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영웅 만들기와 죽이기의 닮은 꼴..논란들에 부쳐

[전형화의 비하인드 연예스토리]

전형화 기자  |  2019.06.07 10:11
봉준호 감독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뻐하고 있는 모습/AFPBBNews=뉴스1 봉준호 감독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기생충'으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뒤 기뻐하고 있는 모습/AFPBBNews=뉴스1


"'기생충'을 제작하는 동안 표준근로계약을 지켰다는 감독님의 인터뷰가 인상 깊었다. 영화계는 물론 한국 사회 전반의 노동 환경에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아 더욱 박수를 보내고 싶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봉준호 감독에게 보낸 축전 중 일부다. 염 추기경은 봉 감독이 '기생충'으로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자 세례명 미카엘인 봉 감독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선한 뜻이다. 다만 사실관계가 잘못 전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남는다. 봉준호 감독이 '기생충'을 찍으면서 표준근로계약을 지켰다는 건, 뉴스가 아니다.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순제작비 130억원이 들어간 '기생충' 현장에서 표준근로계약을 지키지 않았다면, 뉴스다. 염 추기경의 축하에 담긴 선한 뜻과는 별개로 이미 한국영화계는 표준근로계약을 지키려 오래 노력해왔다.

한국영화계는 2000년대 초부터 스태프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를 높였다. 영화제작가협회와 영화산업노조 등이 머리를 맞대 2014년 표준근로계약서 도입을 합의했다. '국제시장' 같은 대형 상업영화들이 모범을 보이며 시작된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은 현재 상업영화 70~80% 가량에서 적용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의 수고가 쌓인 결과다.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을 도입한 첫 영화도 아니다. 봉준호 감독이 스태프 표준근로계약을 도입하지 않으면 '기생충' 연출을 하지 않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봉 감독이 표준근로계약 도입을 위해 연출료를 낮춰서 받겠다고 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마치 봉준호 감독이 표준근로계약 도입에 앞장선 것처럼 호도되는 건, 봉준호 영웅 만들기의 일환 때문이다.

시작은 한 인터뷰였다. 봉 감독은 '기생충'을 공개하기 전 한 영화 주간지와 인터뷰를 했다. 이 인터뷰 중 표준근로계약과 관련한 부분만 발췌돼 SNS에서 화제가 됐다. SNS에서 화제가 되자 칸영화제를 취재하던 기자들 중 영화산업에 무지한 사람들이 이 프레임에 맞춰 봉 감독을 적극 띄었다. 사실관계 확인이나 전후 맥락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그저 화제를 위한 영웅 만들기에 급급했다.

급기야 '기생충' 한국 기자시사회 이후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도 이 질문이 나오자 봉준호 감독은 "저나 '기생충'이 표준근로계약 정착에 선구자적인 노력을 한 게 아니다. 2014년경부터 영화 산업 노조 중심으로 논의가 돼 2017년부터는 전체 영화계가 (표준 근로계약에 따라) 움직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찬양은 멈추지 않았다. 한때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가 스크린독과점에 앞장섰다며 봉 감독에게 책임을 물었던 사람들조차, 봉준호 감독이 표준근로계약 정착에 앞장섰다며 찬양에 열을 올렸다.

이런 봉준호 감독 영웅 만들기는, 봉준호 감독 죽이기와 닮았다.

시작은 과거 인터뷰와 관객과의 대화였다. 봉준호 감독의 성인지 감수성이 낮다고 의심될 만한 부분들만 발췌돼 SNS에 떠돌았다. SNS에서 화제가 되자 기사화가 되고 논란을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사실관계 확인이나 전후 맥락에 대한 이해는 없었다. 그저 화제를 위한 봉준호 죽이기에 급급했다.

급기야 '기생충' 제작사는 논란거리 중 하나였던 김혜자의 '마더' 촬영과 관련한 부분에 대한 입장을 발표했다. 김혜자의 입장을 담았다. 김혜자는 언론과 인터뷰를 갖고 오해라고 호소했다. 왜 봉준호 감독의 입장이 아닌 김혜자의 입장이 먼저 나왔는지는 의문이다. 마치 사고 친 아들을 두둔하는 엄마처럼 비추는 탓이다.

그럼에도 사실관계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봉준호 감독 죽이기는 계속되고 있다. 봉 감독의 입장 없이 김혜자의 입장만 있는 탓인지, 김혜자까지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봉준호 감독 영웅 만들기와 봉준호 감독 죽이기는 '기생충'을 둘러싼 반응과도 닮았다. '기생충'에서 계급 문제를 먼저 보는 사람들과 '기생충'에서 젠더 문제를 먼저 보는 사람들의 반응이 궤를 같이 한다. 두 시각에 우열의 차이는 없다. 계급 문제가 먼저 보이는 사람들과 젠더 문제가 먼저 보이는 사람들은, 각각 중요한 게 다를 뿐이다. '기생충'을 본 노년 관객층에선 '효자' 최우식의 바른 마음가짐을 칭찬하는 분위기도 적잖다. 각자 보고 싶은 바가 다를 뿐이다.

다만 눈앞에 보이는 것에만 달려드는 건 위험하다. 억측과 잘못된 확신으로 자칫 눈이 멀기 쉽다. 맥락 없는 봉준호 영웅 만들기와 죽이기는, 그래서 위험하다. 눈앞에 있는 것에만 급급하다 보면 전후의 맥락과 목적을 잃기 쉽다.

봉준호 영웅 만들기는, 표준근로계약을 도입하고 유지하려 힘쓰는 많은 사람들의 공을 가리기 쉽다. 봉준호 죽이기는, 한국 사회의 낮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문제 제기란 애초 목적을 잃고 때리기만 남기 쉽다. 우상화도, 대상화도, 본질과 먼 탓이다.

감정이 사라진다고 가치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기생충'을 처음 보고 들었던 어떤 감정들이야말로 '기생충'의 가치일 테다. 가치를 이야기하고, 문제를 논하며, 다음을 기약하는 게, '기생충'이 던진 화두일 테다.

이래저래 '기생충'은 한국 사회의 모습들을 담았다. 영화 안팎으로 닮았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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