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동의 만남]차대영, '살아내는 이들에 대한 오마주'를 그린다

김재동 기자  |  2015.07.24 16:30
개인 작업장 뒤편 조각공원에서의 차대영 교수./고양= 이동훈 기자 개인 작업장 뒤편 조각공원에서의 차대영 교수./고양= 이동훈 기자


화단의 대가와, 그림이라면 ‘보기에 좋더라’는 소감정도나 가능한 문외한이 만났을 때 난감한 쪽은 누구일까?

습하고 푹푹 찌던 날 어느 오후 서오릉 뒤편 경기도 고양의 개인 작업실에서 차대영(58) 수원대 교수를 만났다. 그는 알기 쉽게 개인전만 75회 연 화단의 거목이다. 2010년 1월부터 2013년 2월까지 회원 수 3만 명을 훌쩍 넘는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냈던 경력도 있다.

30대 시절의 그가 1991년 최고 권위의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받았을 때 평단은 “수묵(水墨)화 운동의 뒤를 이어 80년대 중반 경부터 통용되기 시작한 채묵(彩墨)의 혼란된 개념을 벗어나 채묵화의 양식적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극찬한 바 있다.

그리고 문외한을 앞에 두고 그는 당시에 관해 이렇게 운을 뗀다. “당시 한국화에서 금기시 되던 색이 노랑과 빨강였어요. 문인화에서 꽃 그릴 때 말고는 쓸 일이 없었죠. 그러다보니 물감이 많이 남지 않겠어요?” 요는 그렇게 남은 물감들이 아까워 채묵화를 그리게 됐다는 설명이다. 그렇게 참 단순하고 알기 쉽게 시작된 작업이지만 그 작업의 성과는 간단치 않았던 모양이다. 평론가 오광수는 “먹이란 평면을 만들고 그 위에 채색의 이미지를 구사하는 형식“으로 ”바탕의 수묵은 오랜 시간의 축적 같은 의미태로서 나타나며 채색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들은 축적된 시간의 저 깊은 바닥에서 서서히 밖으로 솟아오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고 평했다.



\'옛이야기\'시리즈는 채묵화의 전형을 구축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옛이야기'시리즈는 채묵화의 전형을 구축한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뭘 그리신 건가요?”라고 묻고 싶은 순간 그는 말한다. “벽화시리즈였어요. 고분의 벽화 말이죠” 그러고 보니 확실히 신화적 상상력과 주술적 감수성이 자극받는 느낌이다. 그의 첫 연작인 ‘옛 이야기’ 시리즈에 관한 이야기다. 이와 같은 방향성은 다음 연작인 ‘숲의 이야기’ 시리즈에서 더욱 화려하게 개화해 평단의 표현에 의하면 ‘화려한 침묵의 담론구조’를 완성하였다. 이 당시까지의 차대영 교수 작품에 대해 평론가 김성은은 “채도와 명도가 극명하게 발하는 찰나의 색채를 구현, 그 세련미는 산사의 오색단청처럼 주술적인 신기마저 느끼게 한다”고 평한다.



\'숲의 이야기\' 연작시리즈 '숲의 이야기' 연작시리즈


그리고 97년부터 16년간 그는 꽃을 집요하게 그리기 시작한다. 오방채색의 화려함을 벗어나 은빛계통의 색상이 주조를 이룬다. 그의 꽃 연작은 흐릿하고 모호하게 묘사된 꽃잎을 배경으로 도드라진 꽃 한포기를 그려내는 방식을 견지한다. 전반적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를 전해주는 이 무렵의 작품들에 대해 평론가 김성은은 마저 말한다. “그의 꽃은 아래둥치가 없기에 머무르고 있어도 자유롭다. 색과 형을 넘어서고 생과 사를 초월하여 다다르는 禪과 仙의 공간은 멀고 가깝다는 논리적 시점으로는 가늠할 수 없는 거리에 있다.”

문외한도 작가가 16년간을 천착한 꽃이 어떤 의미인지, 왜 꽃인지가 궁금했다.

“한 10년 넘도록 어느 한 가지만 그리면 사람들이 그러잖아요. 그림도 안 바꿔?” 그런 이유로 변화를 모색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한다. 작가들에게 가장 중요한 순간이 화풍을 바꿀 때라선지 ‘구도는?’ ‘형상표현은?’ ‘색채는?’ 등의 많은 고민들을 하게 된다고. 특히 색채의 경우 사람들이 ‘누구 닮았다’ 평하기 십상인 부분이어서 선택의 폭이 많이 협소했다고 한다. 그때 문득 떠오른 것이 우주선 장난감. 그 자신이 어릴 때, 아직 우주선이란 건 만들어지지도 않았고 그저 만화적 상상속에서만 존재할 때조차 우주선 장난감은 은색을 띄고 있었는데 정작 만들어진 대부분의 우주선도 은색이더라는 자각 속에 ‘화이트와 블랙과 그레이와 펄로 가면 맞겠다’는 작정이 섰다고.



\'꽃\'연작 작품들 '꽃'연작 작품들


그러면 왜 하필 꽃인가? 그림에 변화를 주려고 고민하던 당시 한 갤러리로 부터 ‘골프테마전’ 요구를 받았고 골프클럽 위주의 단조로움을 피하고자 하던 차에 클럽으로부터 꽃의 이미지를 떠올렸다고 한다. 결국 골프공을 캐스팅해 석고로 본을 떠 부조로 꽃을 그려 화면을 장식하기에 이른다. 결국 부제가 극대화돼 주제로 떠오른 셈인데 16년을 관통한 꽃이란 주제가 우연한 연상 작용의 소산일 뿐 사람이 될 수도, 돌이 될 수도 무엇이 될 수도 있었다고 부연한다. 禪의 경지에서 느껴지는 구애없음이 그의 설명에서 느껴진다.

현재 그는 인왕산과 길을 주제로 연작 작업을 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 대목에선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을 지낸 경력이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한국 미술계의 현실에 대해 그는 그의 작품에 대한 소개보다 더 공을 들여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결국은 대한민국의 수많은 분야들처럼 정부를 포함한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로 귀결된다.

이사장 시절 자기부담금에 상응하는 지원을 해준다는 말을 듣고 기업인들 찾아다니며 어렵사리 13억 8천만 원을 모아 일산 킨텍스와 서울 강남의 세텍을 빌어 어린이 실기대회, 외국 교류전, 아름다운 산하전 등 5~6천 명의 작가들에게 전시의 기회를 마련해주기도 했으나 정작 그에 상응하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보진 못했다고 한다.

그는 정부의 문화사업지원이 디자인과 영화 쪽에 편중되면서 순수 인문사회과학쪽은 고사의 지경에 처했다고 하소연한다. 그 같은 편중된 지원이 지금 당장은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릴 수 있을 진 모르지만 결국 순수인문사회과학이란 샘물이 막혀 고갈되고 나면 대한민국의 문화전반은 삽시간에 허물어지는 비극을 맞게 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김영석 마니프서울국제아트페어 대표 같은 이가 있어 18년째 1년에 120명씩의 작가들에게 시장을 열어주며 붓을 쥐고 연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지만 정부가 아닌 민간의 역량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역설한다.

화랑들의 흔들림도 경계한다. 화랑의 기능 중 수익창출 못지않게 중요한 게 작가의 서포팅인데 요즘 대다수의 화랑들은 ‘돈’의 절대가치에만 경도돼 작가를 이용만 하려 드는 모습을 보인다고 우려한다.

그렇게 많은 젊은 작가들이 현실의 벽에 막혀, 혹은 심리적 좌절 끝에 붓을 꺾고 마는 현실이 선배 된 입장에서 많이 가슴 아팠던 모양이다. 그리고 그 같은 현실 앞에 무기력하게 끌려 다니며 작가적 자존심을 상실한 동료들을 보는 일도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협회 일을 그만두고는 한 일 년 간 미술계쪽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는 차대영 교수. 알게 모르게 사람으로 인해 마음을 다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와중에 그가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인왕산-길위에서’ 연작이다.

길위에서 길위에서


인왕산 연작 인왕산 연작


그리고 문외한을 배려한 그의 세심한 눈높이 설명 덕인지 어쩐지 이번 연작시리즈에 대한 이해도가 부쩍 높아진 느낌이다. 그에 고무돼 단순한 감상자로서의 평을 얘기해본다.

하단부의 흐릿한 세한도와 지평선 혹은 바위위의 외로운 소나무가 갈지(之)자로 이어진 ‘길 위에서’ 연작에선 고(故) 법정스님이 글에서 즐겨 쓰던 ‘텅 빈 충만’이 느껴진다. 막막함을 선사하는 지평선 위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주는 허허로움. 그 나무는 겨울에 홀로 푸른 세한(歲寒)의 절개로 부터 가늘지만 분명하게 연결된 길 하나로 이어지고 텅 빈 그 길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 누군가를 기리고, 가려하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하다.

‘인왕산’연작시리즈 중엔 어마어마한 위압감으로 화면 전면을 억누르는 산세 아래 나무를 키워낸 작은 언덕이 보이는 작품들이 있다. 처음에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없는 삭막한 위압감만의 그 거센 산세를 보며 “인왕산 같지 않은데요?”하니 차 교수는 “인왕산은 그 아래 작은 언덕”이라 일러준다. “그 큰 산은 북한산이어도 좋고 히말라야여도 좋다”는 설명도 부연한다.

이쯤하면 이해가 간다. 인왕산은 그런 산인 게다. 나무로 상징된 생명을 오롯이 키워내고 지켜내는 산. 당장 깔아뭉개 버릴 듯한 위세에도 굴함 없이 같잖게 오연할 수 있는 산. 그 산처럼 거센 세파 속에서도 스스로의 가치를 지켜낼 수 있는 그런 사람을 작가는 그리워하고 있나 보다.

물론 인터뷰 이후의 감상들인 탓에 차대영교수로부터 동의를 받은 바는 없지만. 작가의 의도가 그게 아니래도 무슨 상관인가. 그의 작품은 적어도 수용자중 일인에겐 그런 감흥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그는 최근 개인전을 앞두고 작가노트 대신 ‘인생은 나그네길’이란 제목의 작은 글을 올렸다. 최희준의 노래 ‘하숙생’의 가사에 백분 공감을 표한 그 글에서 그는 "단단한 바위에서 싹을 틔우고 뒤틀며 살아 올라와 거친 삶을 살아온 소나무 한 그루는 나에 대한, 오늘을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에 대한 오마주"라고 밝히고 있다.

작업중인 차대영 교수. 작업중인 차대영 교수.


차 대 영 車 大 榮 (CHA DAE YOUNG 1957~ )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및 동대학원졸업

개인전 75회 (한국, 미국, 독일, 프랑스, 일본, 중국 , 싱가폴등)

젊은 모색전 (국립현대 미술관 ,과천)

MAC 2000 (Effel-Brany, 프랑스)

NICAF 국제아트페어 (동경 국제포름, 일본)

KCAF 한국현대미술제 (예술의전당, 서울)

EXPO 파리서울전 (파리, 프랑스)

CHICACO 아트페어 (시카고, 미국)

MANIF 서울국제 아트페어 (예술의 전당, 서울)

OSAKA 아트페어 (ATC 미술관, 오사카)

아시아 국제미술제 (후지미술관, 일본)

피스드림아트페스티벌(세비야 꿀뜨라스, 스페인)

LA 아트페어 ( LA컨벤션센터, LA)

싱가포르 아트페어 (싱가포르 F1 컨벤션센터, 싱가포르)

홍콩 아트페어 ( 홍콩컨벤션센터, 홍콩 )

수상

제10회 대한민국 미술대전 대상, 제5회 MANIF 서울 국제아트페어 대상

제8회 한국미술 작가상, 제1회 OSAKA 아트페어 우수작가상

제31회 올 해의 최우수예술가상 (미술부문)

현재 : 수원대학교 미술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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