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선 비주류, 그래도 SF는 계속된다

이덕규 객원기자  |  2018.06.19 13:56
우주에서 대규모로 즐기는 MMORPG 이브 온라인 우주에서 대규모로 즐기는 MMORPG 이브 온라인


단언컨대, 우주는 인간 역사상 '가장 거대한 테마'다. 앞으로 이어질 미래 세대에서 다뤄질 테마 중에서도 가장 압도적인 존재감을 뽐내지 않을까.

우주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로마 신화의 야누스(Janus)처럼, 혹은 지킬 앤 하이드처럼. 하나는 신비함과 두려움이 공존하는 미지의 공간, 다른 하나는 오랜 세월 끊임없이 도전하게끔 하는 최종 보스급 개척 대상. 좌절에 좌절을 거듭하면서도 우주에 관한 상상에 집요하게 매달리는 건, 어쩌면 인간의 본능적 욕구 중 하나일지도.

게임에서도 마찬가지다. '상상'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영역. 그렇기에 우주를 소재로 한 게임은 그만큼 각양각색의 모습을 보이곤 한다. 쉽게 말하면, 정해진 공식 같은 게 비교적 적기 때문에 내키는 대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다.

1990년대. 상상력은 그 이상이었을지 모르지만, 게임으로의 표현 방법에는 한계가 있었던 시절. <갤럭시안>이라든가 <갤러그>와 같은 게임에서 볼 수 있었던 시커먼 배경에 하얀 점이 촘촘히 찍힌 배경은, 우주의 이미지를 담아낸 가장 단순한 결과물이었다. 

언뜻 보면 죄다 똑같은 하얀색 점.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명도나 채도 같은 게 조금씩 다르고, 크기에도 차이가 있다. 일부러 그렇게 한 건지, 어쩌다 보니 그리 된 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덕분에 '별'이 보다 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맛깔나는 우주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는 건 분명하다.

또 한 가지, 우주를 배경으로 했던 초창기 슈팅 게임들은 외계 생명체를 벌레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었다. 지구 중심주의, 혹은 인간 중심주의적 사고(?)가 아니냐 태클 한 번 걸어보고 싶었지만… 곧 그만뒀다. 지금 시대의 게임을 봐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어서.

우주라는 공간 자체에 대한 상상은 '까만 배경 위 하얀 점'을 기본형으로 어느 정도 정형화됐다. 그 다음으로, 거대한 공간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생명체, '외계인'에 대한 상상이 이어졌다.

사실, 외계 생명체야말로 완전한 상상으로 만들어도 되는 것들이다. 하지만 대개 눈, 코, 입이 달려 있고 두 발로 걸어다니는 등 인간과 비슷하게 묘사되는 경우가 많다.(애당초 외계'인'이라는 정의부터도…) 

손가락이 네 개라든가 키나 몸집이 어마무시하게 크다거나, 입 대신 눈이 번쩍이며 목소리가 나온다거나 하는 변칙(?)도 있긴 했지만, 일단 생긴 건 'Mankind'로 귀결된다.

외계 종족이 자리를 잡은 다음 전개는… '전쟁'이다. 인간 vs 킬라시의 종족 대결 구도를 그렸던 <윙 커맨더>를 비롯해, 테란 vs 프로토스 vs 저그의 피 터지는 혈투를 다뤘던 국민 게임 <스타크래프트>를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외계 종족이 등장하는 게임에서 흔히 그렇듯, 종(種)이 다른 것들은 싸우거나 대립하는 게 보통이다. 아니면 냉전 기류가 흐르거나. 어쨌거나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긴 힘들다는 이야기다. 애들은 원래 싸우면서 크는 거라지만, 더 클 것도 없는 다 큰 것들끼리 왜 그리 싸워대나 싶을 정도다.

'어차피 우주는 미친듯이 넓은데, 그냥 우리 땅 너네 땅 선 딱 긋고 각자 할 일 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봐도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생긴 것부터 너무 다른 이 인간(아, 인간 아니지 참)들은 허구한 날 치고받고 싸우기 바쁘다. 한정된 자원을 두고 소유권 분쟁을 벌여온 지구 출신 전투민족(?)의 후예들이 창조한 탓이려나…

어쨌거나, 1990년대를 지나오며 모니터 속 광활한 우주는 더욱 진화했다. 사실적 정교함과 드라마틱한 감성, 두 개 노선이 나란히 발전을 거듭한 덕분이다.

어떤 미사여구를 갖다붙여도 아름답게 느껴지기 어려운, 본디 전쟁이란 게 그렇다. 하지만 우주를 향한 인간의 무한한 애정공세는 기어이 그 어려운 걸 해내고 말았다. '실재가 아닌 상상 속의 작위적 연출'이기 때문에 다소 무디게 느껴지는 덕분일까. 전세계적으로 우주 전쟁의 한 장면에 한껏 매료된 마니아들을 찾아보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물론, 우주 종족들이 피터지게 싸우건 말건, 그 배경이 되는 우주의 광활함으로부터 황홀경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게임 그래픽이 기술적으로 발달하면서 그런 종류의 황홀감 또한 한층 더 커졌을 것이다.

PC 기반의 환경에서 다른 많은 장르가 그랬듯, 스페이스 장르 역시 정점을 찍었다. 우주를 직접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게임 속 우주도 실제 모습을 기반으로 한층 정교하게 다듬어져 갔다.

북미 코믹스풍의 독특한 아트의 전략 SF 게임 로그 유니버스 북미 코믹스풍의 독특한 아트의 전략 SF 게임 로그 유니버스


리얼함이 더해진 배경과 여전히 상상력을 주재료로 하는 게임 속 문명, 그리고 현실과 상상을 적당히 섞어 빚어낸듯한 여러 종족과 캐릭터. 이들이 한데 모여, 모바일 주류 시대에도 스페이스 장르 영역을 지키고 있다. 하긴, 한 우물 우직하게 파는 사람들에게 플랫폼이 무엇이냐는 별로 중요한 게 아닐 테니까.

PC와 모바일, 멀티 플랫폼으로 플레이 할 수 있는 <베가 컨플릭트>와 모바일 기반 전략 전투를 메인 콘텐츠로 하는 <인터플래닛>을 꼽을 수 있다. 두 게임 모두 기지 건설과 함대 육성을 베이스로 하는 우주 시뮬레이션 장르 게임들이다. 함선을 제작, 업그레이드 해서 우주 함대를 꾸리고, 그들을 끌고 다니며 행성이나 기지를 공략하는 구조.

보통 SF의 문법대로라면, 인간 vs 외계 종족이 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인터플래닛>에서는 안소(ANXO) 종족이 인간의 우주 정착을 돕기 위해 필요한 기술을 전수해 준다는 설정을 가지고 있다. 안소 외에도 여러 외계 종족이 등장하며, 종족과 세력마다 얽히고설킨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DC코믹스와 DC유니버스 스토리를 담당한 해외 유명 작가 데이나 커틴(Dana Kurtin)이 시나리오를 담당했다는 이유로, DC 팬들 입장에서는 관심을 가질만한 부분이다.

우주 함선을 업그레이드하고 기지를 건설하는 게임 인터플래닛 우주 함선을 업그레이드하고 기지를 건설하는 게임 인터플래닛


어쨌거나 메인이 되는 콘텐츠는 약탈과 대규모 PvP. 기지가 파괴되면 자원을 직접 다시 모으는 것보다 약탈한 자원으로 복구하는 게 빠를 정도니, 구조적으로 PvP를 장려하는 시스템이다. 글로벌로 서비스 되고 있는 만큼, SF 장르 좋아하는 전세계 전투민족 대표선수들이 한데 모이는 장이라 하겠다.

이런 장르의 유저들에게 있어, 기지 복구와 자원 약탈은 챗바퀴 같은 일상이다. 과거 유사한 스타일의 게임에서도 그랬듯, 기지라는 건 아무리 잘 지어놔도 온전히 지키기가 쉽지 않다. 그렇기에 궁극적으로는 강력한 함대를 만들어 우주 깡패(?)가 되는 길을 택하게 마련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주 깡패들이 길드 단위로 모여 성단전을 벌이는 모습은… AI를 상대로 하는 기지 공략과는 다른 의미의 장관을 연출하곤 한다.

X시리즈, 스타 시티즌, 헤일로, 워프레임, 스페이스 엠파이어, 엔드리스 스페이스, 스타바운드, 신스 오브 솔라 엠파이어, 스타 컨트롤, 문명: 비욘드 어스, 워해머 40,000, 마스터 오브 오리온, 노맨즈스카이 등등… 

우주를 소재로 담아낸 게임들을 언급하려면 얼마든지 더 있긴 하다. 아예 중세 판타지 장르처럼 게임 수가 넘사벽으로 많아 버리면 '하하하하하하 에라 모르겠다' 하고 생각나는 게임들만 거론하겠지만… SF는 전부 다루기엔 많고, 골라서 다루기엔 빠진 녀석들이 못내 아쉬운 수준이다. 아직까지는.

생각해 보면, SF나 전략 시뮬레이션 모두 국내에서는 딱히 주류의 자리에 있었던 바가 없었다. 그럼에도 '우주 홀릭' 게임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가던 길을 열심히 가고 있다. 글로벌 진출의 장벽이 보다 낮아진 시대인 만큼, 새로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 덕분일까.

SF라는 장르에 대한 선호도가 극과 극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너무도 거대한 상상의 산물을 이해하기가 버거운 나머지 아예 손을 놓아버린 사람이 많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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