에 영국 보험회사를 통해 계약을 체결하고 그 증서를 해인사에 제출했습니다. 제작진의 정성에 감동한 해인사 측은 결국 촬영을 허가했습니다.

제작진은 촬영에 앞서 불공을 드렸습니다. 박해일과 탕준상, 장경판전에서 촬영하는 배우 두 명과 조철현 감독, 그리고 카메라 감독 등 네 명이 불공을 드렸습니다. 배우 두 명, 촬영 감독 한 명과 보조 스태프 한 명, 해인사 장경판전 관리자 등만 장경판에 들어가서 촬영을 했습니다. 감독도 장경판전 밖에서 모니터로 확인했습니다. 조명도 들어갈 수 없었기에 자연광을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녹음은 배우들이 장비를 부착해 진행했습니다.

그렇게 부드러운 햇살이 담긴 장경판전이 '나랏말싸미'에 담길 수 있었습니다.

송광사 국사전 촬영도 쉽지 않았습니다. 송광사 국사전은 보조국사 지눌을 비롯해 송광사에서 배출한 16국사의 초상화가 있는 곳입니다. 1995년 16국사 영정 중 3점만 남긴 채 13점이 도난당한 아픔이 있는 장소입니다. 지금의 그림들은 사진 기록을 바탕으로 다시 그린 것입니다.

그런 곳에서 촬영을 했으니 고된 마음이 담긴 건 당연합니다. 바닥이 나무라 무거운 촬영 장비가 들어갈 수 없었고,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곳에 표시를 해서 촬영했습니다. 나중에 CG로 지워서 자연스레 담겼습니다. 장경판전이나 국사전이나 영화 속에선 짧게 지나가지만 보통 정성이 담긴 게 아닙니다.

영화로 역사를 공부할 게 아니라면, 볼거리에 얹힌 것들에 좋고 나쁜 점을 논하는 게 당연할 것입니다. 귀한 볼거리가 담긴 '나랏말싸미'란 영화에 부족한 점이 있다면 그걸 논하는 게 마땅할 것입니다. 역사 왜곡이란 틀만으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놓칠 것들이 많습니다. 다양한 틀로 영화를 바라볼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뒷이야기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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