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하나, 속삭이는 무용] 조선 궁중무용을 말하다...

채준 기자  |  2020.01.23 12:59


“눈을 치켜뜨면 안 된다!”

“치아를 들어내 보여서는 안 된다!”

“앞에서 발바닥이 보여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규정이 왕 앞에서 궁중 무용이 행해질 때 무용수들이 지켜야 할 것들이다.

한국의 궁중 무용은 아름답고 화려한 자태가 특징이다. 궁중 무용이라는 개념은 민중들이 추는 민속무용에 대비되는 궁중을 중심으로 발전 계승된 춤으로 왕권 정치의 체제가 성립한 삼국시대 이후 나라의 각종 행사나 의식 그리고 궁중의 연회 때 춤이 쓰이면서부터 틀이 잡혀가기 시작하였다.

궁중 무용은 ‘정재’ 라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는데 드릴 정(呈) 과 재주 재(才)를 사용하여 기예(技藝)를 바친다는 뜻이며 군왕에게 헌기(獻技) 한다는 의미로 궁중에서 행해지는 행사 때 연주되는 음악과 연희되는 무용을 말한다. 따라서 정재는 군왕에게 바치는 예술적 형태 가무악의 총칭이라고 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고려 말 때 정치적으로든 경제적으로든 혼란스러웠고 대외관계의 변화 속에서 등장된 신흥 사대부의 이념을 바탕으로 성립된 왕조다. 조선왕조는 건국 초부터 불교 사회를 유교 사회로 바꾸어 나가면서 정치 ∙ 사회 ∙ 사상 ∙ 풍속 ∙ 예술의 이르기까지 유교 지상주의에 입각하였다. 그 때문에 조선의 왕들은 예와 악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예악 사상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국가의 각종 의례에서 음악을 들려주므로 써 신하와 백성들이 서로 하나가 되어 화합하게 되고 나라는 태평하며 백성들은 편안하게 된다는 예악사상으로 국가 정책을 이어나갔다.

조선 태조는 나라 정사를 맡아보는 문관과 무관 제도를 결정할 때 음악을 다스리는 기관으로 아악서(雅樂署)와 전악서(典樂署)를 두게 하였다. 세종은 궁중의식에서 연주되는 전통음악으로 아악(雅樂)과 향악(鄕樂)의 창작에 주력하게 되므로 써 조선시대 음악에 있어서 기초를 확립하게 되었으며 우리 역사상 가장 문화가 발달한 전성시대로 꼽히고 있다.

/사진제공=pixabay /사진제공=pixabay


또한 조선 제9대 왕 성종은 당시 음악기관인 장악원에 음악에 사용되는 이론적인 것들을 정리한 것으로 조선시대 최고의 악전樂典으로 볼 수 있는 악학궤범樂學軌範의 편찬을 명하였다. 악학궤범은 가사가 한글로 실려 있으며 음악이론 및 악기 편성과 연주 절차, 악기 제작과 연주법, 음악에 따른 춤의 내용까지 그림과 함께 설명되어 있다. 조선 전기 우리 궁중의 총체적인 음악과 무용이 확립되는 계기로 문화예술의 결실을 보게 된 것이다.

조선 중기에 들어오면서 연산군 때는 성리학의 이념에 입각한 모든 제도가 붕괴된 시기로 조선 중기에는 궁중무용이 쇠퇴하였다고 할 수 있다.

조선 후기에 들어서면서도 각종 사화 같은 국가의 어려움과 임진왜란, 정묘호란, 병자호란 등의 외침으로 인해 국가적 위기가 이어지면서 문화예술 또한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한다.

순조 대 효명세자의 대리 청정기간에 이르러서 드디어 획기적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면서 정재들이 새롭게 창작되고 내용 또한 흥겨움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춤에 있어서 외적이 아닌 내적 중점을 두고 추어졌다.

이처럼 조선시대의 전체시기를 3단계로 나누며 전기를 확립기, 중기를 전환기, 후기를 중흥기로 규정짓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조선 후기 황금기를 이루었던 궁중무용 특징으로 춤사위가 우아하고 유현미를 곁들인 화려한 정재무이며, 춤의 주제가 개인의 감정이나 정서의 표현에 있지 않고 나라의 공덕을 칭송하거나 군왕의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는 데 있다. 또 하나의 특징으로 춤을 추는 도중에 춤추는 사람이 직접 노래를 부르는 것을 창사라 하는데 그날 행사의 행해지는 춤의 내용을 담은 창사를 들 수 있다.

고려와 조선시대에 걸쳐 공연된 정재는 천여 년의 역사를 지닌 우리의 전통공연예술이다. 이 오랜 역사 속의 위대한 유산인 정재 반주음악의 악곡들은 전통음악 전승에 큰 역할을 했으며 정재의 창사는 문학 분야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기도 한다. 물론 일제강점기라는 민족의 정통성과 역사의 단절의 시기를 겪기도 했지만 기생조합과 권번의 기생을 비롯하여 왕립 음악기관이었던 이왕직아악부의 무동이 그 맥을 이어 현재까지도 정재는 국립국악원에서 공연되는 대표적인 공연 예술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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